시작은 아이가 5살이 되고 유치원에 갈 무렵 즘이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만 해도 사실 동화책 읽어주는 것 이외에는 별 다른 교육(?)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 (나만 그렇나?)
물론 돌 전에 프뢰벨이나 몬테소리 같은 ‘자기 주도 놀이 학습’을 꾸준히 시킨 부모들도 종종 있었지만 나 같은 경우 그저 하는 거라곤 중고로 저렴하게 얻은 몬테소리 교구나 이따금 꺼내서 같이 노는 것뿐이었다.
사실 몬테소리도 내가 혼자 만드는 거지, 아이가 만드는 것이라곤 교구 가지고 일자로 줄을 세우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기 맘대로 흩뿌리는 것밖에 없었다.
열혈 엄마들은 동영상을 보며 공부(?)해서 아이에게 알려준다고 하는데 나는 당시 그럴 만한 의지도, 힘도 없었다. 그저 애가 잘 먹기만을 바라고 잘 자고, 잘 싸기(?)만을 바라는 시기다 보니 몬테소리 같은 교구는 그저 정리하기 귀찮은 장난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몬테소리 교구는 어느새 창고에 처박혀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흘러 5살이 되자 엄마들 사이에서 스몰토크를 시작하면 으레 ‘그쪽 아이는 요즘 뭐 배워요?’가 주된 화제로 떠올랐다. 이제 고작 5살인 아이에게 뭘 배우냐니. 솔직히 그 질문을 들었을 때 엥? 스러웠다. 이제 아이는 고작 혀 짧은 발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따듬따듬 말하고 공차기를 하는. 내 눈에는 아직도 어린 아기로 보였기에 유치원이 아닌 곳에서 뭔가를 배운다는 것이 퍽 놀라웠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엄마들이 사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또 실제로도 학원에 많이 보내고 있었다. 누구는 검도 학원에 보내고 있었고 또 누구는 미술 학원, 또 다른 누구는 벌써 영어 학원에 보내고 있었다. 5살 아이를 받아주는 학원이 (태권도 학원 제외) 있나요? 물으면 상대 아이 엄마는 이 엄마 뭘 모르네 하는 표정으로 요즘 학원에선 기본 5살부터 받는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5살 때 한글을 거의 떼는 아이들도 많다며 우리 아이의 한글 실력은 어떻냐고 묻기도 하였다.
한글이라고? 이제 고작 말 좀 하고 어수룩하게 색연필을 쥐는 아이인데 무슨 한글이야 싶어서 웃기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뭐야 다른 아이들은 벌써 한글을 배운다고? 싶어서 궁금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다른 아이 엄마들과 대화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엄마가 5살 때부터 학습지를 시작하며 그때부터 한글을 배운다고 들었다.
사실 나는 국문과 전공인 데다 대학원도 국어교육학을 전공해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교육계열 회사에서 일을 한 경험도 있었다. 대학원을 다니는 기간 동안에는 입시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등록금을 벌었다. 그랬기에 사실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친다는 것은 나에겐 너무 ‘쉬운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에이, 못해도 내가 전공자인데 내 애 한글을 못 가르치겠어?’와 같은. 약간의 자만심도 있었다.
그런데 내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 정반대의 문제였다. 5살 여름방학 즈음 그냥 기초 한글 익힘책을 사서 호기롭게 아이와 함께 한글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였지만. 아이는 일단 자리에 앉는 것부터 거부하였다. 앉아서 내 말을 들어야 뭔 시작을 하는데. 아이는 “내가 우리 한 번 앉아볼까?” 이 말만 나오면 술래잡기를 하듯 도망가 버렸다. 억지로 앉혀서 시작해봤자 아이는 노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서 내가 하는 말은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그때 느꼈다. 아, 내 자식 공부는 절대 내가 시킬 수 없다는 것을. 요 놈의 눈에는 내가 자신의 ‘엄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5살의 여름을 보내고 초가을이 올 무렵. 아이의 친구 무리가 놀이터에서 노는데 아이의 친구가 아파트의 층수를 열심히 세는 것을 보았다. 이제 고작 5살인데 아이는 벌써 숫자 70까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의 핸드폰을 보며 지금이 몇 시인지 시간 개념까지 알고 있었다.
내가 무척 놀라자 아이의 엄마는 수줍게 웃으며 아이가 숫자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가르쳐 주다 보니 아이가 숫자를 계속 보고 말하려 한다며 대답하였다. 나는 원래 남의 떡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 엄마가 나를 보면서 ‘넌 욕심이 없어서 큰일이야’라고 말할 정도로 작은 것이라도 내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식이 들어가자 조금 달라졌다.
시계를 보며 시간을 읊는 아이 옆에서 내 아이는 열심히 콩벌레나 보고 있으니. 물론 아이의 친구가 워낙 빠르기도 하였지만 다른 아이들도 학습지나 학원으로 한글을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고 있었기에 저 바닥에 깔려 있던 불안함이 고개를 슬그머니 들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괜찮은 학습지를 찾아 헤매기 시작하였다. 아이가 흥미를 가질만한 요소는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한글을 가르치는지 꼼꼼하게 따졌다. 학습지 홍보물을 받아서 각각의 학습지 회사가 무엇이 다른 지도 비교를 해보았다. 각 아파트에 오는 학습지 선생님에 대해서도 귀동냥으로 정보를 얻었다.
그러나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남편이 아이와 함께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 집 앞에서 학습지를 신청하면 선물을 왕창 준다는 광고를 보고 혹한 남편이 내 의견을 묻지도 않고 냉큼 한글 학습지를 신청해 버렸다.
애 학습지가 그게 그거지. 별거 있냐고 말하는 남편이 어찌나 얄밉던지. 아이도 역시나 학습지는 관심 없고 학습지를 가입하고 받은 사인펜으로 열심히 낙서나 하고 있었다. 정말 부자가 어찌나 이리 똑같은지.
어쨌든 그렇게 우리 아이의 사교육은 얼렁뚱땅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