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기록을 멈추게 되었다.
머릿속엔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뒤섞여 나의 깊은 곳을 끌어내려 하고 의미 없이 괴롭힌다.
할 수 있는 기록이라곤 오늘의 할 일을 메모하는 리스트뿐 이렇게 무거운 적이 언젠가 있었던가?
알 수 없는 중압감과 부담감, 그 속에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나
변해가는 성향들, 받아들이기 힘든 낯선 나의 모습, 마냥 가만히 흘려보낼 수만은 없는 시간,
꼭 해내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한 이 손은 스로스에게
무안해지기까지 한다.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지만, 불행만을 기록하는 내가 너무 싫어서
주변에 끼치는 작은 영향력조차 너무 미워서 그렇게 결국 아무것도 기록하지 못하는 내가 되었다.
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고, 미래의 내게 수많은 옷을 입혀줬었는데 지금은 미래의 내가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다. 그려지지 않는 것이, 떠올려지지 않는 것이 이토록 불안한 일임을 처음 피부로 느꼈다.
.
.
.
나는 있을까, 나 자신으로 존재할까, 결국 지금과 똑같진 않을까, 사람은 또 얼마나 떠나갈까, 새로운 인연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좁고 협착한 사고방식과 경험에 나를 가두게 되진 않을까?
정말 갇혀버리면 그땐 어떡할까 내 손엔 열쇠가 없는데
남들에겐 많은 말을 해주지만 이런 극도의 강박 안에 살고있는 내겐 손 한 번 내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상과 현실 속의 나에게 또 괴리감을 가지게 된다.
도망가고 싶다. 회피하고 싶다. 살고 싶다. 안정감을 느끼고 싶다.
-2020년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