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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Nov 25. 2022

쯔란을 품은 파스타

일어나서 끓인 보리차를 한 잔 마셨다. 마시자마자 몸에 찬 기운이 돌면서 정신이 차려졌다. 오늘은 정말 배달음식 없이 또 돈을 아끼고 자취인생을 보람차게 보내야지 생각했다. 비록 오후 2시에 일어나 남들보다 느린 하루를 시작하긴 했지만.      


변기에 앉을 때 벽에 머리를 박고 문은 조금씩 썩어들어가고 있는 화장실은 이제 일주일 정도 지나니 적응을 했다. 씻으면서 보니 바닥 곳곳에 핑크색 물때가 조금씩 피어나고 있었다. 나중에 청소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씻었다. 나갈 준비를 다 하고 집 앞 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갔다.      


시내버스를 타고 큰 창고형 대형마트에 갔다. 평생을 작은 도시에 살았고 창고형 대형마트를 가본적 없는 나는 가기 전부터 조금 설랬다. 부모님한테 받은 돈으로 먹거리를 좀 샀다. 운동하면서 먹을 냉동 닭가슴살 3킬로그램, 라면에 넣어먹을 냉동해산물, 굴소스 한 병, 소금, 즉석밥.      


돈을 최대한 아끼고 싶어서 정말 필요한 것만 딱 샀다. 생각보다 꽤 많이 나왔다. 어차피 두고두고 먹을 음식들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마트를 나오니 고민이 되었다. 택시를 탈까 버스를 탈까? 배차 간격을 보고 정하려고 했다. 내심 버스가 없었으면 생각했지만 여기는 도시, 집가는 버스가 넘쳤다.

      

그냥 버스를 타고 가기로 마음 먹었다. 오늘 뭐하면서 하루를 보내지 라는 잡생각을 하면서 창 밖을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냉장고에 음식들을 정리했다. 냉장고 한 편에 먹고 남은 쯔란이 눈에 띄었다.  

    

우리 학교는 외국인들이 많다. 외국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중식당이 있는데 ‘입맛이 외국인’인 나는 거기서 자주 양꼬치와 돼지고기 꼬치를 포장해 먹었다. 양꼬치와 돼지고기는 다 먹었지만 쯔란은 많이 남았다. 쯔란을 먹어 치울겸 밥을 차리기로 했다.      


냉동된 닭가슴살을 유수해동 시키고 침대에 누워서 어떻게 먹을 것인지 생각을 했다. 10분쯤 지나니 꽁꽁 얼었던 닭가슴살이 다 녹았다. 해동된 닭가슴살을 한 입 크기로 썰고 쯔란과 굴 소스 그리고 소금에 잘 버무렸다. 이것만 먹으면 부족할 것 같아 냄비에 라면 물을 올렸다. 물이 끓을 동안 냉장고를 찬찬히 둘러보니 끓여놓은 보리차가 보였다. 사실 냉장고 안에 볼 게 보리차 밖에 없었다. 이왕 먹는 김에 제대로 닭고기 쯔란 파스타를 만들기로 했다.      


급하게 마트에서 파와 마늘 그리고 파스타 면을 사왔다. 냄비에 물을 더 추가로 넣고 소금을 넣었다. 파와 마늘을 다져 아까 재어둔 닭고기에 넣었다. 마트에서 산 가장 싼 파스타 뒷면에 써 있는대로 1인분 기준을 맞춰 내가 좋아하는 면 익힘만큼 삶았다. 집에 체가 없어서 젓가락으로 면을 하나 하나 잡아 건졌다. 면을 삶던 냄비에 기름을 약간 두르고 재어둔 닭고기를 넣었다. 단백질이 익으면서 나는 고소한 냄새와 기름 냄새가 방안을 채웠다.     


점점 쯔란향이 올라오면서 식욕을 더욱 돋구었다. 자취방이 쯔란향으로 가득차자 익은 파스타 면을 넣고 면수도 조금 넣었다. 바닥에 눌러붙은 쯔란이 면수에 풀리고 파스타 색이 점점 더 먹음직 스러워졌다. 집에 접시가 없어서 냄비 째 사진을 찍었다. 먹으려 보니 수저도 없어 학교 실습시간에 쓰는 조리 도구로 식사를 했다. 첫 끼니지만 벌써 오후 7시가 다 되었다. 쯔란과 파스타 그리고 닭가슴살은 생각보다 그럴듯해보였다. 한 입 먹는 순간 자주 가던 중식당의 중국식 고기 볶음면을 먹는 느낌이 났다.       


 쯔란 맛이 별로 안 난다고 생각할 때 쯤 은은하게 도는 쯔란향이 매력적이였다. 생각보다 음식 양이 많아 남기려고 했다. 그런데 음식물 쓰레기가 생기는게 싫어서 꾸역꾸역 다 밀어 넣었다. 소스까지 싹싹 긁어먹고나니 너무 배불러서  나서 침대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꽉 찬 배를 끌고 싱크대 앞에 섰다. 머리를 많이 찧은 자취방의 낮은 찬장을 보니 설거지가 너무 하기 싫었다. 한 번 미루면 끝도 없이 미루는 나를 잘 알고 있어서 바로 설거지를 했다. 다 먹고 치우니 벌써 오후 9시, 소화도 시킬겸 학교 운동장을 돌았다. 개강 전이라 학교 운동장은 텅 비어있었다. 10바퀴쯤 돌고 나니 체력이 바닥났다.     


 지친 몸뚱아리로 집에 돌아와 바로 씻었다. 화장실 곳곳에 핑크색으로 핀 물 때들이 나를 반겼다. 오늘 맛있는 밥도 차려먹고 치우고 운동까지 했는데 화장실 청소쯤이야 하고 청소를 했다. 청소 솔에 치약을 바르고 핑크색 곰팡이를 닦았다. 치약 효과는 잘 모르겠는데 느낌상 잘 지워지는 느낌이었다.      


머리도 못 말리고 침대에 누웠는데 그대로 잠에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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