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박하경 여행기》는 가장 최근에 등극한 인생 드라마다. 제목 그대로 박하경이라는 인물이 토요일마다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는 8편의 짧은(한 회당 25분) 드라마다. 나는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 드라마를 정주행한다. 볼 때마다 박하경이라는 캐릭터에 고등학교 국어 교사라는 직업이 잘 어울리는 게 신기하고, 매주 꾸준하게 당일 여행을 하는 체력에 놀란다.
드라마에서처럼 매주 당일치기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아직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고 대신 매주 등산을 간다. ‘여행기’는 아니지만, 나름의 ‘등산기’는 있는 셈이다. 주인공 박하경은 회차마다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1편은 해남에 있는 절에서의 템플스테이, 2편은 군산에서 제자의 전시회를, 3편은 부산 영화제, 4편은 속초 부모님 댁, 5편은 대전에서 천문대, 6편은 주인공이 살고 있는 서울, 7편은 제주에서 빵 투어, 8편은 경주다. 그중에서도 매번 2편에서는 울고 5편에서는 내 마음이 다 설레다가 8편에 이르면 마음이 너무 쓰라리고 만다.
생각해보면, 드라마를 본 이후에 1편의 해남과 5편의 대전은 아니지만 다른 지역에서 템플스테이와 천문대를 다녀왔고, 8편의 경주로는 여행을 갔다 왔다. 경주에서는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있다. 불국사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서 같은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 한 분과 같이 택시를 탔었다. 그때 할머니가 자신의 몫이라고 건네주신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은, 석굴암 입구에서 통일대종이라는 종을 쳐보는 체험에 사용했다. 타종 체험은 무조건 현금으로만 계산해야 했다. 여행 일원 중 누구도 현금을 챙기지 않았던 상황에서 할머니께서 꼭 받아가야 자신도 당당하다며 쥐여주셨던 지폐가 번쩍이며 떠오르던 순간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정말 여행 그 자체의 소중한 추억이다.
조금은 스포가 될 수도 있겠지만, 5편은 10대 시절의 우상에 관한 이야기다. 불안한 10대를 양지바른 곳으로 이끌어주던 모든 것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게도 그런 게 있다. 드라마적 표현으로 서술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디어클라우드의 음악이 들려온다. 박하경이 구영숙 작가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지만, 내가 디어클라우드를 만난 것은 용기였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우상 앞에 가능한 멋진 모습으로 등장하고 싶었고, 눈앞에서 직접 보고 듣는다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설레서 그렇기도 했다. 그래서 내게 명함이란 것이 생겼을 때, 아직 불안하긴 하지만 내가 나를 조금은 책임질 수 있어 당당해졌을 때에서야 비장하게 콘서트 티켓을 구매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심장 박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기다렸다가 포스터에 사인을 받았고 무려 포옹도 했다. 10대 시절 매일 듣던 목소리로 내 이름이 불리고 적혀지던 순간, 살며시 호선을 그리며 지어지던 웃음과 눈을 맞춰주던 따듯한 눈빛. 그 모든 게 하나로 이어지는 그날의 기억은 내게 아가미가 되어 숨 쉬게 한다. 1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런 측면에서 2편의 여행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하경은 옛 제자 연주의 전시를 보러 군산으로 가는데, 동시에 지금의 제자 윤서와의 진로 상담 장면이 교차된다. 윤서는 작곡을 하고 싶어 하고, 하경은 현실을 이야기하며 반대한다. 반면 군산에서 전시를 여는 연주에게 하경은 오래전, 유일하게 믿어주었던 사람이었다. 불나방 같더라도 한번 꿈을 펼쳐보라고 말해주었던 사람. 살아가며 그런 어른을 한 명이라도 만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축복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반대편을 생각하게 된다. 하경의 믿음을 간직한 채 살아온 연주와, 지금 하경의 믿음이 필요한 윤서 사이에서 하경은 어떤 마음일까. 이 드라마에는 온전히 괜찮은 사람이 없다. 하경도, 연주도, 윤서도. 연주의 친구들 역시 불안과 체념 사이에서 하루를 버틴다. 모두가 조금씩 흔들리면서도, 사라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2편의 끝에서 하경은 윤서에게 작곡한 노래가 있는지 묻고, 연주에게는 작별 인사를 건넨다. 잘 지내냐고. 잘 지낸다는 대답에 하경이 답한다. 우리 자주 보지는 못해도, 오래 보자고.
《박하경 여행기》는 말한다. 걷고, 먹고, 멍 때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말,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한 그 문장 사이에서 나는 머문다. 갈 수도 있고 가지 않을 수도 있는 상태에. 선택이 여전히 내 손에 남아 있다는 감각에.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든 어디로 가든 단지 걷고 먹고 멍 때릴 수만 있다면 괜찮다는 믿음.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일 것이다.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