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악담과 농담

by 개복사

지금까지 살면서 들었던 악담 중 제일은 역시, 코로나 초기에 들었던 말. 백신이 개발되기도 전이어서 코로나에 걸린다는 게 죽는 것과 같았을 때.


“뉴스 보니까 또 집단으로 걸렸더라? 거기 좀 갔다 와. 일하기 싫다~”


일이 많거나 바쁜 시기가 아니었다. 설사 그렇더라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같은 자리에 있던 모두가 웃었기 때문에 나조차 웃으며, “그럴까요?”하고 답해야 했다.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지만, 여기에서나 처음으로 말해보는 사실은, 그 뒤에 “그래!”라는 답이 돌아온 것.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했으나, 시간이 제법 지난 뒤에 알았다. 그날 그 말에 상처를 받았다는 걸. 상하 관계만 아니었어도 웃으며 넘기지 않았을 일. 그러나 나는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오래 증오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닌 걸 알면서도, 내게 그런 말을 한 상사보다 나를 더 미워했다.


살면서 들은 악담에 대해 말하자면, 밤을 새워도 부족하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살아남고 살아가고 있다는 건 그런 것이기도 하니까.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더럽고 지저분한 말, 떠올리기도 싫은 말, 악담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말 등등. 그중 일부는 내가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되고서 의아한 경우가 많다는 점까지. 아직 어리고 서툰 아이들에게 그렇게까지 하는 악독한 마음을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다 치부하며 어떻게든 삼켰던 쓰레기는 대부분 ‘나’여서가 아닌 그저 내가 거기 있어서인 경우가 많았다. 쓰레기가 발화한 지점을 보면, 그런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 문제였다. 욕과 혐오와 저주와 협박을 빼고는 말하지 못하는 사람, 상하 또는 갑을 관계가 전부인 사람, 자아가 비대한 사람, 관계를 소유의 여부로 판단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


어린이였던 나를 포함해 이제 막 사회 초년생이 되었던 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내게서 찾았다. 내가 잘못해서, 내가 모자라서, 내가 한심해서. 동시에 끊임없이 의심하기도 했다. 정말로 대체 가능한 보잘것없는 사람인지, 은혜도 모르면서 욕심만 부리는 사람인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건방지게 구는 사람인지. 불명확하고 모호한 말들일수록 스스로 살을 붙이며 괴롭혔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그들이 하는 자기소개일 뿐이라는 걸.


악담을 던져놓고 농담이라 부른다고 그렇게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농담이란 발화되는 순간부터 소멸한 이후까지 즐거운 것. 누구도 회피할 필요조차 없으며, 자연스레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 그런 것이야말로 악담이 아닌 농담이다. 내가 심심하니 너 가서 죽으라는 건, 농담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하는 모두가, 단지 괴롭히는 마음이 전부인 말에 상처받고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은 내뱉은 사람에게로 돌아가게 되어 있으니, 그것을 끙끙 앓으며 받지 말고,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튕겨 버리길. 언젠가 한 기사에서 개그우먼 장도연님이 남을 비하하는 개그는 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밝힌 인터뷰를 읽었다. 그날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어른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남을 헐뜯거나 비난당하는 것은 당연하고 불가피한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기사를 본 후 그런 어른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삶에 꺼지지 않는 빛이 생긴 것 같달까.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며, 그중에는 ‘소각되어야 하는 어른’ 또한 있다는 깨달음.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는 선택하고 행동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자각하던 순간이기에, 잊지 않고 떠올린다. 내가 지양하는 것은 악담, 지향하는 것은 악담 없이 농담하는 사람이라고. (by 개복사)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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