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겪고 나면 마음에 울타리가 생긴다. 스스로를 가둬 울타리 밖의 사람을 바라보면서, 시샘하고 질투하고 분노하며 어쩔 줄 모르는 시간을 겪는다. 잃어버린 것에는 일시적인 것과 영구적인 것이 있고, 때로는 명확하지 않아 영영 잃을 수도 있는 그런 것들이 있으니까. 소란하고 고된 마음이, 이전의 일상처럼 가라앉을 때까지의 시간이 필요해진다. 응급상황에서는 누구나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마련이므로.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뒤에 확장된 세계에 발을 놓을 때, 새롭게 구성된 가치관으로 살아가게 된다. 나 자신만 챙기게 될 수도 있고 내 사람을 구분 지어 챙길 수도 있고 가족을 떠나거나 버리거나 만들 수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인연을 끊어내거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며 각각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이해를 바라는 마음도 잘못되거나 시간을 버리는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근래의 변화 중 하나는 평소 메고 다니던 스타일에서 백팩으로 넘어온 것이다. 막상 넘어와 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학교 다닐 때는 죄 못생긴 것만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디자인이나 재질, 가격까지 다양해졌는지 모르겠다. 원래도 물건을 오래 쓰는 사람이지만, 가방이란 것도 오래 두고 쓰는 물건이어서 기준표를 만들어 수개월을 고민했다. 중점을 둔 부분은 크게 네 부분으로 용도, 재질, 무게, 가격순이었다.
출근과 일상적인 용도에 1박처럼 가벼운 여행에도 쓸 수 있어야 하고, 오래 쓰기 위해서는 튼튼함을 더불어 빨래가 중요하며, 보부상에겐 깃털처럼 가벼운 가방이란 선택이 아닌 필수인 데다 아무리 주요 부분을 충족하더라도 예산은 지켜야 했다. 그 외에 디자인, 주머니 위치와 개수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택했고, 실 사용 후기는 백점만점!
새삼스러웠다. 왜 지금까지 쓸데없고 불편하게 지냈는지. 어깨 비대칭을 조심하면서, 필요한 물건을 더 담기보다 덜기에 애쓰면서. 유용하고 편하다는 건 이렇게나 좋은데. 보부상을 불명예스럽게 내려놓을 뻔했지만, 오히려 새롭게 태어났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유일무이한 귀여운 인형과 함께.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상과 익숙한 문화 안에서는 기존에서 벗어난 사고를 하기 어렵다. 어쩌면, 현재 안주하는 삶이 안전하다는 생각, 지금의 삶이 가장 나은 선택이라는 믿음이 더 자연스러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과 그 안의 문화는 시시각각 변화한다. 당장 오늘의 일과만 봐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얼마나 쏟아졌는가. 모두가 구두를 벗어 던지고 정장에조차 익숙하게 신는 운동화, 연령 불문 어디에든 어울리는 백팩, 백팩마다 각각의 취향을 살린 귀여운 인형과 키링, 혼란스러운 시국이면 다시 피어오르는 촛불과 응원봉. 말하지 않아도 자신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고.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