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조각. 너에게

by 개복사
139 조각.jpg

/

139 조각



안녕, 오랜만이야.

퇴근을 하고 저녁도 챙겨 먹고

설거지를 한 뒤에

잠시 책상에 앉았어.

주말에는 오랜 기다림 끝에 개봉한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러 가.

요즘 영화 값은 1만 5천 원인데

인당 4만 원인 비싼 자리를 예매했어.

원하는 시간에 자리가 없었고

기다림이 긴 만큼

좋은 자리에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지만, 역시나

큰 지출이긴 해.

며칠 전에는 거의 30만 원을 주고

새 이어폰을 샀는데.

돈은 참 벌기 어렵고

잘 쓰기도 어려운데

어딘가로 빠져나가기는 왜 이리 쉬운지.

봄철용 옷을 살 돈도 부족한데 말이지.


한때는 보내는 자체에 의의를 두었고

한때는 편지를 받는 일에 몰두했고

지금은 글쎄, 뭘까.

언제나 목표가 분명했던 건 아니지만

작년에 몸이 아파

긴 회복의 시간을 보내면서부터 내내

길을 잃은 기분이었어.

내가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여기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만히 햇볕을 쬐면 되는지

땅을 파야 하는지

둑을 쌓아야 하는지

내내 너무도 혼란스럽더라.

지금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고.


그래도 나 새로운 외국어 공부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고,

겨울 동안 불어난 살도 조금 덜어냈어.

주말 운동도 거의 매주 몇 년째 유지 중이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입사 몇 년 전에 지원했을 땐

서류에서부터 탈락이었는데.

참 모를 일이야, 그렇지?


나는 이 편지를 왜 쓰고 있을까.

아직 나는 네가 누구인지도 정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궁금한 것은 네가

오늘의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

네가 이 편지를 보면

웃을 만한 이야기를 하나 남기고 싶은데,

그런 게 없네.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하나 적자면

지난주 복권에서 4등과 5등에 당첨되었어.

5천 원은 다시 복권을 구매했는데,

뭔가 아쉬운 마음에

오늘은 3천 원을 구매했어.

부디 내 손안에 있는 번호가 1등이기를!


해야 할 건 산더미인데,

피로감이 높아서 앉아서 편지나 써보았다.

편지가 길어져서 이만 줄여야겠어.

부디. 아무리 괴로워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내가 지나간 흔적을

한 번쯤은 돌아봐 주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자연히 잊혀도 되고

적당히 흐려져도 괜찮은 기억을

지니고 살아가기를.

너의 앞날에 행운과 평온을 빈다.

안녕.


by 개복사

월, 수, 금 연재
이전 19화138 조각. 사투의 외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