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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판 Jan 27. 2024

엄마의 주민등록증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는 지갑을 뒤적이다가, 쓸 일이 별로 없어 방치된 내 주민등록증을 발견했다. 주민등록증의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는 내 얼굴이 담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발행 날짜가 2001년도다. 그러니까  23년 전의 내 모습인 것이다. 이때는 참 젊었구나! 흐릿해진 사진만큼이나 무상한 세월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엄마의 주민등록증이 떠올랐다.    


   3년쯤 전 엄마가 요양원에 입소할 때, 엄마의 주민번호가 필요해지자 가족 톡에 올라온 주민등록증의 엄마 얼굴. 그 모습이 낯설고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었다. 저장해 놓은 사진을 찾아 살펴보니, 발행 연도가 1999년. 엄마 나이 67세. 사진 속 엄마는 순박한 눈빛과 정돈되지 않은 듯한 검은 파마머리, 붉게 그을린 피부가 논일 밭일 많이 한 시골 농부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지만, 세월의 무게를 견디어 온 강인함과 당당함도 드러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67세도 적은 나이가 아닌데, 70세가 넘을 때까지도 농사일을 지 않으셨던 엄마에게 67세는 아직 한창나이였다.  늘 씩씩했고 목소리에도 힘이 넘쳤던 그 시절의 엄마는 20여 년 뒤 자신의 삶이 이렇게 변할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걷지도 못할 몸이 되어버리는 것을. 전염병 때문에 자식 손도 맘대로 잡지 못하고 살게 되는 것을.

  시골에서 혼자 사실 적에, 마을의 어느 할머니는 자다가 죽어서 아침에 아들에게 발견됐다고, 그 죽음을

부러워하시던 엄마. 이제는 스스로 판단해서 말하기도, 행동하기도 불가능해진 몸에 의지하여 마지막 고난의 시간을 처절하게 보내고 있다. 엄마의 삶이 그토록 고통스러워 보임에도 돌봐드리지도 못하면서, 엄마가 돌아가신 것보다는 살아계심이 더 좋게 여겨지고 가끔이지만 살아계신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은 것은 얼마나 이기적인 자식의 마음인가.

  

   사진 속 엄마 얼굴을 서글픈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얼마 전 읽었던 소설책에서 주인공 아버지의 죽음이 떠올랐다. 소설 <나의 미카엘>에서 미카엘의 아버지는 자신의 집을 방문한 아들 부부와 손자와 일주일을 함께 보내며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그 후 며칠을 잘 지내시다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시고 만다. 그 아버지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는 미카엘과 가족들. 그렇게 돌아가실 분이 아니었다고 원통해하는 고모님 등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것이 자식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겠으나 힘든 질병에 걸려 치료받으며 아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요양원에서 스물네 시간을 수동적인 상태로 요양보호사의 손길에 의지하여 연명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물론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오래 사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의식주마저도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그 삶도 몹시 고될 것이다.

   어쩌면 이것도 상대적이고 편협한 생각인지 모른다. 여러 이유로 나이가 많지 않음에도 의식주를 누군가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며,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팔십이 넘게 충분히 잘 살았다면, 자신의 죽음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연명하며 오랫동안 생명을 보존하려고 애쓸 것인가. 아니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독립적인 생활을 하다가 죽을 것인가. 나는 어떨까? 내가 80 살이 넘을 때까지 별 탈 없이 잘 살게 된다면, 나는 어떤 죽음을 생각할 것인가. 막상 그 나이가 되어봐야 알 수 있겠으나 지금 마음으로는 독립적인 생활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될 것 같다. 만일 그 나이까지 잘 살아남게 된다면 자식들에게 다짐을 받아야겠다. 어떻게든 살아낼 테니 안타깝더라도 요양원에 보낼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죽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호상이라고 생각하라고.          


  "걱정 말고 너나 잘 살어!" 말씀하곤 하시던 엄마. 사진 속 엄마의 눈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엄마 얼굴 옆에  엄마 이름 석 자가 보인다. 그 아래에는 고향집의 주소가 보인다. 정다운 엄마의 이름, 그리운 고향집의 주소. 어른이 된 이후에는 사는 곳이 아니라 방문하는 곳이 되어버린 곳. 엄마가 살지 않으면서부터는 낯선 곳이 되어 버린 고향집. 이제는 다른 이유로 가끔씩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엄마의 빈자리는 여전히 쓸쓸함을 자아낸다. 조금만 더 버텨내고, 고향집에서 여전히 살고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미 불가능해져 버린 바람을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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