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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판 Apr 05. 2024

수국에게

며칠 전 동네 슈퍼에서 너를 발견하곤

얼마나 기쁘던지

분홍이도 옆에 있었지만

남보라색 수국 너는 내 첫사랑

소담하게 풍성한 꽃더미가 깻잎 방석 위에 앉아있었지.

서른 개가 넘는 꽃송이들이

한 꼭지를 의지하여 미모를 뽐내고 있으니

너희들은 한 형제


언니꽃들이 맵시를 자랑하는 동안

동생꽃들은 제 차례가 오길 기다리며 숨어있구나.

너희 미소가 방안을 환히 밝힌다.

물을 줄까? 햇빛을 쬐어줄까?

바람을 맞게 해 줄까? 음악을 들려줄까?

수국아

나의 이 행복한 고민들이 들리니?     


그런데 이를 어쩌니

겨우 사나흘 지났는데

네가 자꾸 이상해 보인다.

꽃잎이 얼룩지고

잎사귀는 하나 둘 힘을 잃고 쓰러진다.

물을 너무 많이 주었니?

햇살이, 바람이 그립니?

대지에서 너무 먼 곳, 아파트 고층이 싫은 거니?


기쁨도 잠시, 너는 나를 근심하게 만드는구나!

그래,  품에 들어온 꽃들은

너무 빨리 시들어버렸지.

실망하고 또 실망하고.

이번만은 제발! 수국아

여름의 꽃, 신비의 아름다움을 지닌 꽃아

꿋꿋하게 살아나다오.

나비도 꿀벌도 없지만

내 마음 네 곁에 있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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