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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판 Jun 23. 2024

베르테르- 사랑의 블랙홀에 빠지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베르테르는 샤로테를 보자마자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이후로 그의 눈은 항상 그녀만을 바라보았고, 머리는 그녀만을 생각했으며, 그의 삶은 그녀와 함께 함으로써만 의미를 가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로테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몸이었고, 그의 사랑을 받아줄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당신이 없는 내 삶은 아무 의미가  없는데, 당신에게는 이미 정혼자가 있고 당신이 정혼자를 배신하고 나를 선택할 가능성은 없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로테를 만난 베르테르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고 그 끝은 '비극'이었다.




   베르테르는 자연을 즐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도와주었으며, 특히 어린아이들을 사랑하고 함께 놀아줄 알았다. 신분에 상관없이 진지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대했으며, 문학과 예술을 사랑했다. 베르테르는 마음이 가는 상대에게는 열정을 바치는 사람이었다.


   베르테르가 어느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로테를 데리러 갔을 때, 그와 함께 마차에 타고 있던 여인들은 로테를 사랑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그에게 경고한다. 이미 정혼한 몸이라면서. 베르테르는 이들의 경고를 무시했지만 로테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로테는 어린 동생들에게 빵을 나누어주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모습과 더불어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움까지 담고 있어서, 베르테르는 그녀에게서 천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의 모든 삶은 오직 로테에 의해서만 의미를 가졌고, 그녀와 함께라서 행복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로테도 그와의 만남이 즐겁고 행복했기에 거리낌 없이 친교를 나누었다. 베르테르는 로테의 어린 동생들을 잘 돌보아주었기에 그녀는 그를 더욱 신뢰하였다. 그녀는 친교 이상의 관계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그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로테에게 정혼자가 있다는 것. 로테의 어머니는 임종하면서 어린아이들은 모두 로테에게 부탁하고, 로테는 알베르트라는 듬직한 신사에게 맡겼던 것이다. 이때부터 로테는 알베르트라는 신사의 것이었다.  

   베르테르는 사랑의 열정이 커지면 커질수록 절망도 더 커졌다. 베르테르는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로테 곁을 떠났고, 새로운 사랑을 만날 뻔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분의 차이로 인한 상처만 입채 로테 곁으로 돌아간다.


   베르테르가 다시 로테에게 돌아갔을 때 로테는 이미 알베르트와 결혼해서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로테 곁을 계속 맴돈다. 로테의 남편이 된 알베르트는 진실한 청년 베르테르를 좋게 보고 그와의 만남과 친교를 기껍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중에 베르테르의 로테를 향한 열정이 지나치다는 것과,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알베르트는 베르테르를 경계하고 로테에게 그와의 만남을 더 이상 지속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로테는 괴로워한다. 자신을 아껴주지만 풍부한 감성이나 섬세함을 갖지 못한 남편 알베르트와, 반면에 아이들을 사랑하고 순수한 시인의 열정을 품고 있는 청년 베르테르 사이에서.

그녀는 분명 베르테르와 함께 있을 때 훨씬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을 많이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베르테르의 자신을 향한 열정이 감당하기 힘들어졌음을, 자신의 감정도 그를 향해 커져감을 느꼈을 때 그녀는 베르테르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르테르는 실연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점점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마을에서 어느 미망인을 사랑하여 그녀를 독차지하고 싶은 열망으로 살인을 저지른 남성이 있었는데, 베르테르는 이 살인자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껴 그를 변호하려고 나섰다가 공감받지 못하고 결국 알베르트와의 관계도 틀어지고 만다. 알베르트는 베르테르의 상태를 '불행한 정열'이라고 말하는데,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베르테르의 불행한 정열은 로테가 자신과의 만남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극에 달한다. 베르테르를 잃고 싶지 않았던 로테는 그에게, 자신을 차지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향한 연정을 접을 것을 부탁한다. 로테를 만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베르테르에게 그녀의 거절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절망이 어디 있겠는가. 차근차근 죽음을 준비하던 베르테르는 죽기 전날 마지막으로 로테를 찾아간다. 그녀는 베르테르와 둘이서만 만나지 않기 위해 친구들을 초대하려 하지만 친구들이 올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둘 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로테는 베르테르가 전에 번역해서 주었던 시집 <오시안의 노래>를 읽어달라고 한다. 베르테르는 시를 읽어나가고 로테는 눈물을 흘린다. 둘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서로 부둥켜안으며 울었고, 베르테르는 열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로테와 렬한 키스를 나눈다. 로테는 당황하지만 잠시 그의 열정에 몸을 맡겼다가 그를 뿌리치고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그리고 베르테르에게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베르테르는 문 밖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날 밤 자정, 여행을 떠난다는 핑계로 알베르트에게서 빌린 권총, 로테가 그의 하인에게 건네주었던 권총으로 베르테르는 자살한다. 로테는 총을 건네주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부끄러움과 두려움 때문에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새벽에 하인이 머리에 총을 쏘아 죽어가는 베르테르를 발견하고 알베르트와 로테에게 알리러 갔을 때, 소식을 들은 로테는 쓰러져 기절하고 만다. 이 모든 과정이 무척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마음의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게 최선이었냐고 묻는다면 베르테르는 말할 것이다. 그게 최선이었다고. 베르테르는 자살에 대한 알베르트와의 논쟁에서 죽을병에 걸린 사람에 비유하여 마음에 죽을병이 걸린 사람은 자살 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강변하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로테를 향한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 한 명 더 나오는데, 그는 이루지 못한 사랑의 상처로 정신 이상자가 되어 환상 속에서 살고 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한 사람은 영혼이 죽었고, 한 사람은 생명이 죽었다. 이들의 연정은 순수하고 여린 심성이 느껴져서 안타까움과 동정심을 품게 한다.

   반면 사랑의 상처를 폭력과 살인으로 표출하는 사건도 등장한다.

   미망인인 여주인을 사랑하게 된 하인이 있었다. 하인은 여주인을 강제로 안으려다가 결국 쫓겨나는 신세가 되는데, 새로 들인 하인이 여주인의 연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하인을 죽이고 만다. 베르테르가 안타까워서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느냐고 묻자 아무도 그녀를 차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차지할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을 다른 사람이 차지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가끔씩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데이트 폭력과 살인 사건들을 떠오르게 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의 감정과 행동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왜 상대방의 존중 없이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해서 죄를 저지르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안타까움보다는 분노가 먼저 솟아나곤 했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사랑받고 싶고, 사랑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다만 그것이 불가능할 때, 혹은 이별을 해야 할 때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상대방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성숙한 사랑의 모습일 것이다. 왜 사랑의 종말에 폭력과 죽음이 뒤따라야 하는 것일까? 연적을 죽이거나, 자기 자신을 죽이거나, 연인을 죽이거나.  굳이 사랑의 종말에 죽음이 뒤따라야 한다면 그것은 나를 죽이는 것도 상대방을 죽이는 것도 아닌, 사랑 그 자체의 죽음이어야 할 것이다. 사랑의 죽음은 내 마음에서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떠나보냄으로써 완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괴테가 실제로 정혼자가 있는 소녀를 사랑했던 경험과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자살한 어느 청년의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창작했다고 한다. 자살한 청년은 죽음으로 사랑의 고통을 표현했지만, 괴테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셈이다.


    문득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순수의 시대>가 떠오른다. 약혼녀가 있는 아처는 약혼녀 메이의 친척인 엘렌과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엘렌과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아처는 메이와 결혼하여 평온한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가슴 아픈 사랑의 감정들은 마음 깊숙이 간직한 채. 나중에 메이가 죽고 노신사가 된 아처는 다시 엘렌을 만날 기회가 생기지만 그녀를 만나는 것을 그만둔다.  마지막 장면, 머리가 하얗게 센 아처가 엘렌이 있는 방의 창문을 한참 동안 올려다보다가 떠나는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 마음이 공감이 되어서 긴 여운이 남았었다.

베르테르의 사랑이 이와 같았으면 어땠을까. 잡을 수 없는 사랑을 붙잡으려 하다가 불나방처럼 타버리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붙잡고 삶을 더욱 사랑하며 가치 있게 살아갔더라면......




참고도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요한 볼프강 폰 괴테/박찬기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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