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와 실타래

by 자정의 크리스마스

현관에서 다섯 발짝 앞. 아빠의 소파가 등을 꼭 붙이고 있는 벽 너머 나의 작은 방. 그곳에 나는 짧은 독립의 역사, 5년 치의 짐을 들고 이사를 왔다. 본가에 딸린 작은 방이지만 나는 이 작은 방에 내 세상을 넣고 싶은 욕심이 가득했다. 한편엔 작은 티브이, 저 구석엔 행거,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 작은 소파. 내 인생 첫 번째 가구였던 벨벳 질감의 튼튼한 초록 소파 친구는 너무 커서 본가의 작은 방에 들어지 못했다. 쩔 수 없이 새로운 주인을 찾아 나 보낸 그를 대신하여 여전히 내 세상에 소파 하나가 절실했고 한 달여의 고민 끝에 두 번째 소파를 샀다. 그 소파는 밝은 갈색의 단단한 나무 프레임을 가졌고, 가운데가 조금 솟아 오른 단단한 1인용 소파였다. 나는 이 친구를 베란다 창가 앞에 두었다. 방 전체를 바라보면서도 베란다 바람을 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소파에서 아침 일기를 쓰기도 음악 감상을 하기도 티브이를 보기도 하지만 이 친구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따로 있다. 앉기 전, 나는 심오하지 않고 적당히 흘려들어도 상관없는 시시콜콜한 영상을 경건하게 준비한다. 소파 옆 실타래가 잔뜩 든 락앤락 통에서 쓸만한 실을 신중히 고르는 일도 아주 중요하다. 선택의 순간이 끝나면 등받이 쿠션을 가지고 소파에 앉는다. 익숙한 몸짓으로 왼손 검지 손가락에 실을 반바퀴 감고 오른손엔 갈고리 같은 코바늘을 연필 잡 듯 쥐고선 뜨개질을 시작한다. 누가 뜨개질은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만 할 수 있는 거랬는데 난 그냥 도망치려고 해왔다. 실을 엮고 바늘로 감고 당기고 하는 시간은 나를 힘들게 하는 마음들로부터 멀리 도망가 오로지 나만의 것일 수밖에 없었다. 한코 한코 세다 보면 딴생각은 도저히 틈이 안 나니까. 뜨개질은 명상이랑 비슷한 뇌파가 나온대, 나는 그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도 찾아보지도 않고 덜컥 믿어버렸다.


결국 팔걸이 소파와 이 보잘것없는 실타래로 나는 마침내 완벽한 은신을 이뤄낸다. 조금씩 흐려져야지 조금씩 멀어져야지 조금씩 잊어야지 하며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면 세상에 남은 건 소파와 나, 그리고 묵묵히 길어져 가는 편물, 가벼워지는 실타래들 뿐. 가끔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언가 분하고 슬픈 마음으로 다 없어지길, 없어져버리길 소망하며 뜨개질을 하기도 했다. 뿌예진 눈 때문에 실이 잘 보이지 않아도 손은 부지런히 더듬더듬 코를 만지다가 실을 감은 바늘로 편물을 쿡쿡 찔러가며 울었다. 울며 뜨개질하는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 보일까 걱정하지 않았다. 완벽한 은신으로 아무도 나를 눈치채지 못할테니까


은신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등은 굽어가고 손은 저려온다. 뻐근한 목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그제야 느껴지는 베란다 밖의 노을, 어둠, 소음. 기지개를 켜며 가만 벽 너머에 귀 기울이면 도란도란 부모님의 목소리. 그제야 푹 꺼져버린 소파를 뒤로 하고 일어나면 단단하고 솟아오른 소파의 정중앙은 내가 놓고 온 마음과 시간만큼 푹 꺼져있다. 나는 보드라운 실타래를 두고 보드랍지만은 않은 현실 위에 발을 붙인다. 은신 종료 현실 복귀 완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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