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그 위까지 제 말이 잘 들리시나요. 여기는 바닷속 깊은 저 아래의 해구입니다. 처음은 저도 물결을 넘실대며 수면 위를 유영하는 삶을 지냈던 적도 있습니다만 여러 번 물을 잔뜩 먹어버린 몸과 마음은 더 이상 기능을 멈췄습니다. 이제는 물보다 무거워져 버려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수면 아래 저 깊은 곳에 머물기만 하더군요. 가슴을 부풀어 큰 숨을 쉬어도 공기 방울보다는 뜨뜻한 한숨과 울음만이 나오게 된 지 오래입니다. 긴 머무름으로 결국 제 몸과 정신은 심해(深海)화 되어 버렸습니다. 이곳의 무거운 압력과 희미하다 못해 없다시피 한 빛의 양에 적응하여 점점 몸은 잔뜩 안으로 굽고, 뜨나 마나 한 눈은 질끈 감은 채 살아내고 있지요.
잔뜩 짓눌린 이 삶에 행복이란 과연 어떤 감정일까요. 그 ‘감정’은 단박에 삶의 위치를 전복시키는 부표와 같습니다. 그것의 온기에 놀라 와락 껴안아 버리면 튀어 오르는 행복감의 상승을 따라 제 몸뚱이 또한 수면 위로 강하게 떠오릅니다. 깊숙한 아래에 있을수록 솟아오르는 힘은 더욱 커지고 그 깊이만큼 세상이 뒤집히는 강렬한 전복의 순간은 속도가 빨라집니다. 한 번은 그 전환이 너무 어지럽고 비현실적이라 그간의 심연이 다 무엇이었으며 이 ‘감정’은 무엇이기에 이제껏 내 삶을 부정하는가 하는 노여움이 일었습니다. 저에겐 빛이 도달하지 못한 이곳의 어둠이 보편적이며 지금 제가 가진 유일하게 잘 아는, 가장 선명한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슬픔이 맞닿아 있고, 살고 싶은 마음과 죽고 싶은 마음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저는 저너머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을 바라보다 깨달았습니다. 이토록 푸르고 그리도 깊었으면서요.
당신은 바다 밖에 끌려 나간 심해어의 최후를 아시나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심해어의 생김새는 심해를 벗어나 뭍 위로 올라오면 무척 볼품없어진다고 합니다. 바다 깊숙한 곳에서 그를 그나마 지켜주었던 특징들은 모두 수면 위 햇살 아래에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저도 그처럼 어쩌다 발견한 행복에 끌어올려져서는 제가 살던 심연과 달리 흘러넘치는 감정에 가빠진 숨과 뜨거운 행복, 삶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옅어진 것에 적응하지 못해 볼품없고 못난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잔뜩 부풀어 축 처진 모양새로 있겠지요. 어쩔 줄 몰라하면서요. 제가 가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떠들썩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당신도 이 말들을 단박에 이해했을 겁니다. 부풀어진 마음을 진정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를수록 팽팽하게 커져버린 풍선 같은 마음이 언제 쪼그라들지 걱정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행복은 언제나 저에겐 갚아야 할 빚이었습니다. 미래의 제가 톡톡히 치러야 할 아주 아픈 추락으로요.
고양감 속에 저 높이 저를 올려놓았던 짧은 심연 밖 산책은 우려했던 것만큼 금세 쪼그라들어 저를 원위치로 돌아가게 합니다. 올라갈 때는 그렇게 순식간이더니 내려갈 때는 꽤 느릿합니다. 무엇을 내려놓고 또 무엇을 끌어안아 몸이 무거워지는지 여실히 느껴집니다. 다시금 내려놓게 되는 것들을 아쉬워했던 것도 같습니다만 요즘은 그냥 눈을 꼭 감고 내려갑니다. 그럼 그건 처음부터 제가 가져본 적 없는 것이 됩니다. 또다시 쪼그라들고 작아졌지만 괜찮아요. 따뜻하고 말랑해져 부푼 마음보다 차갑고 단단히 쪼그라든 마음이 덜 상처받고 덜 아플 거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이 작고 단단한 심해어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밝은 세상인 저 위에서부터 어둡고 축축하며 소금기 가득한 눈물바다 저 아래까지 오르락내리락 휘둘리지 않게 하거든요. 그저 끈적거리는 늪처럼 서서히 감싸며 잠식하겠지요. 저는 오늘도 수면 아래, 깊고 어두운 어딘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