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한 개의 세계를 부숴야 한다.
어머니는 이 유명한 구절을 알고 계시는지요. 얼마 전 저는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가방을 보게 된 적이 있습니다.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잔뜩 그려진 가방이요. A는 Apple, B는 Bear... H로 시작하는 단어는 Home이었습니다. House도 아닌 Home, 입을 둥글게 말아 숨 한번 내뱉고는 입을 다물게 되는 그 동그랗고 네모난 단어가 이상하게 마음속에 콕 박히더군요. 그리고 앞서 말한 유명한 소설의 구절에서 저에게 세계란 가족, 바로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 눈에는 어머니가 둥글고 큰 요새 같았거든요.
처음으로 세계를 마주하게 된 아기인 저는 감정을 그때는 비록 잘 몰랐을 테지만 필시 어머니를 만나 기뻤을 겁니다. 아주 나중에야 듣게 된 말이지만 어머니는 아기가 무서웠다고 하셨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아기와 어둡고 텅 빈 방 안에서 함께 있는 것이요. 까만 눈동자에 당신만을 가득 담은 아이가, 그 까만 눈동자가 무서웠다고요. 그래서 어머니는 그 눈동자가 무서워 눈을 꼭 감으시고는 어서 아기가 잠들기를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이 감정이 막연하고 상상이 잘 가지 않지만 그게 두려움이었다면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오빠가 태어나고 두 해 뒤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남매가 된 저희는 치고받고 참 많이도 싸우면서 쑥쑥 자라났죠. 자라는 동안 세계는 아주 많은 위기가 있었고 종종 금이 가기도 했습니다. 금이 가는 소리에 자주 깨곤 했던 저는 또 새로이 금이 갔을 제 세계를 어루만지며 얼마나 더 버틸지를 가늠하고는 했습니다. 물론 많이 울었죠. 그래도 어머니의 헌신으로 참 오래도 버틴 것 같습니다. 결국 제가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저의 세계는 어머니 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우리 둘 뿐이라는 게 참 막막해서 차마 깨버리지도 못하고 날아가지도 못한 채 어머니의 둥지 속에서 오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더 이상 외롭지 않겠구나, 나 없이도 괜찮겠구나 싶었을 때 저는 알을 깨고 나왔습니다. 어머니라는 세계에서 벗어나 가족을 조금은 우선시하지 않아도 되는, 어머니가 제 삶의 목적이지 않은 그런 곳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물론 깨고 나오는 사이에 있었던 많은 갈등과 눈물, 그리고 속상한 다툼들은 넘어가기로 해요.
죄책감을 느끼시는 어머니께 한 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전 태어나 가진 모든 우주나 다름없던 어머니 덕분에 이만큼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벗어남으로써 이미 극복했지만 그 안에서 겪었던 풍요와 결핍은 모두 빠짐없이 저를 이루는 요소들이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달걀에서 태어난 닭, 메추리알에서 태어난 메추리처럼 저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한 사람입니다. 잊지 말아 주세요.
마지막으로 어머니, 언젠가 당신께서 제가 당신 인생의 전부이고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씀하셨던 일을 기억하시는지요. 혹여 아직도 그러시다면 어머니도 어머니를 둘러싼 알을 깨고 나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세계가 부서진다고 삶이 멈추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또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한 태어나는 과정일 거예요. 어머니께 제가 단 하나의 세계로 영원히 남아있지 않기를 자식으로서 소망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