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늙음만 남는 벌

by RYUKANG

소설 속 순수한 17세 여자를 연기가 아닌 삶처럼 보여준 김고은과 그녀의 섹스신. 그 섹스를 사다리에 올라 바들거리며 몰래 관종 하던, 숯에 남은 마지막 탄소에 빨간 불꽃이 붙은 70대 노인의 마음이 강렬했던 영화 <은교>. 소설과 영화가 담으려고 했던 건 늙은 남자의 어린 여자에 대한 성적인 판타지나 성욕보다는 시간의 흐름, 시간이란 눈금이 새겨진 일생 위에 다른 시점에 선 사람들의 관계와 역학, 그리고 무엇보다 늙음이 가져오는 변화와 늙음,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결국 <은교>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늙음의 추함이나 젊음의 아름다움 보다는 누구나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문득 영화를 보며 징소리처럼 강하고 긴 여운이 남았던 대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습니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https://youtu.be/egbd3Vg08jw


오래전 부족국가 시절에는 어느 지역 어느 문화에서도 오래 산 사람이 존경과 존중을 받았습니다. 오래 살았다는 것은 더 많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고 대개의 삶은 그런 경험이 무척 소중한 틀 안에서 이루어졌으니까요.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고 인터넷으로 정보화 혁명이 일어났다고 하더니 이제는 Ai가 또 새로운 혁명을 만드는 세상으로 진입하는 것 같습니다. 삶의 질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한 가지는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노인 인구의 증가와 함께 노인에 대한 은근한 비토(veto)와 혐오가 점점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나이만 많아도, 많으면 많을수록 더 존중받던 예전과 대체 무엇이 달라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요?삶이 담기는 틀이 달라져서라는 생각도 들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아닌 것 같습니다. 설사 예전과 똑같은 삶의 방식과 형태라고 해도 비슷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조금 자본주의 적인 접근이지만 제 생각엔 노인이라는 아이덴티티가 가졌던 가치가 사라졌지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경험이 가지는 지식은 이미 인터넷과 앞으로의 Ai가 압도적입니다. 그럼 감성적인 경험이거나 오랜 삶을 살며 깨달은 철학이 남아있습니다.


무엇이건 가진 것들을 자식과 그 자식의 자식이 살아갈 사회를 위해 베푸는 노인.

다음 세대를 위해 양보하는 노인.

삶에서 깨달은 철학을 실천하는 노인.


가진 것을 어떻게든 움켜쥐고 오직 가족에게만 물려주려는 노인.

노인이니 오히려 양보를 받아야 한다는 노인.

삶에서 깨달은 철학은커녕 논리도 부족한 왜곡과 아집에 집착하는 노인.


여러분은 어떤 노인이 더 많이 보이시나요? 다른 건 몰라도 깨달음을 가진 노인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노인이 되었다고 해도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노인이라 뭔가를 대접받기는 틀려버린 세상이 되었습니다.


왜 노인이 가졌던 가치가 사라졌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예전에는 60살만 넘어도 노인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수명이 짧았죠. 그러다 보니 철학과 베풂이 있건 없건 귀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이젠 80살이 돼도 노인정에 가면 애 취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노인이 너무 흔해졌고 흔해지다 못해 차고 넘칩니다.


자본주의는 흔한 것에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보석류가 그렇습니다. 핵전쟁으로 인류문명이 멸망하거나 기후위기로 식량이 극도로 귀해지면 다이아몬드를 한 트럭 준다고 해도 살 수 있거나 바꿀 수 있는 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이아몬드는 비쌉니다. 귀하니까요.


최소한 지금은 어디에도 흔한 흙 한 줌을 들고 살 수 있거나 바꿀 수 있는 건 거의 없습니다. 그런 흔한 것들은 처지가 비루해집니다. 아주아주 오래전에는 젊은이 100명에 잘하면 노인이 1명인 시절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젊은이 모두를 합친 것보다 노인이 절대적으로도 더 많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신체적인 매력도 없고 경험 지식에 대한 존중도 없는데 숫자는 많습니다.

심지어는 꽤 큰 자산을 가진 노인들이 많은 동네에서도 노인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존경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흔하면 가치가 떨어지는 자본주의가 더 건강해지며 노인의 가치는 점점 더 빨리 심하게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경도가 제일 높아서 비싼 게 아닙니다. 극히 귀한 광물이라 지금처럼 비쌀 수 있는 것이죠. 아... 다이아몬드는 지구상에서 그렇게 귀한 광물은 아니랍니다. 다만 시장에 방출하는 양을 조절해서 훨씬 더 비싼 가치를 만들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이제 저도 얼마 안 가 노인이 됩니다. 그런데 마음이 씁쓸합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고 작은 변화라도 만들기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이아몬드처럼 노인의 숫자를 실제보다 훨씬 적게 보이게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이제라도 노인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하면 좋을까요?


만약 제가 은교라는 소설을 지금 쓴다면 이런 대사를 넣을 것 같습니다.

"너의 젊음은 이젠 노력이 필요 없는 상이되었고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받아야 하는 벌이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