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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ANG Mar 11. 2024

참밸리 참치 파티

#41

https://youtu.be/36v0ewknPEs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G를 만났습니다. 최근에 산 드라이버가 자기에겐 잘 맞지 않는다고 한번 쳐보고 싶으면 가져가서 쳐보라고 해서 겸사겸사 만든 저녁 약속이었습니다. 소문난 맛집답게 세꼬시 횟집은 6시가 되기 전부터 사람들이 밀려들었습니다. 세꼬시와 소주를 함께 하다 문득 생각이 났는지 G가 참치부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내가 1박 2일 골프를 많이 다니잖아. 그런데 매년 다니는 커플이 두 커플이 있어. 그중의 한 커플이지."

"진짜? 아닌데. 너 지난번에도 골프 매니저를 통해 1박 2일 골프 여행을 처음 보는 부부와 다녀왔다고 했었는데..."

"아. 여행사나 골프 매니저를 통한 생초면 여행 말고."

친구가 말하는 1박 2일은 조인으로 만난 라운드를 하고 난 후 인연이 발아해 싹이 터서 다녀오는 이어짐이 담긴 1박 2일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인을 자주 해서 무척 유들유들할 것 같지만 사실 G는 무척 까타로운 친굽니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지만 인연으로 들어서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과 경험을 겸비한 친구입니다. 마음을 여는 것과 인연이 이어지는 것은 같은 길에 있지만 발을 딛는 땅바닥과 숨을 쉬는 공기처럼 다르다는 걸 잘 아는 친구입니다.


"느낌으로는 10년도 더 된 것 같아. 알프스대영이라고 너도 알지? 횡성에 있는... 거기에서 처음 조인으로 만났지."

싱긋 웃는 G의 얼굴에 시간이 묻어있는 장면들이 스치는 것 같았습니다.


"첫 조인 라운드를 하는데 여자분이 간식을 바리바리 많이 싸 오셨더라고. 하나하나 나눠주시는데 그때가 한 여름이었거든. 자연히 녹아서 라운드 중간쯤 슬러시가 되게 얼려온 직접 만든 감주스가 얼마나 시원했는지 몰라. 그뿐인가 맛있게 구운 고구마랑 떡이랑 정말 맛있게 먹었지."

먹는 걸로는 크게 감동받지 않는 G인데 특이했습니다. 각별한 정성을 듬뿍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분이 어느 홀에선가 대기하는 동안 티 박스 근처 야산에 핀 작은 들풀을 발견하곤 그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거야. 또 어느 홀에 선가는 쑥으로 기억하는데 어떤 풀 잎을 따서 내음을 맡더라. 모습이 뭐라고 할까 고향 느낌? 아무튼 참 정겨운 모습이었어."

"고향? 넌 서울이 고향인데... 무슨 고향?"

G가 '그러게'라는 표정을 지으며 웃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190cm에서 조금 빠지는 큰 키였어. 엄청난 장타자인데 캐리로 250미터 정도는 칠 수 있는 것 같더라고. 물론 알프스 대영은 드라이버가 길면 오히려 더 잘 죽거든. 그래서 드라이버 재미는 보지 못했지만 말이야. 어쨌거나 그 친구가 우리랑 나이가 같아. 그런데 그 친구도 마음이 참 곱더라. 남자에겐 쉽지 않은 단언데... 곱다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그리고 방부제 처리를 거부하고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달까?"


"그렇게 첫 라운드를 재미있게 마쳤고 다시 한번 모이자고 했어. 두 번째 라운드는 참치부부가 사는 강북에서 가까운 포천 참밸리였고."

세꼬시를 한 젓가락 초장에 찍어 입에 넣은 G가 혼잣말을 합니다.

"흠... 참밸리 참치라운드."

드디어 참치부부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가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전반을 마치고 아참 그 친구는 조 씨야. 조사장이 오늘은 특별히 친구를 위해 제대로 된 참치맛을 보여주겠다며 카트뒤에 실려있던 쿨러백을 가져와 여는 거야. 졸지에 카트 뒷자리가 소풍날 돗자리가 된 거지. 쿨러백에서 비닐과 페이퍼타월로 겹겹이 쌓여있는 일회용 용기들을 하나씩 꺼내 펼치는데... 와... 펼칠 때마다 썰린 모양이 특이한 눈밑살, 볼살, 입천장살, 하얀 기름과 살이 속껍질 두께가 1센티는 되는 자몽을 자른 단면 같아 보이는 배꼽살, 연한 핑크빛 소고기 위에 흰 눈이 내린 것 같아 보이는 목살(가마살). 뽀얀 백도를 얇게 저미고 거기다 빨간 점을 찍은 것 같은 뱃살. 아가미 부근의 가마도로, 뭐 그런 참치의 특수부위가 나오는 거야. 내가 일식을 워낙 좋아하잖아. 그런데 그렇게 좋은 부위를 한꺼 번에 보는 것도 모두 양껏 먹어 보는 것도 처음이었던 것 같아."

다시 생각해도 상상을 불허하던 그때 장면이 떠오르는지 G가 '허허' 너털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근데 조사장이 워낙 이야기를 툭툭 던지는 걸 좋아해. 참치 부위별로 설명을 어찌나 하던지. 이건 이렇게 먹어야 한다. 이건 이런 맛이고 그 이유가 어떻다. 이건 이걸 찍어 먹어라 저건 저걸 찍어 먹어라..."

그때가 생각난 G가 한번 더 신나게 웃어젖혔습니다.


"조사장이 지나가다 옷이 없어 추운 사람을 보면 입던 코트도 정말로 흔쾌히 벗어주는 성품인데 그날도 베풂으로 신이 났었지. 그런데 제수씨도 못지않은 사람이라 질세라 60도 냉동고가 있어서 보관이 가능하고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해동이 중요한데 해동은 자신이 했다며 정말 기뻐하더라. 묵은지, 상추, 깻잎, 생고추냉이, 간장, 회고추장, 기름, 김 등 회를 맛있게 먹기 위해 필요한 것들도 제수씨가 다 준비한 거였고."



G도 베풂이 좋은 친구인데 그 정도 베풂을 받았으니 분명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샤워를 마치고 프런트로 갔던 참치부부는 깜짝 놀란 눈으로 G를 찾았다고 합니다. 라운드를 마치고 샤워실로 가는 척하다가 먼저 카운터로 간 G가 참치부부의 그린피를 먼저 계산을 한 거였죠. 


G가 그랬답니다. 오늘 먹은 참치가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백만 원어치는 될 거라고 너무 약소하다고 왜 그렇게 귀한 참치를 가져왔냐고 농담 삼아 따졌다고 하더군요.


결국 그날 저녁은 참치부부가 내기로 하고 간신히 골프장을 나설 수 있었다고 합니다.


G가 소주잔을 털고 말을 이었습니다.

"근데, 돈을 쓰는 문화중에 난 좀 신기한 게 있어. 우리나라가 밥은 참 잘 사고 비싼 술도 잘 사는데 이상하게 그린피를 내주는 경우는 드물잖아. 뭔가 그린피만은 각자 계산하는 게 불문율 같은 느낌이야. 그래서 난 오히려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을 때, 제일 좋은 방법은 그린피를 내주는 것 같아. 내 고마운 진심이 훨씬 더 잘 전달되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친구는 그래서 그린피를 내주는 걸 참 좋아합니다. 물론 아무나 언제나는 절대 아니고요.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아직도 여전하다고 합니다. 매년 한 번 혹은 2번 1박 2일 골프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첫 1박 2일 골프는 고창 CC에서였는데 참치부부는 그때도 G가 좋아하는 꽃게와 블루스타를 가져와 직접 찜을 쪄 주었고 해삼과 멍게, 조개, 홍합국까지 정말 대단한 상을 차려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G는 상을 받은 기억은 나는데 다음날 아침까지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하네요. 참치부부의 선한 마음에 절제력을 잃고 소주를 마셨던 G는 결국 밤새 토사곽란으로 아침에도 꽐라가 되어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상태로 라운드를 마쳤다고 합니다. 그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한 동안 술을 입에도 대지 못했다고 하네요.


석정힐 CC도 가고, 고창 CC도 한번 더 가서 팔뚝만 한 장어도 먹고, 알펜시아 CC에서 다시 한번 최고급 참치와 싱싱한 해산물 파티도 하고...


또 그 사이에 참치부부의 이쁜 딸과 친구 아들 소개팅도 있었고 웬만해서는 상가에 안 가는 친구가 문상도 한번 했다고 합니다. 


올해도 언제일지 모르지만 친구부부와 참치부부는 또 한 번의 1박 2일 골프를 갈 것 같다고 합니다. 행여 이어짐이 소중해져서 무거워지는 인연을 거부하는 G가 그렇게 올해도 또 인연을 이어간다는 게 신기합니다.  


골프는 어쩌면 아는 사람이면 아는 대로 초면이라면 초면인대로 동반자가 가진 더 다양한 모습과 마음을 느낄 수 있어 더 즐겁고 재미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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