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YUKANG Mar 21. 2024

골프 독재? 아니 레토릭의 독재!

시실리(Sicily 혹은 시칠리아) 섬 하면 생각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마피아와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의 유레카인데요. 어쩌면 영화 대부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 돈 콜레오네는 아르키메데스의 후손일지도 모른다는 농담 같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록된 시라큐스(Syracuse)는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가 태어났고 로마병사에게 살해될 때까지 살았던 시실리섬 남동쪽 끝에 있는 도시입니다. 로마를 대표하는 정치 철학자인 키케로(Cicero)가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도시라고 평했을 정도로 그리스/로마 시대에 번영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시라큐스는 문명이 시작된 이후 인류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이 최초로 등장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기원전 5세기 중후반 지금의 시라큐스, 당시 도시국가였던 시라쿠사(Siracusa)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 결과 도시 내 대부분의 땅이 무주공산이 되었고 빼앗긴 땅을 찾거나 기회를 틈타 땅을 차지하려는 사람들로 난리가 났었다고 합니다. 땅문서가 따로 없던 시절이고 민중의 혁명 이후라 그랬는지 땅의 소유주를 시민법정에서 결정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과 논리 혹은 설득으로 땅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거죠.


이때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면 나타난 사람들이 소피스트(sophist)였고 법정에서 말이 먹힐 수 있게 말하는 방법과 기술을 활용해 땅을 찾아주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 법정에서는 다양한 이유와 상황을 담은 이야기나 말이 오직 말뿐인데도 꽤 큰 규모의 공동체에서 힘을 발휘했던 인류 최초의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수긍하게 하는 힘을 가지는 말이나 이야기, 혹은 논리를 우리는 레토릭(rhetoric)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레토릭은 정의와 평등에 힘을 실어 주기도 하지만 하나의 레토릭이 너무 강해지면 독재로 귀결되기도 합니다. 독일민족이 우월하다는 히틀러의 레토릭은 독재를 넘어 세계 2차 대전 불러일으킬 정도의 힘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https://youtu.be/kZHT9WfsJk8

작년 여름,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 골프장에서의 평일 라운드 총 소요 비용이 30만 원을 넘기는 것 같더니 올해도 여전할 것 같습니다. 주말 라운드 총비용도 50만 원을 넘기게 될 것 같고요.


사실 한국의 골프는 대중 스포츠가 되기엔 너무 비용이 많이 듭니다. 여러 지표가 있지만 대략 국민소득이 8만 불인 미국에서도 중산층 골퍼들은 그린피가 50불 이하인 지자체 소유의 퍼블릭 골프장을 선호합니다. 관리도 좋고 가까우니까요. 물론 미국에도 한국보다 훨씬 더 비싸고 극소수 회원이 아니면 아예 칠 수도 없는 고급 골프장은 있습니다.


그런데 대략 국민소득이 4만 불로 미국의 절반인 한국이지만 전국적인 평균 그린피는 거의 100불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맥도널드 지수처럼 소득 대비로 본다면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는 두 배가 넘는 가격입니다. 왜 우리나라 골프는 미국보다 2배나 더 비싸야만 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소득 수준에 비해 한국 골프장의 그린피가 절대적으로도 또 상대적으로도 많이 비싸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명문이라고 불리는 회원제 골프장과 서울이나 일부 대도시와 가깝게 자리한 골프장을 제외한 나머지 골프장의 그린피는, 물론 착한 그린피를 받는 곳도 있겠지만 상상할 수 없이 비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왜 그렇게 생각할까요?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런 말이 바로 떠오릅니다.

"한국은 인구가 많은데 밀도도 높고 그러니 부동산 값은 절대 떨어질 수 없어. 부동산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은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은 게 맞지. 잠깐씩 내리거나 정체할 수는 있지만 한국의 부동산은 오를 수밖에 없으니까."라는 레토릭입니다. 엄청난 힘을 가진 레토릭이죠.


골프가 영국의 목동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설처럼 레토릭이란 단어도 땅에 대한 분배과정에서 분명하게 자리매김을 해서 그런 걸 까요? 설득이 됩니다. 

'그래 그린피는 비싸지. 하지만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만 봐봐. 이 좁은 곳에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는지! 넓은 땅이 필요한 골프장이니 어쩌면 너무 당연한 거 아닐까? 오히려 더 비싸야 맞는 건지도 몰라.' 


그런데 레토릭이란 게 참 묘해서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도 힘들지만 이미 빠진 레토릭이 튼튼하고 단단해 지기를 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설득되고 인정한 레토릭인데 허점이 보이면 안 되니까요. 

'그래. 미국은 땅이 얼마나 넓어! 그러니 당연히 한국보다는 훨씬 싸야지. 그런 걸 생각하면 미국 골프장은 싼 것도 아니야.' 


정말 그럴까요?

미국은 땅이 넓습니다. 한국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죠. 미국사람들 중 80%가 넘는 사람들이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일부 미국 사람들은 슈퍼마켓을 가기 위해 30분 넘게 운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극히 일부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사람들도 슈퍼를 가기 위해 1시간을 운전하는 곳에서는 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골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1시간 30분은 골프장으로 가는 편도 운전의 한계치이고 대개는 1시간이 넘는 곳은 자주 가지 않습니다. 월마트 같은 대형 슈퍼가 생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이용객이 있어야 합니다. 골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이 아무리 넓어도 결국 사람들이 충분히 모여있는 곳이 아니면 골프장은 들어설 수가 없습니다. '땅이 넓은 나라니까'라는 말은 골프장의 그린피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레토릭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보조 레토릭이 '1시간 30분'이라는 칼을 뽑고 휘두릅니다. 서울에서 1시간 안쪽 거리의 골프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1시간 30분 이상 운전을 해야 하는 경기도 끝자락이나 심지어는 지방 대도시와도 멀리 떨어진 산속 골프장의 그린피가 비싼 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왕관이 순금인지 은이 섞여 있는지는 색이나 모양을 봐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같은 무게가 되게 만들었다면 무개를 재도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물속에 넣고 넘치는 물의 양을 재서 밝히기 전까지는 오리무중이었던 것처럼 방법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사실과 진실의 구분이 불가능합니다.


문득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는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그때 누군가 왕관을 물에 넣어서 밝혀지는 진실이 권좌를 지키는 데 불리하다는 레토릭을 만들고 그런 레토릭에 왕이 설득되었다면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는 훨씬 더 나중에 다른 누군가에 의해 밝혀졌을지도 모릅니다.


언제든지 사실을 덮어 버릴 수 있는, 아예 사실 자체를 왜곡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레토릭!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일 것 같습니다. 개인 한 사람 혹은 작은 집단, 혹은 이익의 주체를 위한 레토릭인지, 시민,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한 바탕이 존재하는 레토릭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레토릭 자체에 빠지는 순간 반지성의 승리는 지속될 것입니다. 레토릭이 가리키는 곳보다는 레토릭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을 먼저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즌 시작. Ai 피노키오 장비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