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류캉입니다.
지난 4월 KPGA투어 우리금융 챔피언쉽에 이어 어제 KLPGA E1 채리티 오픈 대회가 페럼 CC에서 끝났습니다. 페럼 CC는 2021년 KPGA 투어참가 선수들이 뽑은 최고의 토너먼트 코스에 뽑혔지만 아마튜어 골퍼들에게도 각별한 인정을 받고 있는 골프장입니다. 백티(back tee)와 프론트티(front tee)에서의 플레이는 하늘과 땅차이만큼 차이가 큽니다. 같은 홀을 치지만 아마튜어의 골프는 전혀 다른 홀을 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프로와 아마튜어의 선호도와 재미가 다른데 어떻게 페럼CC는 프로와 아마튜어 모두에게 인정받고 재미있고 도전하고 싶은 코스가 되었을까요?
골프를 좀 친다는 아마튜어 골퍼들의 실력이 드러나는 곳. 점수가 안 나와도 기분 좋은 곳. 싱글이 90대 타수를 치고도 다시 가서 플레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
페럼 CC가 유명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멋진 클럽하우스라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클럽하우스가 아무리 훌륭해도 물론 '와'하고 탄성을 내뱉는다 해도 그뿐, 골프라는 행위 자체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피트 다이(Pete Dye)의 조카인 신시아 다이 맥그래(Cynthia Dye McGarey)가 설계한 코스 중에는 제주도 싸이프러스와 페럼 CC를 플레이해 보았습니다. 제가 느낀 그녀의 설계는 난이도가 높은 홀들과 상대적으로 쉬운 홀들이 적당히 섞여있어 재미와 도전, 긴장이 혼재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훌륭했지만 코스 설계만으로는 굳이 레인보우 힐스를 들먹이지 않아도, 못지않게 좋은 코스가 많지만 페럼 CC 같은 인기와 인정을 받지는 못하는 걸 보면 코스 설계 역시 지금의 페럼 cc가 누리는 인기와 인정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그럼 남은 건 코스 컨디션인데 페럼 cc의 페어웨이와 러프 관리가 훌륭하지만 역시 최고의 인정을 받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페럼 cc가 왜 그렇게 높은 지지와 인정을 받는지는 직접 플레이를 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페럼 CC의 그린은 국내 어느 골프장에서도 느껴 본적이 없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빠르고 일정한데, 핀 위치도 대개는 어려운 데 꼽혀있어서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한마디로 그린에 감탄하다 보면 라운드가 끝나는 곳이 페럼 CC입니다.
만약 페럼 CC의 그린 스피드가 2.5 정도였다면 어땠을까요? 그린 스피드는 빠르면 어렵지만 펏이 들어갈 확률은 오히려 높아집니다. 당연히 느리고 표면이 거친 그린에서는 펏이 들어갈 확률이 훨씬 더 낮아집니다. 물론 3 펏의 위험은 그린 스피드와 비례해서 높아집니다. 저는 평범한 홀도 그린이 빠르면 티샷부터 집중이 되지만 코스 설계가 아무리 수려하고 전략적이라도 그린이 느리거나 엉망이면 이상하게 대강 치게 되더군요. 심지어 그린이 느린 골프장에서는 골프에 대한 의욕 자체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린피(Green Fee)는 골프장 사용요금이라는 뜻입니다. 어원으로 보면 그린피의 그린은 골프장 전체를 말하지만 현재 골프장에서 그런 어원이 남아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뿐입니다. 퍼팅 그린을 말하는 그린입니다. 페어웨이는 더 이상 페워웨이 그린이라고 부르지 않고 러프도 러프 그린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골프가 태어났다고 짐작하는 곳 중의 하나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양치기들이 골프에 가까운 뭔가를 했을 때, 퍼팅 그린이 따로 있었을까요? 아마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언젠가 퍼팅을 하는 그린이 생겼거나 만들었겠죠.
그린피를 잔디로 덮인 어떤 땅에서 샷을 하는 비용이라고 가정해 보고 산수를 해 보겠습니다. 가장 흔한 골프장의 파는 72입니다. 파3와 파 5가 4개씩 그리고 10개의 파 4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누구나 파 플레이를 하는 골퍼는 아니지만 파플레이를 기준으로 보면 티잉에어리어에서 18번의 샷을 합니다. 페어웨이 혹은 러프에서는 14번의 샷을 하고 그린에서 나머지 36번의 펏을 합니다.
이번에는 그린피를 잔디로 덮인 어떤 땅을 이용하는 비용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아마 압도적으로 페어웨이를 사용하는 비용이 클 것입니다.
골프 스코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퍼팅입니다. 골프 스스로 정한 파 플레이의 정의는 36번의 샷과 36번의 퍼팅이기 때문입니다. 그린은 골프 스코어의 절반만 차지하지만 골프 플레이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더 큽니다. TV중계만 봐도 가장 많은 시간을 선수들의 그린 플레이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모든 골프장이 페럼 CC와 같은 경영전략과 철학을 가질 수는 없겠죠. 하지만 우리가 내는 그린피 중에 더 많은 돈이 그린 관리 혹은 보호에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비싼 그린피를 내고 빠르기는커녕 느려터지고 요철까지 느껴지는 그린에 올라서면 사기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골프 버블이 꺼지고 나면 분명 그린피는 급격하게 떨어질 텐데 페럼 CC의 그린 상태가 어떻게 바뀔지 아니면 지금처럼 빠른 그린을 유지할지 궁금합니다. 페럼 CC는 대한민국 골프장이 나가야 할 바를 선도하는 골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페럼이 버블이 터진 후에도 여전히 티타임이 꽉꽉 차는 골프장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하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