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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Oct 28. 2022

선생의 고충

마음이 무뎌져가는 과정

     몇 년 전부터 작은 학교에서 잠시 강의를 했던 것을 시작으로 현재 회사일 이후 잠시 짬을 내어 엔지니어링 관련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무색무취 씨가 얼마나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입이 퇴화되어 없어질 것 같아 일단은 하고 있는 중이다. 


     보수를 받고 무대에 올라간 순간부터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과연 내가 여기 학생들 앞에서 이야기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에 대한 의문이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뻔뻔해져 가지만 사실을 이야기하기보다 내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이야기할 때, 특히 깊이 생각해서 얻은 결론이 아닌 즉흥적인 생각을 이야기할 때 이 자리는 여전히 불편하다. 자격이 있는 사람을 데려오려면 돈을 많이 지불해야 할 테니 학교는 나를 고용했을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넘어가려 하지만 계속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젊은 학생들을 대할 때 그들의 눈을 보고 있으면 때때로 죄책감이 찾아온다. 성심성의껏 수업을 준비하지 못했을 때 그 느낌은 배가 된다. 학창 시절,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교수님을 비판하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칼날은 사실 지금의 내가 맞아야 할 것이었다. 


     나이 있는 학생들을 대할 때 그들의 결석 및 과제 제출 연기 사유를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한 학생은 지난 달 이혼 소송 중 강제 퇴거를 당해 한동안 머물 곳을 찾느라 고생하는 중이었다. 변호사 선임을 할 돈이 없어 스스로 법을 공부하며 자신을 변호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점수를 받으려면 실험 리포트를 늦게라도 어떻게든 제출하라고 하는 내 모양새가 우습다. 이외에도 건강 문제, 부모의 장례식 문제 등등 나이가 들며 찾아오는 그들의 삶의 무게가 그대로 전달된다. 


      어떻게 하면 등록률을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학교의 회의에 참석하거나 향후 방침에 대한 이메일을 받고 나면 다시금 학교의 비즈니스적 마인드에 감탄하게 된다. 카드가 뻔히 보이는 회사의 비즈니스 방식보다 더욱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소설 '모모' 에 나오는 '시간 저축 은행' 의 영업사원이 된 느낌이다. 회색옷만 맞춰 입으면 될 것 같다.  

(아주 성공적인 비즈니스인 학교.     출처: https://www.forbes.com)


     이번 주는 성적을 입력하는 기간이었다. 역시나 학생들은 나처럼 강의계획서를 읽지 않는다. 점수가 낮은 과제는 아주 성공적으로 열심히 끝냈지만 정작 높은 점수의 과제는 제출하지 않는다. 답답해진 무색무취 씨는 이메일을 써서 점수 잘 받으면 좋지 않겠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나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A를 입력하면 기분이 좋다. B는 내키지는 않지만 크게 나쁘지 않다. C는 좀 미안하다. 회사나 대학원에서 나중에 왜 C 받았냐고 물어볼 수도 있는데... D는 좀 많이 미안하다. 하루에 10분 공부를 한다고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인간의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F는 출석 + 시험 + 과제 제출 모두 거부한 분들께만 수여하고 있다. 무언가 더 중요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매년 없어지기를 바라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또 그렇게 시간은 가고, 같은 사이클을 반복하며 다음 학기도 이와 같이 막을 내릴 것이다. 지속적인 학습의 결과로 이번 학기의 무색무취 씨는 더 감정에 흔들리지 않으며 익숙해진 풍월을 읊는 프로페셔날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과정을 수 년, 수십 년간 해 오신 분들께 짧게 글로나마 존경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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