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봄
어지러운 세상 길에 그래도 매년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으니 다름아닌 '봄' 이다. 각각의 계절 나름대로 멋과 특색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봄이 주는 느낌은 특별하다. 생명의 따스함이 사라졌던 겨울을 지나 마치 이 세상 전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느낌이랄까. 한 번 죽으면 사라지는 인생일 뿐이란 생각이 들다가도 봄의 정취를 느끼고 나면 이 또한 영원한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미국에서 가장 더운 지역 중 하나인 피닉스의 겨울은 다른 지역의 봄, 가을보다도 따뜻한 때가 많아서 한국에서와 같은 봄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조금 우스운 점이 있지만 그래도 그 특유의 따뜻함과 생명력이 좋다.
집마당에서 봄이 왔다고 말해 주는 몇몇 친구들이 있다.
이 동네 사람들 집에 보통 하나씩은 있는 오렌지 나무이다. 3-4월이 되면 잘 익어서 맛도 좋다. 작년에는 도통 열매를 잘 맺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올해는 제법 오렌지가 많이 열려서 가끔 하나씩 즐겁게 먹고 있다. 꽃도 제법 많이 피어서 내년을 기대하게 한다.
오렌지 나무 바로 옆에서 자라는 레몬나무이다. 레몬은 참 신기한 것이 제철이 되기 전에는 잡아당겨도 잘 따지지 않는데, 3월 말에서 4월 초 정도가 되면 알아서 툭툭 떨어진다. 봄철에 집에 찾아와 주시는 분들에게 이렇게 집에서 직접 키운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드리면 만족해 하신다. 혈액순환이 잘 되고 신진대사도 활발해지는, 약재로 생각해도 될 만큼 좋은 친구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많은 꽃을 피웠다.
레몬나무 뒷편엔 꽤 큰 열매가 열리는 자몽나무가 있다. 꽃이 좀 적게 피는 것이 아닌지 생각했지만 그래도 시기가 되니 제법 모양을 이루었고 벌들도 열심히 찾아와 일하고 있다. 자몽에는 섬유질과 항산화물질이 참 많고 딱히 달지도 않아서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봄철 달리기를 하는 날 아침이나 점심에 하나씩 따 가서 챙겨 먹고 있다.
집에서 방치하다시피 내놓고 키우는 친구 알로에. 피닉스의 여름도 문제없이 견뎌낼 만큼 강인한 녀석이다. 보통 알로에를 증식시킬 때에는 밑에서 올라오는 친구들을 떼어내어 다른 곳에 옮겨 심기에, 무심한 나로서는 이 친구가 피우는 꽃이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봄이 되면 언제나 한결같이 이렇게 길고 예쁜 꽃을 피워낸다는 것이다. 이제 며칠 뒤면 꽃봉오리가 열려 노란 꽃들이 펼쳐질 것이다.
올해에도 여김없이 봄은 왔고, 주말마다 열심히 잡초를 뽑으며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조금 힘들긴 해도 피어나는 생명의 기운이 주는 분주함은 회사일과는 달리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 준다. 이제 곧 모든 것을 태워버릴 사막의 여름이 오겠지만 그래도 집마당 친구들과 함께하는 이 봄의 풍경을 즐기며 기억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