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색무취 Apr 11. 2023

중년에 읽는 톨스토이 인생론 (5)

2. 학자들과 바리새인의 거짓 (2)

    1 분기를 마치고 따뜻한 봄과 함께 2분기를 맞이했다.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1분기를 별 일 없이 버텨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종종 공휴일이 끼어 있거나 휴가를 보통 다녀오는 2-4 분기에 비해 1분기는 휴일도 거의 없는데다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한꺼번에 해결해야 하기에 업무량이 폭증하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1분기가 지나고 나면 긴장이 풀리면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서서히 월급루팡 모드로 변신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잘리지 않았으니 일단 올해까지는 밥벌이를 하겠지' 라는 안이한 생각과 더불어 '이미 밥값은 했는데 따스한 봄날 머 하고 있나' 라는 보상심리로 더더욱 일 하는 연기를 하는 데에 집중하게 된다.   


    이렇게 나사 빠진 마음으로 2-3분기를 보내고 나면 또 다시 연말 시즌은 찾아올 것이고 자연스레 또 한 살 나이를 먹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 않은가. 참으로 단조롭다.   


    딱히 살아가는 의미란 것을 알고 있지도 않은 듯한데 나는 왜 지금처럼 살아가고 있는 걸까? 


"하지만 살아야 한다.


인간의 생활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녁 자리에 들기까지 행위의 연속이다. 인간은 매일 그에게 가능한 여러가지 행위 속에서 그가 하는 일을 끊임없이 골라야 한다. ... 그런데 인간은 자기 행위의 선택에 일정한 지침을 갖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하는 수 없이 이성의 판단을 떠나서 인류 개개의 사회에 항상 존재해 왔으며, 또 현재 존재하고 있는 생활의 외적 지침에 따르게 된다.


이 지침은 아무런 합리적 설명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항상 뭇 사람의 행위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지침이라 함은 인간 사회 생활의 습관이며, 이것이 인간을 지배하는 힘이 강해지면 질수록 생활의 뜻에 대한 이해가 사람들에게 덜해지는 것이다."


    일리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살아야 하니까 사는 것이다. 내 삶의 방식을 하나 하나 설명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먹지 않으면 죽게 되니 먹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과학적으로 멋지게 설명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생리 작용 그 이상의 것 - 내가 지금 왜 양인들이 즐겨 먹는 빵 대신에 흰 쌀밥을 지어 먹는지, 혹은 왜 푸드코트에 가면 꼭 짬뽕을 주문해 먹는지 - 와 같은 고차원적인 내용은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지금껏 살아온 대로, 습관적으로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회사에 출근해 열심히 일하는 연기를 하고, 상사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아쉬워하는 리액션을 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전력을 다해 기뻐하는 표정을 짓는다.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들을 피해 동굴속에서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똑같은 플레이를 반복한 후 운동을 하고 집에 와 저녁을 먹는다. 


    이 훌륭한 광대의 삶 중 내 스스로 결정한 부분은 얼마나 될까. 그나마 친구가 없다는 이민자의 장점을 이용해 홀로 체력을 회복하는 점심시간, 노예시장이 끝나는 5시 이후 운동 정도일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이 생을 받아 이승에 태어나서 생장한다. 그리고 주위의 존경을 한몸에 모으고 있는 명예 있는 백발 노인들까지도 끼어 있다. 인생이라고 불리우는 이 생존의 혼잡을 보고 이 무의미한 혼잡이야말로 인생이며, 따로 인생이라곤 없다고 확신하고는, 그 문 앞에서 서로 밀치다가는 가버린다. 이와 같이 하여 아직 한번도 사람의 집회를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입구에서 밀치고 떠밀면서 법석대는 군중을 보고서도 그것을 집회라고 앞질러 생각하고는 출입문 앞에서 조금 밀치다가는 아픈 옆구리를 부둥켜 안고, 자기는 집회에 갔다 왔다는 확신을 품고 자기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저렴한 시급을 받으며 일하던 학생 시절과 나름 풍족해진 삶을 살아가는 지금의 내 생활에 달라진 점이 있는가, 글쎄다. 비슷한 수준의 집에 살고, 15년째 똑같은 자동차를 그대로 몰고, 똑같은 음식점에 가서 똑같은 메뉴를 시켜 먹으며 주말을 보낸다. 통장 잔고에 쌓여가는 돈이 다를 뿐, 시간을 보내는 방법과 일상의 모습은 도무지 변한 부분이 없어 보인다.


    그저 하던 대로, 수 년 아니 수십 년간의 습관이 만들어낸 나란 인간의 행동 방식대로 오늘도 내일도 그저 살아갈 따름이다. 살아야 하니까.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진 스타들의 영상을 보면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겠거니 하는 헛된 기대를 품다가도, 예상했던 대로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는 느낌만을 받고 실망조차 하지 않을 뿐, 바쁘고도 단조로운 일상은 다시금 지속된다.     


    동네에 새로운 마켓이나 음식점이 들어오면, 처음 2주간 올려드는 인파로 고생을 한다. 그리고 2주 뒤 그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마켓의 물건과 음식점의 메뉴는 그대로인데, 장사하는 사람들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지만 왜인지 그토록 경쟁적이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다. 2주 전 그들은 왜 이곳에 왔었던 것일까? '새로운 것' 을 찾으려였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였을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다. 피곤하다.


    그저 살아야 하는 단조로운 일상을 견뎌내는 것 외에 이 세상에는 정말 다른 가치가 있는 것일까. 죽음 외에 다른 사람을 앞질러 무언가를 얻어 낸다면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으며, 그렇게 하고 싶은 의욕도 없어 오늘도 그저 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의 집회' 에 참여하지 못한 지 오래 되었다. 참여하고 싶다. 단조로운 습관과 일상에 길들여지기 전 나는 어떤 존재였던 것인가. 무언가 다른 가치가 있었는가... 더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아 아직 이 책을 덮을 수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 중년에 읽는 톨스토이 인생론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