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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알쫑알 대는 사람
Jun 23. 2023
평소라면 사무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보내고 있을 이른 시간. 시원한 통창으로 초록의 움직임이며, '반짝반짝'하는 햇살을 여과 없이 만끽하며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한잔 하는 중이다. 눈앞에는 노트북 하나 펼쳐 둔 채. 호사다. 호사. 간간히 주변의 사람들도 구경한다. 카페에 가서도 눈앞의 커피나 마시고 나오곤 했지, 가게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 자체가 꽤나 오랜만인걸 보니 누군가의 말처럼 꽤나 정신없이 살고 있었나 보다. 나.
삼삼오오 모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즐기는 분들.
요즘 '핫' 하다는 지역의 부동산 정보를 나누는 분들.
이른 아침부터 나가자 조르던 아가를 데리고 서둘러 피난처를 찾은 듯한 분들
(실제로 아가의 엄마는 정신을 '쏙' 빼놓는 아가 덕분에 예쁜 얼굴에 높이 묶어 올렸던 머리가 이미 나처럼... 산발이...)
그리고 저마다의 표정으로 각자의 화면 속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거나 그리는 분들까지.
이 시간대의 아침 카페가 이런 느낌이구나를 몸소 체험하며, 어딘가 편안한 약간의 소음과 온기에 그저 내 앞의 빈 화면을 멍하니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니 참 여유롭고 좋은 것이다. 보통 멀리 여행을 떠나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연차를 사용하던 나와는 달리 종종 연차 내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흔한 말로 '멍'을 때리곤 한다던 후배의 사정이 비로소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바로 지금이.
냉정하게 말하자면, 오늘은 그야말로 억지로 쥐어짜 낸 연차다. 제법 오래 준비해 온 프로젝트의 공개를 곧 앞두고 있는 시기인 데다가 새로 펼치려는 다른 프로젝트까지 일에 치이고도 남을 긴박한 상황 속의 강제 쉼표 랄까. 이 모든 호사는 다 나의 애마 덕분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안 그랬는데 지난해부터는 크고 작게 바꿔주고 고쳐주며 '오구오구' 중인 나의 나이 많은 차.
지난번에는 일정이 있어서 멀리 김포까지 다녀오는 길에 갑자기 차 안이 후끈해졌다. 밖은 35도를 넘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데다가, 에어컨을 켜기 위해 창문까지 '꽁꽁' 닫아둔 덕에 그야말로 찜질방이 따로 없는 상황. 요리보고, 저리 봐도 절대 문제가 없어 보이던 에어컨은 결국 집에 다 도착할 때 즈음에는 미니 선풍기 만도 못한 바람을 뱉어냈다. 그야말로 '뿡' 하고. 게다가 정비소는 어찌나 예약을 잡기 어려운 것인지, 주말엔 예약도 안 되는 탓에 결국 강제로 쉼표를 선언하고 이른 아침부터 정비소를 찾았던 터였다. 에어컨 냉매만 채우면 될 거 라던 친구들의 얘기와는 달리 냉매를 담을 부품까지 통으로 갈아야 하는 상황이라 생각지도 못한 무서운 가격표 받고 '덜덜'하며 정비를 맡겨두고 잠시 카페로 피신을 와있달까.
"찾았다!"
차수리를 마치면 수리 기념으로 에어컨 '빵빵' 하게 틀고 교외로 데이트나 가자며, 엄마를 정비소 근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평일이면 매일 같이 늦게 집에 돌아오고 주말이면 또 개인 용무로 집을 비우는 탓에 얼굴도 잘 못 보는 딸내미인터라, 흔쾌히 제안을 수락해 주셨는데 시간 약속 하나는 칼 같은 분이라 정말 딱 약속한 시간에 딱 맞춰 등장하신다. 나의 나이 많은 친구 덕분에 갑자기 출근 대신에 카페에서 여유도 다 만끽해 보고, 오후엔 멋진 드라이브까지 시원하게 떠난다. 가는 길에 엄마 친구분의 전원주택에 들려 점심도 얻어먹을 계획이다. 이만하면 강제 쉼표 치고는 근사한 쉼표 아닌가.
예상치 못한 지출로 지갑은 또 한 번 가벼워질 예정이지만, 근사한 아침부터 모처럼 엄마와의 데이트까지.
덕분이다.
이 모든 소소하지만 따뜻한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