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엔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간 우산, 파란 우산, 노란 우산, 찢어진 우산!"
오늘처럼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이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거리를 걷는다. 도대체 언제 적 노래인가 싶은데, 비가 오는 날에 그렇게 찰떡 같이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슬며시 주위를 둘러보니 세차게 내리는 빗 속을 뚫고 저마다의 빠른 속도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우산도 제법 제각각이다. 노랫말처럼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 그리고 캐릭터 우산까지. 우산 속의 제 각각인 사람들의 사연처럼, 우산의 생김새도 색깔도 제각각이다.
"툭툭"
다행히 거리에 찢어진 우산을 쓴 사람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그 순간, 내 정수리를 때린 것은 굵직한 빗방울이다. 분명히 우산을 쓰고 있지만, 그 우산을 뚫고 내리는 빗물. 거리에는 찢어진 우산을 쓴 사람이 없지만, 내 우산은 격하게 찢어졌다. 어떻게 하면 쇠로 된 우산살이 이렇게 종잇장처럼 구겨질 수 있는지는 절대 모를 일이지만, 우산살은 이리저리 구겨졌고 비를 막아줄 우산 본체는 너덜너덜하다. 누가 봐도 '고생 많았다' 하며, 어깨 한번 두드려주고 보내주어야 할 우산이다. 분명 오늘 비 예보가 있다며 엄마가 친절하게 손에 쥐어준 우산은 투명한 색에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예쁜 새 우산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감쪽같이 둔갑했다.
사건은 비가 오는 날이라 밀가루와 기름 냄새가 나는 음식이 당긴다며, 동료들과 찾아갔던 칼국수 집에서 발생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살짝' 늦은 점심이라 배가 고프기도 했고, 갓 구운 해물 파전과 매콤 칼칼한 칼국수를 그야말로 정신없이 먹는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부른 배를 껴안다시피 하고 가게를 나서려고 우산 꽂이로 시선을 돌렸는데, 뭔가 이상했다. 싸한 느낌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일지 모르겠다. 가게 안에 남은 사람도 3명이고, 우산 꽂이에 남은 우산도 3개로 그 수는 딱 맞지만 아무리 봐도 묘하게 수상한 것이다. 분홍색 우산과 검은색 우산은 일행의 것이었으니, 남은 투명 우산이 내 것이어야 맞는 상황인데,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어랏!?"
혹시나 싶어 우산을 꺼내 들어 펼쳐 본 순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감탄음! 제 기능을 절대 할 수 없게 생긴 구겨진 우산 살에, 여기도 구멍, 저기도 구멍, 결코 쓰고 나설 수 없게 생긴 투명 우산의 등장에 모두가 적잔이 놀랐다. 게다가 요리 보고 저리 봐도 평소 애정하는 캐릭터의 앞모습도 뒤통수도 없다. 이 우산엔.
"혹시 우산이 바뀌셨나요?!"
드라마를 봐도 영화를 봐도 왜 이런 당황스러운 순간에 비는 더 세차게 내리는 것인지. 우산을 하릴없이 '요리조리' 둘러보고 있는 우리를 향해 말을 건넨 건 가게 직원분이었다.
"네, 새 우산을 뒀더니, 찢어진 헌 우산만 덩그러니 남아있네요. 허허"
저마다 어떻게 저렇게 버릴 우산을 들고 와서 새 우산으로 바꿔갈 수 있는지와 고의인지 아닌지를 궁금해하는 와중에 조용히 말을 잇는 그다.
"죄송합니다. 다른 손님이 우산을 바꿔가셨나 봐요."
"휴......"
죄송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애먼 분이 사과를 한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죄송할 사람 따로, 사과하는 사람 따로인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 '이게 맞나?'
"혹시 괜찮으시면, 제 투명 우산이라도 드릴까요?"
뜻밖의 고마운 제안까지 덧붙인다. 사실 출근길에 우산을 2개씩 들고 출근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뿐더러 가까운 거리라 여차하면 동료 우산에 뛰어들면 되니 인심 좋은 사람 마냥 '괜찮다' 마다해 본다. 그의 탓도 나의 탓도 아닌 일이니.
옛날 노래 중에 그런 노래가 있었다. 그 시작도 까닭도 모르겠지만 두꺼비를 향해 새 집을 달라며 부르던 노래. 헌 집을 줄 테니, 새 집 달라던 그 노래. 아무래도 '헌 우산(실제로는 버려야 하는 우산) 줬으니, 새 우산 내놓아라' 하는 심뽀였나 싶은 생각에 '잠시' 불쾌해졌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는다. 복을 준다는 두꺼비도 헌 집 받고 새집을 주곤 했다니, 우산으로 복을 나눠준 셈이라 스스로 위안해 본다.
평소 비 온다는 소식에 우산을 챙겨 들고나갔다가 버스 안이며, 카페 안이며 버리고 온 것이 부지기수인 프로 우산 분실러 지만 이렇게 강제로 뺏겨본 적은 또 처음이라 자꾸만 못난 마음이 '불쑥' 올라오지만 빗속을 걸어본다. 혹시 또 모를 일 아닌가. 새 우산 주고 헌 우산 받았으니, 두꺼비가 복 받으라며 나한테 새 집을 줄지도. 출근길 엄마의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울려 혼자 웃어본다. 새 우산을 손에 '꼭' 쥐어주시며 잊지 않았던 당부 한 마디.
"왜~ 이따가 또 갑자기 비 안 온다고 또 ~ 이 새 우산도 밖에다 버리고 와라~~!!"
이 말이 당부인지, '선경지명' 있는 엄마의 비난 예고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엄마 딸이 또 이 어려운 걸 해내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