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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Jan 29. 2024

너를 보내며

하이볼 안녕! 



산토리 안녕, 하이볼도 안녕.

내 기필코 너희와 이별하려 했다. 너희의 친구 맥주, 와인과도.

일본서 비행기 놓쳐가며 들고 온 소중한 두 병의 산토리는 각각 필요한 친구에게로 날아갔다.

주종을 막론하고 한 잔만 마시면 빨개지는 '알쓰'인 나에게 하이볼이 웬 말이냐.

이미 치매 초기 증세도 보이는데 결단코 술을 멀리하리라 다짐했다.

그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다가 내가 알코올을 가까이하게 되었나.

남의 편은 술을 점점 멀리하는데 왜 나는 점점 알코올에 의지하게 되는 것일까.

니가 이러니 남편이 떠났지, 내가 나에게 말한다.

이런 내 모습이 싫어서 한 잔 마셨다.

술에 의지한다고 해서 뭐가 해결되나.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너저분한 현실에서 일하기 싫어서 뻗대는 내가 싫어져 와인 한 잔 마셨다.


말의 목을 자른 김유신처럼 술을 사놓지 않으면 될 텐데, 

그렇게 술 마시는 사람을 혐오하면서 자랐는데

나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한 잔 마셨다. 

그래봤자 200미리도 되지 않는 와인이 투명한 눈으로 나를 비웃었다.

평소에는 커피 중독이다. 하염없이 커피를 마신다.

맥심을 알 커피를 핸드드립을 캡슐 커피를.

나란 존재는 이렇게 나약한가.


자신을 속이며 조금씩 채워 넣은 싸구려 와인이 나를 비웃는다. 

소설을 쓴다고 떠들며 한 편의 단편도 완성하지 못한 허풍선이를,

에세이 쓴다고 블로그며 브런치에 자신의 치부까지 까발리며 관종처럼 지껄인 가벼운 입을,

우리 공저가 그렇게 재미없냐며 솔직한 언니에게 괜히 신경질 부린 나의 속 좁은 모습에

한없이 땅으로 꺼져 들어간다.


학창 시절 좋아했던 김승희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그녀는 운다 하염없이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야겠기에.'

이미 그의 시집은 내게 없고 비슷한 시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서 내일도 모레도 출근해야 할 이 늙은 주정뱅이의 모습에 하염없이 슬퍼진다.

시간이 많을 때는 핑계를 대며 미루고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움직이는 인간.

마음은 열심히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어.

월급은 좋아하면서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네. 


이런 내 모습이 슬퍼져 오늘은 한잔할 수밖에 없었다고 구차한 변명을 한다.

내일부턴 꼭 술을 끊어야지 다짐하면서.

다짐은 작은 어려움에도 헛된 사랑의 맹세처럼 부서지고 말지.

그래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리라, 그렇게 믿으며 하루를 접는다.



#술잔에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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