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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Feb 25. 2024

소설과 에세이 사이에서

뭐라도 좀 쓰지?



우연한 기회에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나서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유쾌한 일은 별로 없는 세상사인데 인상 찌푸리면서 초보 작가의 고뇌는 더 깊어갔다. 소설이란 에세이처럼 대충의 글감을 가지고 책상에 앉으면 어느 정도 글이 풀리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소설가의 창작 노트에는 소설 작품보다 더 긴, 디테일한 창작의 고민과 플롯과 밑그림이 그려져서 쓰기 전까지의 작업이 더 길다고 한다. 대충 밑그림을 그린 채 시작하면 곧 막히고 마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이상하다.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면 다른 한쪽으론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인가. 소설을 쓰면서 에세이를 쓴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에세이에 더 경도되어 있었던 처음에는 소설 쓰기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라 선생님의 애를 태운다. 하지만 관심이 소설 쪽으로 기울어지니 에세이가 써지지 않는다. 분명 적어둔 글감은 무진장 많은데, 사탕 까먹듯이 하루에 하나씩 풀어도 제법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음은 그렇게 풀려나가지 않는다. 마음이 있는 곳에 손이 있는 것이다.


소설이 안 팔리는 시대라고 한다. 이런 시대에 머리도 좋지 않은 내가 소설을 쓴다고 설치는 것이 스스로 참 우습다. 그렇게 떠들어 젖히고는 몇 달 동안 탈고한 것은 겨우 짧은 단편 1편이 전부다. 어슴푸레한 안개를 헤치고 소설이라는 건축물이 분명한 형체를 드러내기까지 나는 얼마나 더 골몰해야 하는 것일까. 또 한 편의 마음은 여행이나 다니고 수다나 떨고 인생 즐겁게 살지,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려고 하냐고 만류한다. 고민을 거듭하고도 쓰지 않을 수 없는 마음, 하나의 의미를 움켜쥐려는 노력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인가.


에세이를 쓰지 않게 되자 급하게 쌓였던 브런치 구독자들의 관심은 이미 떠나갔다. 이미 다 파먹어 바닥을 드러낸 광처럼. 몇 가지 우려먹을 소재가 있긴 하지만 아직 쓸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애초에 인기를 끌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었기에. 


작년까지만 해도 소설보다 에세이를 좋아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던 나였다. 소설은 매력적이지만 뜻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 마녀 같다. 에세이는 내 마음의 풍경을 부담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 멀티가 되지 않는 초보 작가의 고민은 오늘도 종로로 갈까 명동으로 갈까 차라리 아무 데도 가지 말까, 길모퉁이에 서서 우유부단하게 망설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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