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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Mar 17. 2024

잠수하고 싶은 날



 쓰고 싶다고 해서 글이 술술 써지는 건 아니다.

소설이란 어쩌면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장르가 아닐까. 책이 생기기 전 서사는 이야기꾼에 의해 구전되었다. 본 이야기의 틀에 말하는 이의 재량에 따라 조금씩 가감되면서 새로운 이야기로 바뀌기도 한 구전설화. 이야기꾼에 의해 전해진 서사들은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서도 볼 수 있다.


 글은 늘지 않고 변명만 자꾸 늘어난다. 내가 소설을 잘 쓰지 못하는 것은 평소에도 말수가 적고 이야깃거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내 얘기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다. 주변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로 소설을 구상하지만, 늘 조금만 쓰고 나면 막혀버린다. 플롯이 짜이지 않는다. 시작은 하는데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들. 


 글은 늘지 않고 번민에 술만 늘어간다. 행간이 늘어 흰 바다가 되고 그 사이로 파도가 치고 눈물처럼 침묵이 번진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떨어지는 글. 합평보다 더 혹독한 자기 평가의 굴레에서 깊이 침잠한다. 피를 흘린다. 비교의 어장에서 나는 어린 송사리다. 차라리 비교할 대상이 없었더라면 더 나을 뻔했다. 이제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혼자 글을 쓰리라. 내가 쓰고 싶을 때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발전이 없는 나의 글쓰기에 자꾸 힘들다, 힘들다 되풀이 얘기하기도 부끄러워 속으로만 삭였다. 시간은 가고 마감은 벼락같이 다가오는 법. 

마감이 되어도 쓰지 못하는 것은 게으르거나 집중력의 분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능이 부족해서다. 그렇다는 걸 인정하자. 일정 분량 이상을 쓴다는 것은 재능이다. 1 만큼의 재능이 있는 자가 5 이상을 단숨에 채우려 하니 무리가 가는 것 아니겠나. 


 절망 속에서 자맥질하다 보니 갑자기 숨 쉴 수 있는 아가미가 생겼다.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 글이 먼저가 아니라.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술 마시고 현재에 살리라. 

어제의 추억을 만지작거리며 그리워할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춤추자.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스스로에겐 전부다. 글이 삶에 앞서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글을 쓰지 못한다고 내 삶이 무의미하고 내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자꾸 그렇게 기울어지는 내 마음을 추스르고 자기 연민에 빠지자. 다른 사람을 위로하듯 나를 이해할 수 있기를.


글을 쓰고 싶지만 글이 써지지 않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오늘 밤은 조르바가 되자. 창조의 불꽃이 내 안에서 타지 않아도 괜찮다. 이 세상엔 평생 향유하고도 남을 훌륭한 글과 예술작품이 있으니, 굳이 나 하나 보태지 않는다고 뭐가 아쉬우랴. 그러니 슬퍼하고 절망하지 말지어다. 한 푼도 되지 않는 나의 좌절 따위 불살라 버리고, 창작자들에게 박수를, 예술가들에게 찬미를, 그 모든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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