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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Jun 04. 2024

글을 쓰지 못하는 작가의 구차한 변명



블로그를 처음 만들 때는 책 명문장, 영화 명대사를 주제로 글을 올리고 에세이도 써 보려고 했다. 계획은 계획일 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글이 남지는 않는다. 생각만으로는 벌써 책 몇 권은 냈을 정도로 차곡차곡 글이 쌓였을 것인데 실제는 무에 가깝다. 브런치도 개점휴업 중.


뭘 하고 살고 있는지, 진짜 글을 쓰고는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희미한 불씨 하나가 남아서 깜빡거리고 있다. 170여 개의 글 제목이 나를 유혹하지만, 갑자기 할 말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글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아이디어는 많은데 왜 그럴까. 글스승 님을 만나러 가기 전에 손바닥 소설이나 진지한 에세이 한 편이라도 써야지 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그래, 인정한다. 내가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 먹고사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글 쓰는 일은 늘 용두사미로 그치고,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일로 전락해 버린다.

이 골치 아픈 세상에 뭐 하러 머리 부여잡고 글을 쓰나, 그냥 즐겁게 놀러 다니고 먹고 마시고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지, 내 안의 카인이 속삭인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문장을 굴리며 스토리를 짜면서도, 정작 저녁이 되면 피곤하고 졸려서 책상 앞에 앉지 못한다.

내가 잘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변명이 아닐까. 그리고 어영부영 시간을 흘려보낸다.


요즘은 진짜 저녁만 먹고 나면 잠이 쏟아진다. 예전에는 점심 먹고 꾸벅꾸벅 조는 나이 든 선생님을 보면 참 거시기 했는데,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졸음운전까지 했다. 눈이 감긴다 싶더니 잠깐 사이에 차선을 넘어가서 옆 차선으로 이동하여 중앙분리대를 박기 일보 직전이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식사량이 무척 많지는 않은데도 졸음이 온다.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수면의 질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하고 점심도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 편하게 충분히 먹지 못하고 저녁을 제일 많이 먹는다. 초저녁에 자지 않으면 야식까지 챙겨 먹을 때가 많다. 제대로 먹고 잘 자는 것이 참 어렵다. 이런 생활의 반복이 항상 피로를 동반하고, 글을 쓸 기력없게 만든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번아웃도 아닌데 무기력해진다. 멍하니 있을 때가 많고 집중이 어렵다. 가끔은 실제 나이 이상으로 아주 늙었다는 느낌이 든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스스로의 무능력을 탓하며 무기력에 빠져 있을 때가 많다. 읽어야 할 책들을 잔뜩 쌓아두고는 외면한 채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죽일 때도 많다.


운동, 독서, 미니멀, 글쓰기 루틴 점검표를 기록한 지 오래됐는데 쓰다가 말다가 하고, 쓰더라도 자신에게 무척 너그럽다. 좀 더 뚜렷한 목표를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도 생활에 묻혀버린다. 독한 여자가 되고 싶지만 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이렇게 우물쭈물하다가 아무 족적도 남기지 못하고 이 세계를 떠날 것인가. 모래 위 발자국처럼 흔적은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애쓰든 애쓰지 않든 그것이 인생일까. 꿈틀꿈틀 내 안의 자아를 깨워 글을 쓸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각오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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