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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Jul 26. 2024

나이가 든다는 건

나이 듦에 대한 단상



나이가 든다는 건 언젠가부터 차를 비뚤게 주차하게 되는 것.

새삼스레 주차장의 기둥이 신경 쓰이게 되는 것

1시간 운전에도 다리에 힘이 달리고 발 근육이 긴장되는 것

나이가 든다는 건 운동하기 싫으면서도 건강 걱정에 걷기라도 하게 되는 것

수영장 못 가는 일주일이 아쉬웠는데 이제는 한 달 내내 가도 무방하나 하루도 찾지 않게 되는 것

등이 구부정해지는 것 같아 의식적으로 허리를 곧추세우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은 화장실에 자주 가고 어디 가면 화장실을 확인해야 안심이 되는 것

밤에 깊이 잠들지 못하거나 잠자는 시간을 넘기면 영영 잠들기 어렵다는 것

휴대폰이나 열쇠, 카드가 어디 있는지 잊어버려 자꾸 찾게 되는 것

어제 본 영화 제목이나 최근에 알게 된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

기운이 없다고 툴툴대거나 밥 먹고 나면 꾸벅꾸벅 조는 것

세상에는 아주 맛있는 음식은 없고 옛날에 먹었던 음식이 더 그리워지는 것



그래도 나이가 들면 남의 눈치 덜 보고 할 말하게 되고

이불 킥 하는 날이 줄어들고

기미와 잡티, 흰머리에 익숙해지고

주변 사람의 실수나 자신의 단점에 너그러워지고

어릴 때 만난 친구들 얼굴이나 이름이 또렷하게 생각나기도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고

화려한 꽃보다 작은 들꽃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갑자기 의식하게 되며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에 눈물이 또르르 흐르기도 한다.

즐거운 날보다 무덤덤한 날이 더 많아 평화롭고

한 달이 한 해가 너무 빨리 가서 지루할 새가 없다.


그리하여 어느 날 마지막이 오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천천히 걸어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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