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거스트 Jun 04. 2021

곡 만드는 순서 - 콘셉트 정하기

곡을 만드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제일 먼저 콘셉트를 정하고, 그 콘셉트를 바탕으로 레퍼런스를 찾고, 그것들을 면밀히 분석 후 응용하고, 최종적으로 나만의 사운드를 담아 완성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곡을 만드는 순서는 다를 수 있다. 지난번 글에도 썼지만 순서만 다를 뿐이지 결국 진행되는 내용은 이 패턴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방법은 음악을 만드는 법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 방법을 적용하면 음악뿐만 아니라 글쓰기, 그림 그리기, 기획안 작성, 리포트 쓰기 등등 다양한 일에 접목해서 응용할 수 있다. 난 이것을 음악에 접목해서 내 곡을 만들었다.

그럼 콘셉트는 어떻게 정하는가? 방법은 많은데 우선, 아티스트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잠깐 당부의 말을 하자면, 내가 예를 들 땐 해외 사례를 자주 언급할 텐데, 만약 예시로 말하는 아티스트가 누군지 모른다면 곡을 몇 개 듣고 이 글을 다시 읽기를 바란다. 콘셉트를 정할 땐 보통 '이번엔 제이 콜 스타일로 가보자.' 혹은 'H.E.R 스타일의 알앤비를 만들어보자.' 이런 식이다. 만약 여기서 제이 콜이 누군지, 어떤 음악을 하는지 모른다면 그런 스타일은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제이 콜이 누구고 어떤 음악을 하는지, 그런 스타일의 비트를 만드는 '프로듀서', '엔지니어'가 누군지 더 나아가 어떤 샘플과 코드 및 작법을 써야 되는지 알아야 해당 분위기의 곡을 만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곡은 이렇게 만든다. 물론 뚝딱하고 만들진 않지만 명확한 목표를 알고 진행되기 때문에 작업 중 실패와 시행착오가 있어도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어떤 걸 만들지 명확히 알고 곡을 만든다. 근데 만약 제이 콜이 누구고, 어떤 음악을 하는지 모른다면 곡을 만들 수 없다. 곡을 잘 못 만드는 초보들의 경우 제이 콜의 스타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라 곡을 만들지 못한다. 제이 콜의 음악적 색깔과 그의 스타일을 알아야 맞춤형 옷을 만들 수 있는데 제이 콜의 신체 사이즈는커녕 그냥 대략 눈 크고 키 크고 랩 잘 하는 유명한 래퍼구나 정도만 알기 때문에 곡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평소에 음악을 정말 많이 들어놔야 한다. 많이 들어야 하는 이유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보통 클라이언트와 작업할 때 레퍼런스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 레퍼런스에서 말하는 게 뭔지 캐치해내지 못하면 커스텀 비트를 만들 수 없다. 보통 아티스트의 유명 곡 몇 개만 듣고 그 느낌을 내려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 백타 실패한다. 그런 식으로 할 경우 못 만드는 경우가 태반이고 그나마 비슷하게 만든다 해도 그런 곡은 픽이 잘 되질 않는다. 기존 곡과 비슷한 곡에 랩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우리는 아류작을 만들기 위해서 작업하는 게 아니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곡으로 세상을 놀래려고 작업을 하는 것이다.

작업은 철저한 자료조사와 이해가 밑바탕이 되어 있어야 좋은 비트를 찍을 수 있다.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겉만 그럴싸하거나 심하면 올드 한 비트를 찍게 된다. 그러니 평소 음악을 깊고 많이 들어야 하고 그 양과 깊이는 보통 리스너는 물론이고 헤비 리스너보다도 더 많은 음악을 들어야 한다. 음악은 반드시 인풋만큼 아웃풋이 나온다. 수업을 해보면 음악을 많이 듣지 않고 비트를 찍는 경우가 많은데 성공한 케이스는 드물다. 인풋의 모자람을 수업으로 때우려 한다면 백타 실패할 것이다. 그만큼 음악을 많이 듣는 걸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싶다. 그래서 음악 듣는 게 정말 행복하고 즐겁지 않으면 비트 만드는 건 조금 힘들 수 있다. 왜냐면 음악을 만드는 건 음악을 듣는 것 몇 배 이상의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고통이라는 표현은 오버가 아니고 팩트다. 매일 창작의 고통과 싸우는 건 희미하게 보이는 저 먼 곳의 작은 불빛만 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의 경우 매일 음악을 들으며 메모를 했었다. 어떤 음악에서 드럼이 좋았으면 그것이 왜 좋았고, 어떤 스타일이고, 어떤 샘플을 쓰면 내가 비슷하게 찍을 수 있고, 어떤 비트를 찍을 때 써먹으면 좋겠다는 것들을 항상 메모해 두었다. 초반엔 노트에 적다가 검색이 안돼서 후엔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하고 필요한 내용을 검색해서 그때그때 찾아서 아이디어를 썼었다. 이런 것들이 나중에 작업할 때 엄청 큰 자산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작업한다고 시퀀서 켜고 그때부터 자료를 찾는데, 그럼 그날 작업은 좀 힘들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음악은 인풋만큼 나온다.

그럼 해당 아티스트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 어떻게 음악을 들어야 하는가? 노가다가 답이다. 만약 제이 콜을 레퍼런스로 받았다면 다음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제이 콜 스타일인데 붐뱁으로 가나, 트랩으로 가나, 돕하게 가나, 팝스럽게 가나, 샘플링으로 가나, 시퀀싱으로 가나 등 제이 콜을 떠올렸을 때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찾고 그와 관련한 곡들도 함께 찾아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보통 제이 콜의 디스코 그래피를 전부 뒤져봐야 한다. 제이 콜이 했던 붐뱁, 알앤비, 싱잉 랩, 타이틀곡들, 조회 수가 높았던 곡들, 낮았던 곡들, 피처링으로 참여했던 곡들 등 다양하게 자료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프로듀서 입장이라면 제이 콜과 작업했던 프로듀서들을 정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건 위키디피아에 가면 앨범별로 크레디트가 정리가 되어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제이 콜이 A 프로듀서와 작업했다면 A 프로듀서의 디스코 그래피도 전부 찾아보는 것이 좋다. A 프로듀서가 제이 콜과 작업할 땐 어떤 스타일을 했고, 또 다른 래퍼와 작업할 땐 어떤 스타일로 했는지를 알면 곡을 만들 때 좀 더 시야를 넓혀서 만들 수 있다. 만약 샘플링 곡이라면 샘플 원곡도 함께 찾아보는 것이 좋다. 왜냐면 그 많은 샘플 중에서 어떤 곡이 제이 콜스러웠는지 가장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샘플 원곡을 찾고 그 샘플 원곡자의 다른 곡도 찾아보면서 생각을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샘플이 좋다면 같은 원곡을 다른 프로듀서가 다르게 작업한 곡도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 사용된 샘플이 중복될 수도 있다. 이렇게 듣지 않고 한 곡에만 빠져 있으면 그 곡의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반드시 콘셉트와 관련 있는 다양한 곡을 찾아서 들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 가지 더 한다면 자료들을 찾을 때 무작정 많이 찾는 것보다 '나'와 교집합에 있는 것들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어쨌든 나에게 곡을 맡겼다는 건 내 스타일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존 것들을 참고하되 '나의 스타일'과 맞는 것,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을 하면서 곡들을 찾아보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단순히 자료 조사를 위해 곡을 듣는 게 아니고 곡을 만들기 위해 듣는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내 경우 예전에 프리스타일 온라인 게임 BGM 대회 때 비트만으로 입상했던 적이 있다. 프리스타일은 길거리농구 게임인데 힙합적인 콘셉트가 들어간 게임이었다. 콘셉트는 힙합 길거리농구였다. 그때 내가 참고했던 것들이 게임 OST였다. 그 당시 NBA 게임 시리즈, NBA Street 시리즈 이런 것들을 들었고 나아가 길거리 축구 게임, NY 데프잼이라는 힙합 아티스트들이 서로 싸우는 격투 게임 OST도 들었었다. 좀 더 확장해서 영화인데 힙합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좀 더 팝적이고 대중적인 곡들까지 전부 들었었다. 영화로는 대표적으로 분노의 질주 시리즈 OST를 참고했었다. 그 많은 곡들을 들으면서 프리스타일 게임과 어울릴만한 것들을 다시 추렸고, NBA 시리즈보다 좀 더 밝고 캐주얼한 분위기의 곡을 만들기 위해 악기, 소스 등을 분석해서 곡을 만들었다. 밑에 링크를 두겠지만, 해당 느낌을 내기 위해서 킥도 일부러 농구공 튀기는 소리와 레이어 해서 만들고, 브라스 샘플을 써서 찹핑하고, 웅장한 느낌을 위해 로우 브라스를 밑에 깔아서 곡을 만들었다. 그 외 여러 가지가 있는데 너무 예전이라 기억이 안 난다. 여하튼 이런 식으로 해당 콘셉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주제와 관련한 음악들을 다양하게 찾아 듣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렇게만 보면 이것들이 레퍼런스가 아니냐고 할 텐데, 레퍼런스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레퍼런스의 사전적인 의미는 참고다. 나중에 레퍼런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내가 말하는 레퍼런스는 좀 더 구체적인 자료들이다. 가령, 킥의 레퍼런스, 멜로디의 레퍼런스, 킥과 스네어 믹싱 밸런스의 레퍼런스 등 곡을 만들 때 좀 더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것들을 난 레퍼런스라고 할 것이다.

그럼 반대로 아티스트가 없다면 어떻게 콘셉트를 정할까? 이건 정말 백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령, 피아노, 기타, 드럼과 같은 악기로 우선 정하든지, 아니면 붐뱁, 트랩, 알앤비 등의 장르로 정하든지 해야 한다. 근데 이 같은 주제들은 아티스트보다 좀 더 폭넓은 주제이기 때문에 좀 더 깔때기처럼 좁혀지기 위해선 더 많은 자료를 찾아봐야 한다. 피아노로 곡을 쓴다고 했을 땐 너무 포괄적이다. 피아노인데 코드로 시작할 건지 트랩처럼 단순한 멜로디를 피아노로 찍을 건지 너무 넓고 포괄적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비추하는데, 만약 어쩔 수 없이 이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좀 더 손에 잡힐 수 있도록 많은 자료를 찾아봐야 한다. 콘셉트를 정하는 건 곡의 목표이자 가이드를 정하는 일이다. 이것을 정할 때 가장 큰 포인트는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그게 돼야 그다음의 것들을 진행해서 곡을 만들 수 있다. 대부분 실패하는 게 한 예로, 트랩 만들어야지 하고 트랩 드럼 찍고, 단순한 멜로디 짜고, 808 베이스 넣고, 하이 햇을 쪼갠 다음 어레인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한 루프 돌린 다음 뭘 해야 될지 몰라 시퀀서를 닫고 작업을 마무리한다. 이게 콘셉트가 명확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콘셉트라는 건 위에도 잠깐 말했지만 깔데기 처럼 좁아진, 손에 잡히는 명확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곡들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링컨은 나무를 벨 6시간이 주어진다면 4시간 동안 도끼를 간다고 했다. 그만큼 많은 곡을 듣고 콘셉트를 구체화해서 곡을 만들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곡 만드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