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가닿지 못하는 봄.

by 나무느을보

봄비가 쏟기 시작했다. 벚꽃이 희게 만개했을 무렵 꽃비와 함께 매서운 빗방울이 떨어진다. 시기라도 하듯 피어난 것들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자목련은 아직 멍울이 맺히고 벌어지기 이전이다. 어린 시절 그 꽃은 파랗게 질리고 아픈 색을 하고 있어서 내심 두려웠는데, 다 자라서는 오래토록 봄을 견디는 모습을 보고 정을 붙였다. 아프게 움츠린 것들은 오래 피어나기 마련이다. 혹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너무 올곧은 가지는 꺾인다. 부드럽게 눕는 법을 아는 풀들은 다시 서는 법도 안다. 그 말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도덕경에도, 민중시에서도, 부드러움은 억센 것들을 이기고 선다.


구름은 좀처럼 걷힐 생각을 않는다. 그저 빽빽하고도 빠르게 흘러갈 뿐이다. 하늘은 가끔 무서울 정도로 신속하게 흘러간다. 구름의 흰 빛은 깃털보다도 가볍다. 허공을 가르고서 봄비가 눕는다. 차가운 넋과 손을 지닌 사람들이 흘러가고 있다. 눈이 깊고 텅 비어있다. 빗방울이 그들의 이마를 간지럽히려하지만 애석하게도 매끄러운 벽에 가로막힌다.


웅크린 소년 같던 봄이 품을 벌린다. 매서운 어른인 겨울의 안수(按手)에 놀란 것만 같다. 웅크린 봄은 이렇듯 겁이 많다. 봄비를 흐느끼며 울던 소년이 살날이 많은 것은 겨울은 알고 있다. 가여운 것. 가여운 것. 그는 여름날의 불꽃처럼 피어나 가을날처럼 노숙할 것이다. 그리고 또 그리고 문득 현관문에 스치는 빛처럼 찾아온 겨울날처럼 매서운 끝을 맞으리라.


사람들에게 가닿지 못하는 봄비가 그쳤다. 그러나 봄은 아직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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