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처를 잃은 이들을 위한 전주곡.
희뿌옇게 안개가 일었다. 사방이 희다. 서성거리는 저 인간은 넋을 빠뜨린 것 같다. 바다처럼 빛이 흩어지고 일렁인다. 그는 주변을 연거푸 살피고는 웅얼웅얼 혼잣말을 일삼는다.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귓전으로는 작은 날개를 닮은 음성이 진동하고 그는 잘게 어깨를 떤다. 그 무엇도 믿지 못하는 식이다. 밖은 생동하는 계절이다. 강변엔 점을 닮은 벌레들이 일어나고 죽은 것 같은 검푸른 가지 위로는 연잎사귀가 걸려있다. 그는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강물을 거스르는 것 같지는 않고 다만 나아갈 행처를 잃은 것이다.
그는 자신을 부추기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 소리들은 삶을 살아가는데 전연 관계가 없는 문장들이다. 파랑이 모래알을 간지럽히는 듯 단조롭게만 반복된다. 남자의 눈두덩이 깊고 매캐하지만, 그의 흰자가 유난히 아이처럼 희고 깨끗한 것을 본 나는 놀란다. 병자의 눈은 노르스름하고 끈적거리기 마련이다. 남자는 미치지 않았다. 다만 압도당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무엇으로부터란 말인가.
신을 믿는 이들은 기적에 압도되어 금욕적인 생활을 자처한다. 생의 한가운데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것들이 봄날의 햇살처럼 떨어졌고 그 온기에 이끌렸다. 그리고 언제나 그 감각은 그들의 생을 휘어 감고도 남는 것이다. 나는 그가 무엇인가의 감각과 조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안개의 복판에서 그는 작은 물결이 되어 일렁거렸다. 금방이라도 찌그러질 것 같은 몸으로 웅크린다. 그는 이제 점이 되었다. 이제 알겠다. 세상이다. 세상이 그를 짓누르고 있다. 생동하는 봄날의 열기가 그를 보잘 것 없는 깡통으로 구겨놓았다.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이 명확해지자 안개가 걷혔다. 무던한 사람들이 몰리고 남자도 행처를 찾은 것처럼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