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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 Mar 08. 2023

포장마차와 24도 소주

소주가 육천원이라고?

                                                                                                            이미지 출처 smart lens

뭐?  소주가 육천 원이라고~

웬만큼 술 좀 한다는 주당들이 고깃집의 소주 가격표를 보고 깜짝 놀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천 원이었던 듯 까만 줄로 주욱 그은 후 육천 원이라 선명히 휘 갈겨 고쳐 놓았다

이건 뭐 술 값이 더 나올 지경이다. 요즘 콜키지 프리가 입소문이 나는 까닭일 것이다.


주황색 천막을 들치고 비좁은 포장마차 속으로 들어서자 담배연기와 석쇠 냄새가 엉키어 매캐함으로 뿌옇다

그 매캐함 속을 동그랗게 비춰 주는 가스 랜턴 밑으로 삼삼오오의 술잔들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길게 뻗은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지만 먼저 앉아 있던 손님들로 인해 엉덩이는 먼발치에서 천막의 안쪽 습기와 맞닿을 정도다. 조심스레 의자를 몸 쪽으로 당기자 옆 손님들이 그제야 아래위로 훑어보며 자기네들의 엉덩이를 들어준다.  감사합니다로 답을 하고 이내 주인 아지매와 눈을 맞춘다


"자불래미 아지매"~~


꼼장어랑 소주 주면 되제?


아지매 맛있게 꾸버 주이소


쪼매만 기다리거레이~


말씀을 마친 아지매는 소주 한병이랑 홍합 한 그릇을 후딱 내어 주신다

우리는 포장마차 기둥에 달려 있는 병따개로 소주 뚜껑을 따고 검지와 중지를 벌려 병 대가리를 한방 때려 사카린을 뿌려낸다. 그리곤 조금만 힘을 주면 찌그러들 듯한 얇은 플라스틱 잔에 한잔 가득히 따르고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씁쓸한 입 속으로 성급히 털어 넣는다

큼지막한 홍합을 골라 먹은 후 뚜껑으로 국물을 먹어 주니 또 한잔 생각난다

그 사이 포장마차 뒤쪽에선 벌겋게 달아 오른 연탄불에 꼼장어가 맛있게 익어 가는 냄새가 난다

그 냄새에 이끌려 또 한잔.  벌써 한 병이 동이 날 지경이다

이윽고 우리의 꼼장어가 테이블에 오른다

아지매는 익숙한 듯 빈 잔을 내 미신다


한잔 따라라


아이구 아지매 감사히 먹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아지매는 소주 한잔을 건배하시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자기 자리에 앉으시며


소주는 알아서 먹고 안주 필요하면 깨워라 하신다


피곤한 청춘의 저녁은 항상 이곳에 있었다

소주 한잔의 위로랄까?  아님 청춘의 낭비랄까?

그땐 몰랐었다.  위로도 낭비도.  그냥 저녁이면 2차로 찾게 되는 일상이라고 생각했다

고갈비, 꼼장어, 닭발, 홍합, 오징어볶음, 똥집, 골뱅이는 소주 한잔 하고픈 청춘의 얄팍한 지갑에는 딱인 안주거리였다


아지매는 안주를 만드는 시간 외엔 자리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으셨다

그래서 자불래미 아지매라 불렸다

돈이 없던 우리는 항상 안주를 하나만 시켰다

하지만 아지매는 뜨끈한 홍합이나 쑥갓 올린 우동을 그냥 내주셨다

특히 우동은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고 우리에게만 그랬다

술로 지친 속을 달래라며 막잔 남았을 때 한 그릇씩 말아 주셨다.  

우리에게 받은 소주 한잔의 값은 아닐 터, 아지매의 마음 가득한 우동 한 그릇으로 청춘의 하루를 위로받기엔 충분했다

플라스틱 잔 가득한 소주가 가스랜턴 불빛에 일렁이며 포장마차의 밤은 그렇게 취해갔다


돌이켜 생각컨데 당시 아지매의 고단한 삶의 모습과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이 닮았었다

둘의 닮음은 모름지기 그 시대의 지난한 자화상이었을 것이다

스쳐가는 수많은 사연들에 침묵하며 말없이 소주 한잔으로 그네들의 안녕에 건배를 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위로받길 원했으니까 말이다

쓴 소주 한잔에 누군가는 안녕을 또 누군가는 위로를 건배한 것이다

소주 한잔으로 웃고 울며 살아왔던 세월의 멋이 있었다

하지만 웃고 울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불편한 육천 원짜리 소주는 그 시절 포장마차의 24도 소주를 감히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서민의 애환과 시름은 이제 어디서 풀어야 할까?

꼼장어에 24도 소주 한잔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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