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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 Sep 26. 2022

비타민

나는 비타민으로 책과 그림을 먹었다.

9월의 달력도 어느덧 마지막 주를 맞이하였다.

가을은.. 속! 깊은 그곳으로 자꾸만 들어가는지 조석으로 얇은 홑이불을 꽁꽁 동여맨다

8월의 뜨겁던 여름밤도, 쏟아지던 태풍 속 폭우도 모르쇠, 9월의 가을은 평온하기만 하다


띵동, 띵동...

주말 아침 8시다

마치 오늘이 주말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려는 듯 연신 울려댄다

am00부터 am08시 까지 참았던 소식들을 전하려 한꺼번에 터진다

졸린 눈을 비비며 sns를 확인한다

그 속에는 아침 일찍부터 바지런한 사람들의 모습들로 가득하다

산으로, 바다로, 캠핑장으로 저마다의 주말 아침 모습이 싱그럽다


4년 전의 나.


주말마다 힐링이 필요하다며,  힐링거리를 찾고, 또 찾아다녔다

가족과의 캠핑, 지인들과의 백팩, 여름 계곡, 가을산, 겨울산 등. 주말은 어디론가 떠나야 할 힐링의 날이었다

오롯이 그 시간에 젖어 먹고, 마시며 즐겼다. 그리고 그것이 힐링이라 생각했다

전날의 짐 꾸리기도 즐거웠고, 몇 시간의 운전도 즐거웠고, 비 오듯 땀을 흘려가며 사이트를 구축하는 것도 즐거웠다. 어깨를 짓 누르던 75리터의 배낭도 즐겼고, 추운 것도 즐겼으며, 더운 것도 즐겼었다.

액티비티한 힐링 방식이었다.

그 안에서의 인연과 추억들은 인생의 한 조각으로 남을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들임에 틀림없다


"그래. 그때가  좋았어!"

주마등처럼 지나던 그때의 기억을 떠나보낸 주말 아침. 나는 홑이불을 꽁꽁 동여맨 채 게으른 아침을 만끽하고 있다

스마트폰도 tv도...그리고 애써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강박도 모두 모두 없다.

그냥 쉰다.  누가 뭐라 해도.

음악이 듣고 싶으면 lp를 꺼내고, 글이 읽고 싶으면 머리맡의 책을 펼치면 된다

5일 동안의 무거움이 꽉 들어찬 몸과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비움이 있어야 또 다시 채울 수 있다!"

인액티비티!  요즘의 힐링 방식이다



활성산소를 태울 항산화의 시간에 한결같음은 없으리라!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달려온 5일 동안 쌓인 활성산소에는 항산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항산화에는 비타민이 약이다

가을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음악, 책, 그림에는 비타민이 한가득이다

가득한 비타민을 어떻게 먹느냐에 한결같음은 없을것이다

그저 내가 먹고 싶은 비타민을 챙겨 먹으면 되는 것이다

시나몬을 듬뿍 얹은 모카의 향과 함께...


가을을 즐기자는 힐링 문구들을 많이 보아 왔다

매년 가을이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가을은 힐링의 계절", "가을은 낭만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


신파적 정서로 치부하기엔 너무 대중적인 감성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인간의 감성 유전자를 자극하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 듯하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월의 더께에 무뎌진 우리의 감성을 1년에 한 번이라도 일깨워 주기 위한 자연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름내 쌓인 활성산소를 태워, 치유해주고픈 비타민 같은 선물 말이다.


추색이 깊어 가는가 보다

전어도 먹고 싶고, 송이도 먹고 싶고, 책과 그림도 먹고 싶은 것을 보면...


10월의 비타민은 남장사(절 이름)의 낙엽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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