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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빵 Dec 09. 2024

6. 신혼 이혼, 법원에 가다

내 손으로 협의이혼을 신청했다.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제주도에 발령을 신청하고, 정말 제주 도민이 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어느날 갑자기 헤어지게 된지 네달 째가 넘어 간다.


처음에는 돌아올줄 알았다. 내가 미쳤나봐, 한번만 용서해줘, 내가 너 없이 어떻게 살아, 그렇게 빌어줄 줄 알았다. 나보다 하루 일찍 죽고싶다고, 나 없는 세상에서 하루도 살아갈 수도 없다고 말했던 사람이니까.


아마 그럼 나는 고민하고 많이 울면서도 받아줬을 거다.


냉담하게,

이제 너를 사랑하지 않아, 라고 말할 줄은 몰.


재산을 정리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이혼 후 확정판결을 들고 특례세 적용을 받는게 본인이 몇백만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지금껏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이혼을 미뤄오던 내가 먼저 법원에 가자고 말했다. 그래, 니가 원하는데. 내가 지금껏 안해준게 있었니.


그래서 내가, 내 손으로 이혼하겠다고 서명을 했다.


어쩌면, 나도 이렇게 서류를 정리하고나면, 좀 덜 아프지않을까. 홀가분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싶어서, 이 슬픔에서 벗어나고싶어서 내가 적극 협조했는지도 모르겠다.



법원 가기 전날 밤에는 가슴 어디를 도려내듯한 아픔을 꾸역꾸역 참으며 사진을 정리했다.

결혼식. 웨딩사진. 여행지별로 정리해둔 사진들.


늘 그렇듯 아침은 찾아왔다. 담담하게 하자고 다짐했지만 묘하게 긴장이 되는건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내 남편인 그는 먼저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따윈 없었다. 바로 서명을 하고, 서류를 제출하고, 아주 불친절한 공무원의 안내를 들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불친절한 이혼 담당 공무원의 안내를 들으니 정말 초라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만의 상상력일지 모르겠지만,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것 같아서 부쩍 서늘해진 날씨에 고개가 더 숙여졌다.


등본 하나 더 떼오는것까지 포함해서 이혼 신청은 정말 5분 만에 끝났다. 나는 생각과 달리 울지 않았고, 차분했고, 그는 나를 차로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정말 울컥해서, 그런데 자존심은 있어서, 몰래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얼굴을 보았다.

내가 사랑하던 고운 손가락을 눈에 담았다.

저도 마음고생을 하고 있어 한껏 수척해진 얼굴에, 빛을 잃은 눈동자. 미안하다는 공허한 말들. 빈 가슴에 주워 담았다.


그리고 제주로 돌아오는 길에, 이 일이 시작되고 나서 많이 진정했었는데, 오랜만에 눈물이 났다. 많이.


어제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진말고도 지워야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나를 무너지게 했던 건 사진보다 글자였다.


보고싶어. 이렇게 불쑥 찾아오면 안되는데.

지금 꼭 안아주고 싶어. 나 이렇게 이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 좋아. 사랑해.......


지난 7년간 나를 행복하게 했던 달콤한 말들이 문자로, 카톡으로 다 생생하게 남아있어서, 정말 무너진듯 울었다.


그리고 이렇게 내 마음이 버려지고, 상처받아 너덜너덜 해진 가슴을 가지고서도, 끝내 우리가 사랑했던 순간들을 못지우겠어서, 숙려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그냥 두자고 나 자신에게 배려 기한을 주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그냥 일상을 산다.

회사에 가고 동료들과 떠들고 술을 마시고 운동도 다닌다.

이제는 약을 먹지 않아도 잠을 잘 잔다.

꿈에선 여전히 자주 네가 나오지만 나 스스로에게, 이제 끝났다, 다 꿈이었다,고 말해줄 여유는 생겼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데,

나는 이제 그만 잊고싶다.


한편으론 이제 걱정이다. 숙려기간이 끝나면, 그는 약속을 지킬까. 또 나를 실망시키면, 놀라지는 않겠지만 또 슬프겠지. 이렇게 계속 살면 심장이 남아날까.


언제쯤 괜찮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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