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프 니만, 앤디워홀
뉴요커, 뉴욕타임스 등의 신문과 잡지에 많은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인 크리스토프 니만(Christoph Niemann)이 스포티파이의 팟캐스트인 크리에이티브붐에 나온 에피소드를 들으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세상 자유분방해 보이는 그의 일러스트레이트 스타일과는 살짝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루틴에 대해서 말했다. 아티스트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와 태도를 가져야 하고, 이를 키우긴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그리고 작업해야 하고, 그러면서 그 수많은 작업 중에 한두 개는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했다. 그리고 일 년에 이렇게 네다섯 개의 마스터피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일, 자주 그리고 만들어야 한다며. 운동선수처럼 매일 연습하고 그 곳에 나타나야 한다고.
어제 잠들기 전에는 오랜만에 오스틴 클레온(Austin Kleon)의 <킵고잉 (Keep Going)>을 다시 읽었다. 'Establish A Daily Routine'이라는 챕터에서 그는 크리스토프 니만의 말을 인용했다.
"Relying on craft and routine is a lot less sexy than being an artistic genius. But it is an excellent strategy for not going insane."
기술과 루틴에 의존하는 건 예술적인 천재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덜 섹시하지만, 미치지 않기 위한 훌륭한 전략이다.
바쁘게 이리저리 다니면서 일을 열심히 하는데도 정신적으로나 심적으로 불안했던 건, 아무래도 나의 루틴이 깨져서 그런 듯. 그동안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저널을 쓰고 읽고, 하루, 일주일, 한 달에 해야 할 일들을 따라서 규칙적으로 지내다가 프로젝트와 미팅, 가끔 재택근무까지, 시공간이 플렉시블 하게 움직이게 된 게 오히려 나를 더 혼란시키고 있었나 보다.
의미 없어 보이는 저널 쓰기가 사실은 내 정신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반은 아직 꿈속인 듯한 비몽사몽 간에 쓰는 나 혼자만 보는 저널을 쓰기 시작한 건 2020년 겨울, 연말부터였던 것 같다. 다른 브랜드를 위한 일 말고, 나를 위한 작업을 하고 공부를 해보자는 갭이어 (Gap Year)를 갖겠다는 포부를 안고 8년 정도 다니던 광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침에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일단은 좋아하는 책들을 마구 읽기 시작했고, 그중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웨이 (The Artist's Way)>라는 책을 읽으며 모닝페이지에 알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보다는 일종의 명상의 형태. 아무도 연락하지 않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펜을 들고 아무것이나 쓰는 행위다. 말이 안 되고 했던 말 또 하더라도 다시 읽거나 지우거나 수정하지 않고, 시간이나 분량을 써놓고 그냥 써 내려가면 된다.
매일 아침 B5노트 3페이지 정도씩 썼다. 처음에는 펜으로 무언가를 쓰는 행위 자체가 어색했고, 팔도, 손도 아파서 그냥 이걸 랩탑으로 쓰면 안 될까? 도 수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정도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봤는데 대체 무슨 말인지, 아무 쓸모도 없는 글 같았다. 다만 오랜만에 좋아하는 펜으로 좋아하는 노트에 무언가를 쓴다는 자체가 꽤 재미있었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을 글을 그냥 써 내려가는 그 자체가 나 혼자만의 비밀의 시간과 공간을 갖게 된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일년을 쓰다 보니, 좀 제대로 된 글을 써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졌고 미디엄에는 영어로, 티스토리와 네이버블로그에는 한국어로 글을 써봤다. 역시 랩탑으로 쓰는 글은 영혼이 없는 듯하기도 한 마음에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노트에 글을 쓰고 그걸 랩탑으로 다시 써내려 가면서, 브런치 작가 등록도 하고, 소셜미디어에도 조금 긴 글들도 쓰고, 소논문도 쓰면서 무언가 항상 쓰는, 나름대로의 루틴이 있었는데!
다시 여러 프로젝트와 급한 일에 참여하기 시작하며 이런 나의 루틴이 깨져버린 것이다. 앤디워홀의 책 <The Philosophy of Andy Warhol>에서 앤디워홀은 자신은 기억력 자체가 없다며, 매일이 새로운 날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뉴욕에서는 대부분의 아침을 B와 통화하는데 쓴다며, 이를 "체크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렇게 루틴이 있고 (어떠한 형태로든) 기록하는 하루하루를 유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