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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하고 감자

듀오링고로 한국어 배우기

by 정물루

"고기 하고 감자!"

"고기 하고 감자!"


남편이 자기 전에 침대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소리가 들린다. 요즘 그는 듀오링고에 빠졌다. 나는 처음에 별 관심 없이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고개를 돌리더니 물어본다.

"그러니까 한국말로 '하고'가 and라는 뜻이야?"

듀오링고에서 나온 문장이었나 보다.


드디어 남편이 한국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태껏 "나는 한국어 못해"라며 도망가던 사람이 이제는 자기 전에 항상 듀오링고로 한국어를 공부한다니. 한국어를 배우려는 의지가 생겼다는 점이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제 나한테도 질문 폭탄이 시작되겠구나' 싶어서 약간 긴장이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열심히 대답해 줬다.

"응, 맞아, '하고'는 and라는 뜻이야. 근데 좀 구어체라서 대화할 때 주로 써."

남편은 곧바로 문장을 만들어 본다.

"맥주 하고 김치!"

"아니, 그렇게 하면 좀 어색한데."

"왜?"

"음... 보통은 관련 있는 것들을 묶을 때 '하고'를 쓰거든. '고기 하고 감자'는 같이 먹는 조합이니까 괜찮은데, '맥주 하고 김치'는 좀 뜬금없어. 그냥 '맥주랑 김치'라든지, '맥주랑 치킨'같은 게 더 자연스럽지."

사실 설명하면서, 나도 긴가민가 했다. (어려워, 한국어)


남편은 좀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럼 '라면 하고 김치'는 괜찮아?"

"응, 괜찮지."

듀오링고는 그래도 실생활에서 쓰는 표현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공식적인 and는 '그리고'나 '와/과'이지만,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주 쓰는 건 '하고'나 '랑'같은 말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편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럼 '하고'는 언제 쓰는 거야? '랑'하고 뭐가 달라?"

"왜 '내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야?"

"앞 글자가 받침이 있으면 왜 다르게 소리가 나?"

"한국어는 왜 어순이 이렇게 이상해?"

듀오링고로 공부한 지 몇 주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언어학자가 되어버린 남편. 나도 처음에는 차근차근 설명해 주다가, 점점 지쳐가고, 또 사실, 설명하기가 애매모호한 게 너무 많다 한국어.



한국어를 설명하는 건 쉽지 않다. 차라리 영어 문법을 물어본다면,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어는 언제 뭘 배웠는지도 모르게, 그냥 나는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설명하다 보면, 한국어는 예외가 또 왜 이렇게 많은 건지.

"'하고'는 and야."

- 근데 문장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도 있어.

"'우리 집'이라고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가족 개념이 중요해서 그래."

- 근데 또 '내 남편'은 맞고, '우리 남편'도 맞아.

"발음이 달라지는 건 한국어의 음운규칙 때문이야."

- '밥 먹어'는 [밤 먹어]처럼 발음하는데, '밥은?' 할 때는 그냥 '밥'이라고 읽어.

"한국어 어순은 주어 + 목적어 + 동사야."

- 근데 말할 때는 주어나 목적어를 빼는 경우도 많지.


정말 복잡하다, 한국어.



요즘은 한국어를 배우려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어가 얼마나 체계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한 언어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남편이 '하고'라는 단어 하나에서 시작해서, 어순을 궁금해하고, 발음을 물어보고, 문화적인 차이까지 파고들어 가는 걸 보면서, 언어라는 건 단순한 단어와 문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문화까지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걸 실감한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나도 학부는 중어중문과를 전공했으니 그때도 그랬다.


"여보, 이거 맞아?"

남편이 다시 나를 부른다.

예문이 뭔가 어색한 것 같으면서도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응 맞아. 근데 한국어는, 그냥 맞다고 해서 끝이 아니야. 맥락에 따라 다 다를 수도 있어."

남편은 이해 안 간다는 표정을 한다.

"진짜 복잡한 언어네."


그래, 한국어는 원래 그렇다. 알면 알수록 더 어렵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영어가 편해도 한국어 책을 읽을 때의 감정선이 훨씬 더 섬세하고 뭔가 진한 느낌이 온다. 노래 가사도 한국어가 더 마음 찡하게 와닿는 이유가 아닐까? 아님,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그런 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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