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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자J Jul 21. 2022

대기업 3년 차, 울다 지쳐 퇴사한 날 1

나의 연봉 상승 이직 이야기

369가 고비다

: 직장인들이 3, 6, 9년 차 때 이직을 가장 많이 한다는 말


이 문장대로 3년 차에 이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던 나의 이야기다.


사실 나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직장 생활에 썩 불만이 없는 사람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임원까지 달겠다고 하고 다닐 만큼 생각보다 노예 생활(?)이 적성에 잘 맞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업계 특성상 회복탄력성이 적어 코로나 여파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에 이미 회사 내 많은 인력이 동하고, 못 이겨 떠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단 버텼던 이유는 부모님 말마따나 대기업이고, 월급은 따박따박 잘 나오니까. 가만히 있어도 연차가 쌓이면 경력이 됐다. 회사 이름값이 있으니까. 포트폴리오도 어찌어찌 그럴듯하게 만들 수는 있었다. 제 발로 찾아오는 제휴사 이름만 넣으면 됐으니까.


그런데, 나의 실무 능력은?


3년 차는 업무 역량뿐 아니라 책임 범위도 넓혀 가야 할 때였다. 실제로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은 어느덧 누군가의 사수가 되어 이전보다 많은 책임을 짊어지며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불안정한 회사 상황 속에서 이렇다 할 실무 역량을 쌓을 기회조차 만나기 어려웠다. 매출이 급해진 윗분들은 구성원의 R&R과는 전혀 상관없는, 돈 되는 일은 뭐든 시키는 탑다운 구조의 안 좋은 예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앞서 말했듯 노예 생활이 꽤 적성에 잘 맞는 사람이었기에 큰 불만 없이, 시키는 일들을 썩 잘 해치워 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다.


업무 효율이라는 명목 하에 잘하는 애들한테 몰아주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극소수 인원만 11시를 우습게 넘겨 야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해가 잘 되질 않았다. 이건 모두의 R&R에 해당되지 않지만 모두의 매출로 들어가는 일인데? 왜 저들은 '고생 많으시네요'라는 말을 던져놓고 나 몰라라 일어날까? - 라는 생각도 사치일만큼 위에서 쪼고 A거래처에서 쪼고 B거래처에서 쪼는, 숨 막히는 시간이 계속됐다.


남자 친구랑 하루에 한 번도 카톡을 못 한 날이 있었다. 집에서 출근 준비할 때부터 전화가 빗발쳤고, 업무 카톡이 자정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C거래처와 통화가 끝나면 D거래처에서 전화가 왔다. 휴대폰을 보기가 싫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퇴사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이직 준비를 병행 하기엔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그러다 이직을 결심하게 된 극한의 일주일이 찾아왔다.


업무량이 여기서 더 이상 늘어날 순 없다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업무는 자가 증식하듯 늘어났고 늘 그랬듯 백업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업무의 홍수 속에서 처리 속도가 늦어지자 거래처들은 일제히 나에게 화살을 쏘아댔다. 그 주는 유난히 그랬다.


그렇게 몇 달간 쌓인 스트레스는 온몸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격주로 림프가 붓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다가 하루는 눈에 띌 만큼 크게 부풀어 올랐다. 통증에 눈을 떠 거울을 보니 구슬만 한 혹이 귀 밑에 딱 붙어있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통증이 심해 점심을 포기하고 이비인후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야근을 했다. 간혹 아침 출근길 미주신경성 실신 증상이 나타날 땐, 익숙하게 구석으로 가 쭈그려 앉아 조용히 마스크를 벗고 후-하-후-하-를 반복했다. 일부러 여유 있게 출근해 중간중간 지하철에서 내려 호흡을 되찾은 후 다시 탑승하곤 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카페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당시는 코로나에 확진되면 일주일을 쉬던 때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코로나 걸리고 싶다

- 여기 있는 테이블을 다 핥으면 걸리지 않을까?

- 그럼 일주일 정도는 쉴 수 있을 텐데


보는 사람이 없다면 정말 테이블을 핥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상상하니 눈물이 났다. 나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거 맞나?


출근해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이미 퇴근 시간 10분 전인 데다가 야근도 확정이기에 울 시간조차 사치였다. 애써 참아보려 했지만 어느덧 눈물이 가득 차올라 시야가 뿌예지다가, 키보드 위로 투둑 떨어졌다.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렇게 일주일간 울컥울컥 눈물이 차오르는 바람에 화장실, 흡연구역, 회사 옥상을 전전하며 비밀 울음을 울었다. 절대 들킨 적이 없기에 아무도 모를 것이다. 혹시 '여자라서, 나약해서, 본인만 힘든 줄 알고 운다'라고 할까 봐 필사적으로 숨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일 회사에서 운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엄마 아빠한테 말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런데 부모님 얼굴을 보자마자 말을 이어가기도 힘들 만큼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 아빤 노발대발하시며 당장 내일 그만두라고 하셨다.


- 나 아직 다른 회사 합격한 데도 없는데 괜찮아? 이직이 아니라 그냥 백수 되는 거야.

- 백수해! 먹고 놀아!

- 엄마 아빠 나 여기 들어갔다고 좋아했잖아. 여기저기 모임 나가서 밥 쏘고 자랑하고..

- 지금 너의 선택에 있어서 엄마 아빠는 조금도 넣지 마. 네 행복이 제일 중요해. 대기업이고 나발이고 알바만 하며 살아도 네가 행복하게 사는 게 좋아.


저 말씀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 정말 알바만 하며 살아도 더 행복할 자신이 있었다. 불같이 화내는 거래처 전화를 미동 없이 받으며 속으로는 간절히 코로나 혹은 입원을 요하는 수준의 교통사고를 바라고 있는 정신은 이미 얼마나 피폐한 것인가. 다음 날 팅팅 부은 몰골로 출근을 했다. 자리에 앉았는데, 어제 부모님과 열심히 결론 지은 퇴사 결심이 쏙 들어갔다. 계획적인 내 인생에 '이직 전에 퇴사하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누구보다 잘 참고 인내심 있다고 자부해 온 사람인데 난 어쩌다 이런 수세에 몰리게 된 걸까?


- 엄마, 나 그만둔다고 못하겠어. 용기가 안 나..

- 거길 계속 다닐 용기는 나고?

- 그건 더 안 나긴 하는데..

- 네가 정말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 포인트가 있었을 거 아냐. 우유부단해지지 말고 나와. 엄마 생각에 거기서는 더 이상 배울 게 없어. 귀하게 키우고 열심히 가르쳐서 보내 놨더니 그딴 일이나 시키고 부려먹는 회사, 이제 줘도 안 다닌다 그래.


그래, 최소한 안 울고 다닐 수 있는 회사를 가야 효도다. 엄마 메시지를 보고 바로 벌떡! 일어났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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