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현 Oct 25. 2023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하늘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 노래 <가을 우체국 앞에서> 중에서, '김현성' 작사, 작곡.-


빨갛게 익어가는 가을 우체통



  <가을 우체국 앞에서>는 1994년에 발표한 윤도현 1집에 수록된 곡으로 우체국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 문득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는가에 대한 사색을 담고 있다.


  이 노래는 꾸준히 사랑을 받아 왔지만, 2018년 방탄소년단 '진'이 커버한 후 트위터에 트윗하여, 해외 K-POP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졌다. 무엇보다 2021년 최고의 인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OST로 출연 배우인 '김대명'이 불러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불려지게 되었다.

  






  사람을 가리키는 한자 ‘人’은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맞댄 형상이다. 나와 등을 맞댄 사람을 내치면 나도 넘어진다는 것이 人의 이치다. 그렇게 서로의 등을 기대고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살이인가 보다. 이와 관련하여 인도의 살아있는 성자로 알려진 '선다 싱(Sundar Singh)'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선다 싱'이 히말라야 산길을 걷다가 동행자를 만나서 같이 가는 도중에 눈 위에 쓰러져 있는 노인을 발견하였다. '선다 싱'이 동행자에게 제안하였다. "여기에 있으면 이 사람은 죽으니 함께 업고 갑시다." 그 말에 동행자는 이렇게 대꾸하고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이 사람을 데려가면 우리도 살기 힘들어요." 


  '선다 싱'은 하는 수 없이 노인을 등에 업고 가게 되었는데, 힘들게 얼마쯤 가다 보니 길에서 죽은 사람을 발견하였다. 그 사람은 먼저 떠난 동행자였다.


  '선다 싱'은 노인을 업고 죽을힘을 다해 눈보라 속을 걷다 보니 등에서 땀이 났기 때문에 두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서 매서운 추위도 견뎌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선다 싱'과 노인은 무사히 살아남았고, 혼자 살겠다고 떠난 사람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훗날 어떤 이가 '선다 싱'에게 물었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할 때가 언제입니까?" '선다 싱'은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내가 지고 가야 할 짐이 없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할 때입니다."


  산을 오를 때도 가방이나 짐을 지고 오르는 것이 힘은 들어도 더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짐이 가벼워지기를 바라지만 그때가 더 위험할 수도 있음을 늘 주의해야 한다.


우리 인생의 짐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모든 게 익어가는 가을이다. 곱디고운 황금빛으로 물들어간다. 인생도 익어간다.  인생 참 아름답다. 네가 있어서 그렇다. 같이 살아갈 네가 있어서 더욱 그렇다.


  나이 들어감을 누구는 익어간다 노래했으니 나도 늙어가지 않고 익어가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벼가 익어가고 탱자도 익어가고 밤도 익어가고 포도주도 익어가며 우리네 인생도 익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익어가는 것들을 동행으로 삼고 사랑하고 싶다.


  한때는 젊음을 무기로, 자신감 충만으로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온몸으로 받기도 했다. 한편에선 세찬 비바람과 맞서서 지탱하며 두려운 마음과도 당당하게 이겨 내려고 힘썼다. 이제 젊음의 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었다. 생각이 바뀌고 표현 방법도 달라지면서 인생을 다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늙어간다’ 대신 ‘익어간다’의 렌즈로 들여다 보면 매일 하는 일, 취미, 운동이 새롭게 보인다. 식물이 잘 익으면 열매를 맺듯이, 내 삶이 잘 익어가다 보면 일이나 관계에서 보람, 사랑, 즐거움이라는 열매가 맺어질 것이란 기대가 생긴다.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은 달달해지고 싶다. 가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속 깊이 환하게 밝아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직 나에게 푸른 꿈이 살아 쉼 쉬고 있다는 증이다. 자기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스스로 어떤 길을 선택할 기회가 남아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서서히 시간의 약을 먹으며 붉은 청춘처럼 익어가는 단풍같이 내 인생도 달콤하게 익어갔으면 좋겠다.


붉은 청춘처럼 익어가는 단풍






  으로 「92세 할머니의 뼈아픈 조언」 이라는 글을 소개하고 싶다. 읽을 때마다 뭔가를 다짐하는데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얘야! 너 늙으면 제일 억울한 게 뭔지 아니? 나는 언제쯤이면 재밌고 신나게 한번 놀아 보나, 그것만 보고 살았는데. 지랄 맞게 이제 좀 놀아 보려고 했더니만 다 늙어 불었어! 인생은 타이밍이 있어, 너무 아끼고 살지 말어.

  언제 하늘 소풍 갈지 몰라. 꽃놀이도 빼먹지 말고 꼬박꼬박 댕기고, 이제 보니까 웃는 것은 미루면 돈처럼 쌓이는 게 아니라 다 사라지고 없더란 말이여.

  사람들은 행복을 적금처럼 나중에 쓸거라 생각하는데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냥 하루하루를 기쁘고 행복하게 웃으며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란 말이여!

  훗날 후회하지 말고…”


고양이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