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조금 덜 만나고 조금 덜 기대하며 많은 약속 않기로 해요.
다시 이별이 와도 서로 큰 아픔 없이 돌아설 수 있을 만큼 버려도 되는 가벼운 추억만 서로의 가슴에 만들기로 해요.
- 가수 '도원경'의 노래 「다시 사랑한다면」중에서. 강은경 작사, 김태원 작곡.
도원경 4집 앨범 커버
이 노래는 2001년 5월에 발매된 도원경 4집 앨범(Unique)의 타이틀곡이다.이별 이후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느끼는 후회와 회한을 담고 있는 가사와 애절한 목소리가 합해져 그녀의 대표 곡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2016년 MBC<복면가왕>에서 '니글니글 버터플라이'라는 복면을 쓰고김필이 리메이크한 음원이 이후 입소문을 타고 역주행을 하면서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다시 받고 있다.
<복면가왕>에서 노래 부르는 '김필'
삶을 살다 보면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물음표가 있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 걸까?’
누군가 나에게 지금이 옳은 길이고 정말 잘 가고 있다고 말한들 나는 멀지 않아 또 의문을 제기하고 말 것임을 안다. 내면이 혼란스러운 물음표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확신에 찬 사람들이 부러웠다. 자기 자신이 뭘 원하고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는 이들은 강단이 있다. 지금 설령 그게 잘 풀리지 않고 현실에 가로막혀 애먹고 있더라도 무너지거나 멈추지 않을 수 있는 내적인 힘이 그들에겐있어 보인다.
얼핏 보기엔 나는 스스로 원하는 대로 개성 있게 살아온 것같지만, 사실 돌이켜보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순응했을 뿐이다. 내게는 역경을 무릅쓰고 영혼을 갈아 넣어서라도 성취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하다.
확신이 없으면 일이 조금만 안 풀려도 불안해서 도망부터 가고 싶어진다. 남들 말에 휘둘리게 되고 뚝심 있게 나의 길을 가지 못한다.
가끔 지금껏 걸어왔던 길을 돌아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걸어오면서 봤던 길과는 너무나 다른 이질감을 느낀다.
지금까지 쉼 없이 걸어온 삶이 내가 가고자 했던 길과 다를까 봐 두렵다. 어쩌면 잘 안다고 생각했던 길이 낯설게 느껴질까 봐 쉬이 뒤돌아보기 힘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잘안다고 생각했던 길이 낯설게 느껴질까 봐 쉬이 뒤돌아보기 힘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에’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만족도 아니고 포기도 아닌 것들에 대해 ‘만약에’라는 가정은 지금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눈속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만약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라는 질문을 했을 때 난 뭐라고 답할까? 몇 가지 시간선들이 떠오르면서 입안이 쓰다.
아마 나는 약간의 고민 후에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난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래. 그냥 지금 여기에 있을래."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인생의 매 순간에서 수없이 생각하고 내린 선택들은 최고는 아니었지만 최선이라고 판단한 결정이었다. 물론 돌이켜보면 후회도 많고,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남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과거의 그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좀 더 솔직한 심정은 지난 결정들에 대한 아쉬움보다 그 과정들에서 얻은 인생의 축복들을 과거로 돌아가면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측면만이 아니다.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상실감에 짓눌렸지만 그때마다 누군가 날 받쳐주었다.힘들었던 시기마다 힘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역시나 지금까지의 내 삶은 소중하고 감사한 인연들의 연속이다.
지금까지의 내 삶은 소중하고 감사한 인연들의 연속이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입에 물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낯선 신조어를 내뱉으며 나락으로 빠지는 사람도 있다.
나는 가끔 삶의 순간순간이 견디기 버겁고 힘겨워질 때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나에게 이 세상에서 허락된 시간이 일주일 뿐이라면?’
20세기의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는 죽음을 고마운 장치로 생각했다.죽음이라는 장치를 앞당겨 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이 영원하지 않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죽음의 직시를 통해 우리는 삶의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것이다.
내가 걸어온 삐뚤빼뚤한 길이 삶이 된다. 모자라고 부족하다고 느껴지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조금만 더 인정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