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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Nov 01. 2024

검은 것과 붉은 것

#표지 그림: 마르크 샤갈, <강변에서의 부활>, 1947.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기다리며
알 수 없어 괴로워하는 일을
‘번민’이라고 한다.
번민하는 자의 눈은 빛을 잃어 검다.     

지나간 것을 떠올리며
잊지 못해 슬퍼하는 일을
‘번뇌’라고 한다.
번뇌하는 자의 눈은 분노로 붉다.     

하여, 번민은 검고 번뇌는 붉다.     

형체를 갖추지 못한 그 검고 붉은 것이
그토록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다시 만나 한 몸이 된다면
이 세상이 어찌 될 것 같으냐?     

산 자와 죽은 자 모두가
번뇌와 번민의 사슬에 붙들려
분노하고 절망하여 살아가는 세상.
끝을 알 수 없는 밤의 세상.     

그것이 바로 '지옥'이지.


  - 영화 <제8일의 밤> '선화’가 ‘청석’에게 하는 말 중에서     


영화 <제8요일>의 한 장면. 주인공 선화(왼쪽)와 청석(오른쪽)


  영화 <제8일의 밤>은 2021년 7월 넷플릭스로 공개된 한국 영화로, 7개의 징검다리를 건너 세상에 고통으로 가득한 지옥을 불러들일 ‘깨어나서는 안 될 것’의 봉인이 풀리는 것을 막기 위해 벌어지는 8일간의 사투를 그렸다.     


  숫자 8은 영화 소개에서 보듯 옆으로 누이면 무한(∞)이 되어 8일의 밤은 무한의 밤 즉 ‘무간지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숫자 8은 깨달음의 의미도 있다. 주인공 ‘선화(배우 이성민)’가 8일째 되는 날, 복수 대신 자신을 희생하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그 증거로 영화 마지막 선화의 이마에 빛이 보인다.               




  요즘은 계속 늦게 퇴근한다. 회사 일이 많아졌기도 하지만 늦은 시간에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도 늦은 시간에 집에 와 보니 마침 아내도 바빴는지 아직 퇴근 전이었다. 장모님이 계시지만 딸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평소 같았으면 딸애는 잔소리꾼들이 없어서 더 유익한 시간을 보내며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딸애를 부르자 제 방에서 또르르 달려오는데 평소와는 다른 표정으로 다급하게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학교에서 무슨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딸애의 목소리는 잔뜩 기가 죽어있었다.


  "아빠, 나 오늘 과학시간에 과학 선생님한테서 혼났어. 지난 시간에 배운 건습구습도계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는데 내가 틀리게 답했어."


  "그럴 수도 있지 뭐. 사람이 어떻게 매번 정답만을 말할 수 있겠어.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나는 일부러 밝게 웃으며 아이에게 힘을 보태 주었지만 딸애는 조금도 표정이 나아지지 않았다. 딸애는 계속 뭔가를 얘기했고 그걸 듣고 있던 내 마음도 착잡해졌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초5-2과정에서 배우는 건습구 습도계


  그날 과학시간에 과학 선생님은 딸애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도 무작위로 질문을 하고는 대답을 제대로 못하는 학생들을 야단쳤다고 한다. 그거야 뭐 으레 있는 일이고 혼이 나도 마땅한 일이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수업이 거의 끝날 무렵 '너네 반이 공부를 제일 못한다'라고 나무라면서 반장, 부반장들에게 '다음 시간까지 반 학생들이 해당 내용을 잘 숙지하도록 책임지고 가르치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 딸애가 부반장인 걸 알고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넌 부반장이라면서 아까 그런 것도 모르니?"  




  별생각 없이 던진 선생님의 말에 딸애는 큰 상처를 받았다. 많은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불쑥 튀어나온 선생님의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자 바로 시커먼 독침으로 변해 아이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가슴에 파고든 독침으로 인해 딸애의 속마음은 조금씩 곪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독침에 의한 통증이 자책과 후회를 만들어냈으나 점차 그 독이 몸에 퍼지면서 마음속에서 다른 형태들로 변해갔다. 그것은 창피함에서 억울함으로 드러나더니 곧 분노와 저주로 변해 딸애의 마음을 완전히 잠식해 버렸다.

  

  나 또한 그 선생님의 말이 너무 심했다는 것에 분개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큰 독이 된 걸까? 딸애는 아빠의 말에 동력을 얻어서인지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악한 기운을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받아들이고 더욱 키워나갔던 것이다.


  한 이틀 정도 딸애의 입에서 '교육청에 신고하겠다'느니 하는 시답지 않은 소리들이 나왔지만 이내 잦아들었고 그렇게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딸애의 속마음은 조금씩 곪아가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별일이 있는지 딸애에게서 집에 언제 오냐며 전화가 왔다. 가능하면 빨리 가겠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그날은 평소보다 더 늦게 퇴근했다. 미안한 마음에  딸애를 부르자 이미 얼굴에 안 좋은 기운이 서려 있는 표정으로 제 방에서 나왔다.


  "아빠, 내일 과학시간에 선생님이 질문한다고 했잖아. 공부를 하긴 했는데 잘 모르겠어. 어쩌지?"


  "뭐가 걱정이야. 요즘엔 모르는 거 있으면 유튜브로 검색하면 다 나와. 아빠가 찾아줄 게."


  그렇게 난 친절하게 유튜브로 검색해서 알맞은 동영상을 딸애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딸애의 표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동영상도 대충 훑어보고는 별 도움이 안 되는지 내려놓았다.


  "아빠, 내가 공부를 해서 내용은 알겠는데 그걸 말로 설명하려니까 잘 안돼."


  "아빠 생각에, 네가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교과서의 문장을 있는 그대로 대답하는 게 답이 아니라 네가 체득한 내용을 네 나름의 기준으로 설명하면 되는 거야."


  이런 내 말에도 딸애는 수긍하지 않았고 계속 같은 내용의 대화가 도돌이표처럼 이어졌다. 점점 답답해지는 내가 감정을 드러냈고 끝내 딸애는 울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나는 딸애가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딸애는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선생님이 무얼 물어볼지 모른다는 '걱정'이, 또다시 틀려서 친구들의 비웃음감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게다가 같은 반 친구들까지 공부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이 딸애의 의식을 전부 먹어치웠다. 그런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


걱정과 불안이 만든 두려움은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든다.


  한참이나 딸애와 얘기를 나눴다. 주로 내가 말하고 딸애는 들었다. 나는 집 밖 세상이 어떤 곳인지,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어려워질 수 있는지 딸애에게 두서없이 말했다. 지난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메어졌다.


  딸애가 이렇게 치명적인 외부 환경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적이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주변 어른들의 보살핌과 배려를 받아왔지만 앞으로는 살아가면서 그런 보호막들이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오롯이 버티고 나아갈 수 있을까? 


  혼자 물끄러미 자기 손을 바라보고 있던 딸애가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었다. 얼굴을 보니 차분함이 돌아온 모양이다. 조금 더 성장한 딸애가 보였다. 이제는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할 시간. 조용히 혼자 양치질을 하러 가는 딸애의 뒷모습을 보며 내 작은 힘을 보내 주었다.



             

  그다음 날, 회사에서 근무 중에는 몰랐는데 퇴근을 하면서 그 전날 겁에 질려있던 딸애의 얼굴이 떠올랐다. 과연 어떤 결과로 끝났을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오늘마저도 지난번과 비슷하게 좋지 못한 결과로 끝난다면 아마 큰 정신적 충격으로 남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집에 들어왔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딸애를 마주했는데 그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덜컹 마음이 내려앉는 것을 아무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아내에게 신호를 보냈다. '무슨 일 있어?'


  천만다행하게도 오늘은 과학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고 오히려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그럼 왜 울고 있어?'


  오늘 병원에서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 팔이 아픈데 엄마가 억지로 목욕시켰다고 울면서 투정 부리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팔이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겠다며 잠옷 단추 채워달라는 혀 짧은 애기 소리를 내는데 세상 걱정이라고는 알지 못하는 듯한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이 흘러나왔다.

헝가리 일러스트레이터 '아이리즈 애고스' 작품


  지난 일주일 동안 딸애는 '지나간 것을 떠올리며 잊지 못해 슬퍼하는 번뇌'에 시달렸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기다리며 알 수 없어 괴로워하는 번민’ 때문에 <사바세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부모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면서 속앓이를 하다가 결국 울면서 속마음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던 딸애를 생각하니, 평소 아빠라면서 자녀의 마음 하나 헤아리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딸애가 혼자 넋두리하듯이 조용히 속삭였다. 어떻게 그런 표현을 생각했는지 참 멋진 문장이었다.


  "과학 선생님 때문에 내 마음의 공간이 0.25평 늘어난 것 같아. 아 진짜 웃긴다!"


어둠이 깊으면 빛은 더욱 찬란하고
번뇌가 크면 해탈도 큰 법.     

생은 무엇이냐?

생은 잠시 피어난 풀싹 같은 것.
꿈이며 환상이며 물거품이며,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은 것.
참으로 허무한 것.    

그러나 정해진 운명 속의 허무한 잠시일지라도
모든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법.

선화야, 이제 그 의미를 찾았으니
슬픈 꿈에서 깰 시간이다.


 - 영화 <제8일의 밤> '하정’이 ‘선화’에게 하는 말 중에서     



딸애의 카카오톡 프로필. 딸애가 이 세상에 나온지 벌써 4,304일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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