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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지 Oct 15. 2024

먼저 간 동생에게

코스모스 꽃잎은 여덟 개

        

  벚꽃 잎이 질 때쯤이었다. 큰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정순이가 집을 나갔어. 오빠한테 맞은 것 같은데 엄마가 울면서 전화가 왔어. 혹시 친구 연락처를 아니? 어디 갈만한데 아는 데 없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그게 뭐 큰일이라고. 내 애는 뱃속에서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다. 그런데 서른 살이 다 된 애가 집을 나간 게 뭐 큰일이라고. 그건 가출이 아니라 독립으로 봐도 되잖아. 나가면서 형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했다면서. 그럼 독립 맞지.

  엄마 집으로 가는 강변도로 위에 벚꽃잎이 떨어져 하얗게 깔려 있다. 죽은 사람에게 씌워놓은 보자기 같아 차에 속도를 낸다. 차가 지나가는 속도에 밀린 꽃잎들이 공중으로 뜨면서 까만 아스팔트가 잠시 보인다. 하필 도로도 까맣다. 내가 지나간 자리가 또 하얗게 될 것 같아 앞만 본다. 도대체 어디를 간 것일까? 일주일 정도 있다가 집에 오겠지. 지가 가봤자 어디를 가겠어.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상상은 그 정도가 다였다.     

그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오빠가 때리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내가 그날 나갔더라면……     

  그날은 내가 모른다. 둘째 언니는 그날이 너무 또렷이 기억나 아직도 힘들어한다. 정순이를 돌보는 일은 오롯이 둘째 언니 몫이었다. 언니는 그날도 집에 오자마자 막내를 찾았다. 이게 웬일인가. 정순이가 방에 누워 자고 있었다. 언니는 동생을 업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설거지며 빨래를 서둘러 했다. 정순이가 깨면 할 수 없는 일이니, 마음이 더 급했다. 할 일을 다 마친 언니는 그제야 정순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가슴에 멍울이 생긴 12살짜리가 소녀가 다섯 살짜리 동생을 업고 달렸다. 햇볕에 조금만 서 있어도 쓰러지는 사람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엄마가 일하는 곳까지 2km가 넘는 거리를 뛰어갔다. 점심 먹이러 갔을 때만 해도 멀쩡하던 아들이었다. 엄마는 무작정 옆 동네 철이 할매를 찾아갔다. 이미 이 세상 애가 아니라는 철이 할머니에게 애원하고 매달렸다. 그렇게 열 손가락과 열 발가락을 따고서야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쩌겠노. 지 목숨이 저게 가진데. 엄마는 평소 덮고 자던 이불에 정순이를 둘둘 말아 한편에 밀어두었다. 물에 밥을 말아 밥을 먹다가 눈물을 닦았다. 목구멍에 막혔는지 가슴도 팡팡 쳤다. 다 먹은 그릇을 한편에 밀어두고 엄마는 이내 잠이 들었다. 정작 둘째 언니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떻게 엄마가 잠을 자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이불에 덮인 정순이를 다리를 주무르다가 울다가, 팔을 주무르다가 울었다. 그러다가 언니마저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팔을 흔드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정순이가 언니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누나 배고파. 밥 줘. 정순이는 그렇게 깨어났다. 엄마는 두고두고 철이 할머니가 따줘서 그렇다고 철이 할머니가 정순이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지만 그때였을까? 그렇게 죽다가 살아난 그 날 이후로 막내가 살아야 할 세상이 바뀐 것일까? 갔어야 할 아이가 가지 못해 그렇게 가혹했던 걸까? 언니 말로는 그날 때문이라고 했다. 정순이가 글자를 늦게 익힌 것도, 구구단을 5학년이 다 되도록 외우지 못한 것도, 영어 단어 하나 외우는 게 잘 안되는 것도. 결국 사이클 특기생으로 농업고등학교를 가게 된 것도 말이다.

  어쩌면 엄마는 벌써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명한 스님으로부터 엄마한테는 자식이 일곱밖에 없다는 소리를 들은 날 쌍둥이 언니를 하나로 치면 맞는다고 했다. 집에 시주하러 온 스님이 그런 말을 했을 때는 뭣도 모르면서 쌀이나 받아 갈 것이지 함부로 입을 놀린다며 내게 소금을 뿌리게 시키기도 했다. 막내는 매일 돈이 필요했다. 1층 오락실에서 매일 게임을 해야 하니 돈이 모자랄밖에. 엄마는 우리 몰래 막내에게 500원씩 꼬박꼬박 주었다. 그러면 막내는 그 돈으로 게임을 하고 모자라면 엄마 동전통에도 손을 댔다. 엄마는 누가 그 돈을 가지고 가는지 알고 있어서인지 동전이 생길 때마다 동전통에 넣었다. 그러다 오빠 지갑에도 손을 댔다. 오빠는 막내를 때렸다. 그러면 엄마는 말로 하라며 오빠를 말렸다. 우리한테는 아비 없는 자식 소리 안 듣도록 행동거지 조심하라고 독하리만치 엄격한 사람이 유독 막내에게는 모든 것을 눈감아 주었다. 엄마는 그때 벌써 알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진짜 일곱 명밖에 자식이 없다는 것을.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정순이는 여기저기 회사를 들어갔다. 그리곤 한 달도 못 버티고 나왔다. 오빠는 정신 차려야 한다고 했다. 큰 언니는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고 했다. 둘째 언니는 모르면 물어보면서 배우라고 했다. 셋째 언니는 사회생활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아냐고 했다. 나는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결국 정순이는 오빠가 다니는 회사에 들어갔다. 부품 이름이 모두 영어라서 외우는 게 힘들다고 했다. 하나 외우면 앞에 외운 것을 잊어버리고, 부품 이름을 모르니 일하는 순서도 틀려서 불량을 낸다고 했다. 오빠는 간부였고 동생에게는 남보다 더 매정하게 대했겠지. 동생이라고 편애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겠지. 동생이니까 더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겠지. 그날도 일하다가 큰 실수를 한 막내에게 오빠도 처음에는 말로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막내가 듣고만 있지 않았다. 자신도 잘하고 싶은데 안된다고. 잘하고 싶은데 안되는 내 마음은 얼마나 답답한지 아냐고 대들었다. 오빠에게 통할 리 없는 말이었다. 결국 오빠는 막내를 때렸다. 군대에서도 그렇게 맞은 애를. 엄마가 말릴 새도 없이. “성공해서 올 테니까 두고 봐. 형처럼은 안 살 거야.” 그게 막내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날 오빠가 때리지만 않았으면 그러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우리 중 누구 하나라도 다른 말을 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까?

  막내가 죽다 살아난 그 날 이후로 나는 막내랑 바뀌어야 할 아이였다. 가스나가 공부를 잘해서 뭐하노. 저게 아이라 정순이가 저래 공부를 잘해야 됐는데. 내가 미워하고 싶어서 미워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자꾸 나보고 저런 소리를 하니까 미워할 수밖에. 엄마가 한글 가르치고 구구단 가르치라고 할 때도 나는 가르쳤다. 공책에 글자를 따라 쓰고 읽고 또 쓰게 했다. 그러면 뭐 하냐고 다음 날 되면 하나도 모르는데. 엄마는 맨날 내가 안 가르쳐서 그렇다고 내 탓을 했다. 그러니 내가 좋은 마음으로 정순이를 대할 수 있었겠냐고. 그렇다고 정순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을 한 적도 없지만,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어른이 미웠고 내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가 미웠지, 막내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아니까. 집 나가기 삼 일 전 정순이가 술 한 잔 사달라는 전화를 했다. 그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견디는 중이었다. 정순아 미안하다. 누나가 술을 마실 상황이 아니야. 누나가 딸을 뱃속에서 떠나보낸 것을 몰랐는지 아니면 한 달이 지났으니까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것이었는지. 그런 부탁을 했다. 그때 술 한잔 사줬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까? 그래 너나 나나 참 힘들다 하소연하면서 술 한 잔 함께 했다면.     

  코스모스꽃이 필 때쯤이었다. 큰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막내가 하늘나라로 갔어. 아빠한테 갔더라. 너무 울지는 말고 경아 너무 울면 안 돼. 너는 배 속에 아기를 생각해야지. 막내는 우리가 잘 보내줄게. 소파에 앉은 채로 온종일 움직이지 않았다. 유독 이번 추석에는 엄마가 계속 벌초를 하러 가자고 했다. 오빠 혼자는 안 갈 것 같으니까 큰언니를 졸라 형부까지 함께 벌초를 갔다. 아빠 묘 앞에 막내가 집 나갈 때 가지고 간 가방이 있었다. 아빠가 묻힌 곳까지 가서 아빠 곁으로 갔다. 어떻게 갔는지 언니들은 말하지 않았다. 그해 여름은 유독 비가 많이 왔다.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코스모스 꽃잎은 우리 형제 수만큼 핀다. 그래서 코스모스를 보면 곁에 가서 보고 싶다. 그리고 꽃잎 여덟 개를 모두 세어본다. 혹시 잎 하나가 떨어지려고 하면, 혹시 잎 하나만 펴지지 않고 돌돌 말려있으면 마음이 아프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고, 빨리 떨어질까 봐 마음이 아리다. 흰색 꽃잎이 여덟 개 가지런히 붙어 있는 코스모스는 차마 쳐다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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