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관의 의욕 X 면접자의 열정과다
고마해라! 너무 많이 시킨다 아이가
과유불급. 시대와 상황을 막론하고 진리의 명언이다.
퇴사와 입사가 빈번한 직장생활이었다. 나의 지론이 있다면 첫인상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다. 궁합이 맞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혼이라는 현실에서 함께 살아보니 "아니다"라는 현타가 올 수 있다. 그럴 땐 나도 그랬고, 타인에게도 권한다. 잽싸게 "퇴사하라"라고.
회사에 미안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길게 보면 회사에게도, 나 자신에게 모두 현명한 판단이다.
아닌 것 같은 마음을 붙들고 시간을 버티는 건, 결국 버티는 것 밖에 안되고 영글어서 터질 때까지 기다리면 탱탱하게 곪기 밖에 더하겠는가.
그리고 원래 불길한 예감은 대부분 맞다.
이런 지론을 가진 나의 직장생활 기간은 우연인 듯, 필연인 듯 강약 중간 약. 강약 중간 약. 템포의 연속이었다.
다양한 상황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퇴사의 이유는 항상 회사와 나. 면접관과 나. 우리 둘의 동상이몽이었던 것 같다. 첫인상과 기대에 대한 측면만 놓고 보자면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면접을 보러 갔지만, 그들에게 뮤즈가 된 경우가 많았다. 나의 어떤 측면이 그들에게 그런 영감을 불어 일으켰는지는 모르겠다. '너무 열정적으로 보였나', '다 할 수 있다고 했나.' 싶을 수도 있지만,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절대 아니다.
열정적으로 보이는 건, 어떤 면에서 봤건 그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이기에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다 할 수 있습니다." 혹은 "시켜만 주시면 뭐든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신입의 경우 합격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 욕심을 부릴 수 있다. 하지만 경력은 알 것이다. 부질없는 시간낭비를 자초하는 허세라는 것을.
면접은 서로 상견례하는 자리다. 그쪽에서 요구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조율해서 맞춰가야 한다. 할 수 있다고 했다가 못하면 낭패다. 지례 겁을 먹으란 얘기가 아니다. 경험적으로 해본 일과 해보지 않은 일의 선을 명확하게 긋고 객관화하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쪽에서 "그래도 너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니? 우리 같이 해보자. 처음엔 우리가 도와줄게"라고 한다면 OK. 나의 능력도 키워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니 마다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내가 가진 재료로 원하지 않는. 더욱이 메뉴판에도 없는 모든 요리를 강요하는 면접관도 많다는 것이다.
나는 칼국수 만드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맛깔난 칼국수 한 그릇을 내 능력을 발휘해서 훌륭하게 만들고 싶은데 "너 만두도 잘 만들겠는데? 그래, 만두도 만드는 거 이왕이면 김치도 만들고, 족발도 삶아봐."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직 경력의 경우 자주 겪는 일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시집살이에 비유하자면 결혼을 해서 시댁에 갔는데, 젓가락이 어딨는지도 모르는 내게 한 상 차려 내오란다.
이 집은 밥을 언제 먹는지 시간도 안 알려주고 (심지어 눈치껏 차리려 하면 손등을 찰싹 때리며 밥상을 못 차리게 하는 형님도 있는) 당황하는 나를 '어디 한번 보자. 너의 재주를'이란 눈빛으로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웃"이라고 말하는 회사가 있는 반면, 무조건적인 지지로 '넌 조금만 배우면 이것도 잘할 것 같고, 저것도 잘할 것 같고, 학원비 내줄게. 업무시간 빼줄게. 학원 다녀봐'라고 능력을 한껏 키워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회사도 있었다. (물론 이런 경우도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장르가 완전히 다른 로맨틱 판타지다)
덕분에 나는 말을 잘하고 발음이 또박또박하다는 이유로 국내 유명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다녔고(이미 아나운서 같은 이들 틈에서 매우 민망한 경험이었다), 출판관련협회에서 운영하는 출판 편집장 과정을 이수하는 등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회사로부터 제공받았다.
당연히 이 모든 이력은 이력서에 기재해서 제출한다. 그런데 이를 본 면접관들 중에 "오, 관련 업종을 모두 가능하니, 업무 이해도와 타 부서 조율이 용이하겠군"수준이 아니라 "와! 그럼 네가 다 해봐. 합격, 그러니까 와서 다 해줘."라는 곳이 있다. (응, 진짜 있어. 생각보다 많아.)
내 구직생활이 길어지고, 면접 경험이 많아진 직접적인 이유로, 이걸로 글까지 쓰게 됐으니 이제로서 감사한 일이 되었다. 정말 사람일 모르겠다. (가끔은 신의 큰 그림이 정말 있구나 싶다.)
말하고 싶은 것, 당부하고 싶은 것은 회사에 입사해서 일한다는 것은 단순한 밥벌이, 돈벌이 이상의 의미를 지녔으면 한다.
나를 키워줄, 내가 클 수 있는 회사를 가야 한다. 키우지도 않은, 나의 가능성, 그 씨앗을 발견하고 인정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아직 크지도 않은 열매도 따서 먹겠다는 곳은 가면 어차피 "퇘퇘"하고 그쪽에서 뱉어버리거나 내가 피가 말라서 나오게 되어 있다. 욕심과 열정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상황에 주눅 들지 않으려면 현재 나의 포지셔닝과 캐릭터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무수한 회사들의 면접에서 나의 주관과 기준을 지켜 칼로 풀숲은 좌우로 베듯 길을 만들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
"그럼, 또 가보자. 슉슉슉. 다 비켜!
나님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갈 수 있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