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자의 출근 첫날 '퇴사 선언'

무식하지만 용감한 "전, 싫습니다"

by 천유

엄청 오래 살지 않았지만 내 인생을 관통하는 명언과 진리가 하나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와
"하지만 그땐 최선이었다"



어느 날, 아는 기자님의 연락이 왔다. 신문사 기자가 될 생각이 없냐고. 나는 처음 들어보지만, '그 정도면 괜찮아'라는 설명과 함께 지금 수습기자를 뽑는다고 소식을 전해줬다.



생각을 해봤다.

기자? 좋지.
생각이 왜 없겠어?
지금부터 하면 되는 거지. OK! 가자!



그렇게 경기지역의 전통 있는 어느 신문사에 입사지원서를 냈고, 서류전형 통과에 이어 논설위원 등과의 면접, 신문사 대표와의 면접 그렇게 2차, 3차 면접을 거쳐 나는 어쩌다 수석합격을 했다. (3명 밖에 뽑지 않았다)


나의 또 어떤 면이 그렇게 보였는지는 모르지만, "걸쭉한 여기자가 탄생하겠다"며 논설위원과 부장님들이 무척 흐뭇해했다고 훗날 정치부 부장님이 얘기해줬다. 그런데 내가 그런 그들의 마음과 희망에 찬물과 고춧가루를 확 끼얹었다. (I'm sorry.)



"제가요? 전 하지 않겠습니다."


이유는 이러했다. 나는 문화부 기자를 지원했고, 문화부 기자로 면접을 봤고, 문화부 기자로 합격을 했는데 출근 첫날, 난데없이 사회부 차장님이신지, 부장님이신지(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입사자 3명을 불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느니, 낮에는 국회를 돌고 밤에는 경찰서를 돌도록 하겠다."


소리여. 멘붕이 왔다. '왜? 내가 왜?'


"전, 문화부인데요?"


"신입기자에게 부서가 어딨나?" 버럭.


기분이 나빴다. 이유를 설명해줘도 할까 말까 생각할 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들 맘대로, 좋은 곳도 아니고 밤낮을 어딜 다니라고? 잠은? 밥은? 퇴근은? 왜? 그건 설명이 없어? 통과의례고, 관례라고 했다. 그게 더 싫었다.


"전,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이런 게 다 있냐'는 눈빛으로 벙 찌다가 길길이 날뛰는 차장인지, 부장인지를 두고,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아 꾹 참고 화장실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마음을 정리했다.


'그래, 아닌 건 아닌 거야.'


화장실에서 비장하게 다시 나와서 걸어가 '이제는 좀 반성했으려나'라는 듯 복잡한 표정을 한 그의 앞에 섰다.


"죄송하지만, 저와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는 이런 법이 어딨냐고 난리 났다. 벌써 오늘자 신문에 합격자, 입사자가 인쇄돼 나갔다고 했다. 솔직히 그때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그것 때문에 발목 잡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름이 신문에 찍혀 나간다고 허락을 받기는커녕 알려준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사람이 사정이 있으면 퇴사할 수도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무식하고 용감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딱히 잘못한 것은 없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한텀 봤기 때문인지, 나도 직장생활 (이후 기자생활을 조금 했다)을 이렇게 저렇게 해봐서인지 미안한 마음도, 무례한 부분이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는지는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지만(욕을 먹어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니까), '뻗치기'의 효과나 필요성도 일정 부분 필요하다는 것도 알겠다.


초반에 얼굴을 두껍게 하고, 마음에 굳은살을 만들어 단단하게 하고, 기자로서의 감각을 예민하게 날을 세우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초반에 호되게 고생하고 나면 그 후는 어떤 일도 무던하게 처리할 수 있을 테니. 흡사 호랑이가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트리는 것과 비슷하리라.


뭐, 이 또한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도 아니었고, 그냥 글을 쓰는 직업을 두루두루 찾아보니 거기까지 걸어 들어간 것이라 직업적 철학도 소신도 상식도 없을 때였다. 다시 한번 I'm sorry.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취직'을 하기 위해 입사했던 첫 회사를 퇴사하고, 이후 이런저런 면접을 보고 몇몇 회사를 입사하고 얼마 안 되어 퇴사하는 일이 빈번해졌을 즈음의 일이었다.


거창하게 성공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휩쓸리듯이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점차 뚜렷해졌고. 소박하지만 행복한 내 삶의 가치와 나만의 기준을 지키고 싶었다. 정말 생각이 너무 많고 지나치게 신중해졌을 즈음이었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무식했구나'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래,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겠어'란 마음은 기특하다 싶다. 넘치는 자기애와 합리화일지라도. 당시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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