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니?

때론 하는 것보다 '하지 않음'의 깊이가 더 있다.

by 천유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니?"

"야, 다 그래."

"며칠이라도 다녀보지, 또 괜찮을 수도 있잖아."


빈번한 면접과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던 시기에 정말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나름의 생각은 있었다. 금수저도 아니고 나이가 찰만큼 찬, 자기 앞가림을 해야 할 나이에 놀이터 다니듯 생각 없이 회사를 다니진 않았다. 내 딴에는 매일 밤 머리 터지는 고민과 손톱을 다 물어뜯고 싶은 불안과 긴장감을 안고 거듭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고, 퇴사였다.


절대 무턱대고 입사하고 그냥 별로인 거 같아 퇴사하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퇴사가 빈번해질수록 나는 나름의 기준과 가치가 있었고, 그게 점차 뚜렷해질수록 뭐든 쉽지 않았다. 아마 노총각, 노처녀가 결혼이 힘들어지는 이유와 비슷하리라.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순 없다'는 것과 '남들도 다 그래'라는 위로와 타협. 구직과 직장에 관련된 일이 아니라도 삶을 관통하는 인간적인 고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렇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는 것 같은 나도 문득문득 고민하고 자주 생각한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이렇게 가는 게 정말 최선일까?"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늘 그렇듯 정답은 없다. 정답이 없다는 게 정답이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분명히 해둘 것이 몇 가지 있다. 내가 다 잘하지 않았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깨달은 것이다. 물론 남들이 다 아는 것을 이제와 나만, 이제와 겨우 알게 된 것도 있지만, 남들은 그냥 이론으로 알고 있는 것을 몸으로 깨지며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 약간의 의의가 더 있다.


먼저, 기준이 있어야 한다. 회사를 다닌다는 것은 너무나 뻔하게도 내 생활의, 시간의 대부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밥은 먹고살아야 하니까 직장을 다닌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나 나름의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는 게 분명히 있어야 한다. 건 타협할 수도, 타협해서도 안된다.


돈키호테처럼 사는 것처럼 보이는 나에게도, 정말 일찍부터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 그래서 구직활동과 입사, 퇴사가 정말 쉽기도 했고 어렵기도 했다.


서류를 넣기 전에는 이에 부합하는 회사를 찾기 위한 과정이었고, 면접은 상대가 나를 판단하기 위함도 있지만, 나 역시 채용공고에서 제시한 내용들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애매한 부분은 직접 물어보고 확실히 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입사와 퇴사는 이 기준이 상이할 때 즉각 이뤄졌다.


예를 들면.


연봉의 경우, 구체적으로 채용공고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규에 따름, 0000만 원 이상 이 정도 언급이다. 나의 경우 입사 지원서에 희망연봉을 쓰라고 쓰여있지만, 다른 모든 조건이 마음에 드는 경우 '내규에 따름'이라고 자주 썼다. 연봉은 중요했지만 나에게 연봉은 최소한의 기준만 맞추면 되는 선이었지, 남들보다 많이 받고 싶을 만큼의 가치를 두지는 않았다. 또 많은 경우는 입사지원자에게 물어보긴 해도 대단한 경력자, 스카우트 수준이 아니고서야 '내규'가 있기에 내가 부르는 값이 그들에게 의미가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때문에 만의 하나의 경우 너무 많이 부르면 나를 면접에 부르지도 않겠구나라는 일종의 계산이 있었다. 회사가 마음에 드는 경우의 계산이다.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출근과 퇴근시간, 야근의 유무와 빈도, 강제성 그리고 회식, 휴가제도 등에 관한 것이었다. 회사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이기에 근무시간 외의 충분히 보장받고 싶었다.


첫 회사에서 너무 호되게 겪어서 생긴 독한 기준인지도 모르겠다. AE 직업의 특성상인지, 그 회사가 그런 것인지(요즘 분위기가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당시만 해도 그랬다) 퇴근을 못했다.


채용공고와 홈페이지에 쓰여있는 것은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었다. 하지만 오후 6시가 되어도 아무도 퇴근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조금 지나면 자연스럽게 뭘 먹을 것인지 저녁을 주문받았다. 저녁을 먹고 떠들고 나면(할 일이 있다면 빨리 먹고 일했으면 좋겠는데라는 조급함과 다른 그들의 속사정은 뒤를 이어 나온다) 7시 반이 됐고, 저녁을 먹었으니 9시는 돼야 퇴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분명히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왜 다들 퇴근을 안 할까' 정말 답답하고 궁금했다. 어느 날 선배의 컴퓨터를 보니 싸이월드가 켜져 있었다. 옆자리 선배도 마찬가지. 나름 친했던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왜 퇴근을 안 해요?"

"디자인팀이 안 가고 있는데 어떻게 퇴근하니?"


연관이 있는 듯 없는 듯하는 얘기지만, 의외로 디자인팀과 협업하는 모든 업종이 디자인팀 개발팀의 눈치를 많이 본다. 문제는 디자인팀, 개발팀에는 이상한 관행이 있다는 점이다.

밤에 일한다. 밤새워 일한다. 그러다 보니 낮에 졸린다. 쪽잠 자듯 잔다. 몽롱하다. 담배나 커피를 때린다. 거의 일을 안 한다. 밤이 되면 정신이 맑다. 일한다. 밤샌다. 그런데 디자인팀, 개발팀에 부탁할 일이 많은 부서는 혼자 일찍 퇴근하는 것처럼 보여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정작 AE는 광고주 미팅 등으로 낮에 일해야 하는데, 내가 속한 우리 팀 입장에서는 정말 일이 없는데도 다들 퇴근을 안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일이 있을 때는 더 큰 문제였다. 새벽 4시에 퇴근해서 총알택시를 타고, 공덕동에서 인천 집으로 가서 샤워만 하고 오전 9시에 출근하는 일이 빈번했다. 당시 너무 졸려서 화장실 변기 뚜껑을 엎고 자기도 했다.


그렇게 반년을 보내고 나자 사람이 조금씩 정신이 들면서 기준이 생기기 시작했다. 면접에 대놓고 물어봤다. 렇게 말하며 "무례할 수도 있지만, 솔직하게 터놓고 물어보고 알아야지 입사를 해서도 서로 탈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면접에 감점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게 두렵지는 않았다. 왜냐, 내가 겪은 바에 비하면 합리적인 야근이 있는 회사의 경우 흔쾌히 설명해줬고 이해가 가능한 수준이었으니까. 이를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회사는 뭔가 비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고, 어차피 합격해도 내가 다닐 수 없는 회사니까 당당하게, 독하게 질문했다.


"야근은 빈번한가요?"

"야근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야근을 강요하는 분위기인가요?"


야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 있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누구보다 마감을 열심히 하는 탓에 야근에 자신 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두 곳의 회사 중 한 곳 은 주 1회는 마감 탓에 새벽 2시 전후, 나머지 한 곳은 개강 마감이라고 해서 한 달에 한 번은 2일 새벽 출근, 밤 10시 퇴근이었다)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마감'처럼 명분이 있는 야근이어야 한다. 함께 하는 동료애, 좋다! 나도 좋아한다. 그렇지만 "고생이 많아"라고 어깨를 토닥여주며 내 일이 아니면 양해를 구하고 나는 칼퇴할 수 있어야 내 일에 집중하고 업무효율도 높아진다. 그것은 회사 분위기다. 나는 업무효율과 개인의 업무를 존중하는,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회사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 입사 전후 진위를 파악하기 노력했다.

내가 겪은 나는, 이 가치를 양보할 수 없고, 이것을 보장받지 못하면 결국 오래 아프다가 퇴사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초장에 분위기를 파악하고 결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은 회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빨리 회사의 방침과 방향이 맞는 사람을 찾고 결정해야 한다. 가스라이팅의 의도가 아니라면 다녀보지도 않고 퇴사하면 분위기만 흐트러지는 것 아니냐고 길길이 날 뛸일이 아니다. 다닐 생각이 없는 미꾸라지가 밥을 축내며 시간을 버티며 분위기를 흐리다 어차피 퇴사할 것을 생각하면 회사 입장에서도 아깝지만 빨리 정리하는 게 현명한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시간을 주는 것(투자)과 시간을 버리는 것(기회비용)은 다르다는 점, 입사(희망)자 입장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것과 내가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가치를 최대한 빨리, 명확하게 정리하고 판단해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최소한 정말 하기 싫은 건 피하고 살아야죠."


살아보니 그렇다. 정말. 세상사 만사가 그렇다.


시험문제를 풀 때도 정답을 알면 다행이지만. 정답을 모른다면 절대 답이 아닌 것부터 일단 제치고 보는 거다.


진짜 '지켜야 할 것' 하나, 정말 죽었다 깨도 '하기 싫은 것'하나는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이전 13화합격자의 출근 첫날 '퇴사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