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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윰 Oct 25. 2023

억울과 강박의 감옥에서 벗어나 <나>로 살아가기

나라도 날 사랑해야지 

글을 쓰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저번에는 스물여덟에 죽지 못한 자의 '발악'과 '치유'였다면, 이제는 나를 사랑하는 '연습'이다. 3n년 동안 그걸 참 못했는데, 이젠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 종류의 사랑은 '내'가 가장 잘 '나'에게 줄 수 있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생각해봤다. 요즈음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대체로 화가 날 때 무기력해지다가 '일을 벌이는 스타일'의 사람이다. 무기력의 끝에서 일을 벌이기 시작하면 내가 갖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일을 쳐낸 다음에 또 다시 나가 떨어진다. 


이번에 벌인 일들을 잠시 적어보겠다. 


1. 회사 다님(기본값: 8시간, 매일) 

2. 주2회 PT, 주2회 영어과외 (기본값, 매주) 

3. 주1회 살롱운영(영화모임, 12월까지) 

4. 매일 오전 스트레칭+영어공부(기본값) 

5. 매일 30분-1시간 글쓰기, 매주 1권 책 읽기(기본값) 

6. 매월 4회 작성하는 서평단, 비정기적인 서평단 활동(기본값) 

7. 매주 토요일마다 운영하는 스터디(독서-영어, 토론) 


상기와 같이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 2번에서 영어과외의 경우는 이번주를 마지막으로 잠시간 없어질 예정이며, PT는 11월까지 하고 개인운동 주 3회로 바뀔 예정이지만 나머지는 유지한 상태에서 추가된 일은 다음과 같다. 


1. 11월 1달 블로그 스터디(1일 1포스팅 쓰고 서로 피드백) 

2. 독서모임 1개(11월부터 월1회 수요일), 독서살롱 1개(11월부터 월 1회 수요일) 

3.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서평단 (책 읽고 리뷰 작성 등의 활동) 

4. 마케팅 사이트에서 운영하는 프로모션단(이건 연락 대기 중*) 

5. 공모전 3건 준비 작업(11월 마감, 12월 마감, 3월 마감) 


즉, 월에 3회씩 살롱을 운영하게 된다는 거다. 11월과 12월 2달간 3개를 운영하고, 그 다음부터 2월까지는 2개씩 운영할 예정이다. 이로써 기존에 하는 거에 5개가 더 추가돼서 12개다. 캘린더가 꽉 찼는데, 헬스장 이전 이슈로 담주 월-화에 스케줄이 비니까 또 뭔가를 채워 넣어야 할 거 같다는 강박증이 들더라. 


이 강박, 대체 어디서 온 걸까? 





01. 나는 완벽주의자다.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로 인해 성장했지만 그로 인해 많이 아팠다. 


02. 나는 프로계획러다. 

프로젝트든 일이든 하루 일과든 시작할 때 해야 할 일 목록을 꼭 적어두고 그대로 이행한다. 단기, 중기, 장기 프로젝트를 짜는 편이다. 그와 연결되어 '확인' 강박이 있는데 기본 3번 정도는 확인하고 크로스체크 한다. 


03.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나는 혼자 '온전하게' 다 해내는 사람이어야 하고, 나는 특별해야 한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한' 편이다. 회사 일이든 퍼스널 프로젝트든 계속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무언가 거창한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불안해서' 계속 움직이고 일을 벌리는 스타일이다. 


강박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어디서 온 건지는 몰랐다. 

인정욕구에서 왔다는 걸 알았다. 


어렸을 때 나는 아픈 동생과 어린 동생을 보살피며, 보호하는 방식으로 가족을 위해 나는 <혼자서 다 해내야 한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스스로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고, '완벽'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했다. 시작은 '따스한 마음'이었다. 엄마를 웃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동시에 충족 받지 못하는 인정욕, 사랑에 대한 욕구를 학교 내에서의 '인정'으로 채우고 싶어서였다. 아무것도 아닌 상태의 '어떠한 수식어도 붙지 않은' 그저 나라는 존재를 나는 스스로 사랑해 준 적이 없었다. 나는 1등을 했을 때 '봐줄 만한 사람'이었고, 미술 시간에 내 그림이 마음에 차지 않는 날엔 10시간이고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내 나이 11살 때의 일이었다. 





그래, 인정 받고 싶었다. 아무 조건 없이 '사랑' 받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 스스로를 한번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한 적 없었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 더 잘 하지 않으면 내 성에 차지 않았다. 


남들보다 많이 참았다. 

남들보다 예민한 편이었지만 (특히 어휘, 분위기, 무드에 민감하며 눈치가 빨랐다) 


화를 낸 적 없었고 남들이 싸움을 걸어와도 응하지 않았다. 극히 초민감한 사람이 누구보다 둔감하고 참을성 인내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왔을 때의 결과? 속이 문드러진다. 


요즈음 나의 '부정적' 감정의 근원에 뭐가 있나 봤더니 '억울함'이 있었다. 인정 받지 못해 억울했고, 인정의 대가로 몸을 갈아서 남 돈 벌어주고 내 돈은 못 벌고 아파 그만두는 바람에 커리어가 멸망해버린 게 억울했다. 성실의 대가가 고작 이정도 급의 돈을 벌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고, 실상 작가라는 꿈조차 이루지 못했다는 그 모든 생활이 억울했고 억울함의 화살은 곧 내게 향했다. 


내가 조금 더 영악했다면 

내가 조금 덜 참았다면 

내가 조금 더 싸웠다면 

내가 조금 더 건강했다면 

내가 조금 더 공부를 많이 했다면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을 거란 생각하면서 막막했다. 열심히 사는 건 질렸다. 특히나 '남의 사업'을 위해 내달리는 건 힘들었다. 매 순간 오너 마인드로 일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토사구팽 당하는 신세를 거듭 겪어왔기 때문이었다. 회사란 사회에서 성격 좋은 일잘러는 가장 최약자였다. 


일잘러일 거면 개썅마이웨이거나 성격이 조금 더 개인주의적이어야 했다. 그런 식으로 나의 모든 것을 부정했더니 기분이 좋아질 리가 있나... 계속 울적해지고, 무기력해지다가 무기력한 내 자신에 대해 화나서 또 다시 일을 벌인 것이다. 다행히, 이전에 벌이던 일보단 돈을 안 썼고 이전보단 스케일이 작아졌다. (다행한 일이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억울할 만하다, 나는 이제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참고 배려했고 내달렸는지는 오직 나만 아니까. 


고생이 많았다, 나는 이제야 나를 토닥여 준다. 


나는 사실 아무런 수식어 없어도 '나'라는 존재 자체로 사랑 받고 싶었다. 그런 종류의 사랑을 줄 수 있는 건 오직 '나'라는 걸 안다. 내가 가장 '나'를 잘 아니까. 


이제 나를 사랑해야지, 나라도 나를 알아봐 줘야지. 


그리고 또 하나, 불안한 강박으로 섣불리 내달리고 일을 벌리고 하는 것은 남들을 위해 갈리는 일일 뿐이다. 나는 남이 아닌,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이제는- 이제 아는 맛은 질렸다. 이제 아는 인정과 '갈리는 것'은 지긋지긋하다. 이제 나는 나를 배불리 먹여야 하겠다. 플랫폼과 회사에 떼주던 돈을 싹 다 내가 가져야겠다. 


그러기 위해 나는 이제 <내실>을 다져야 한다. 당장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막 성급해하지 말고, 찬찬히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한다. 하루에 10시간 넘게 글을 쓰고, 하고자 하는 일에 관한 책 10권 이상 읽지 않았다면 말하기 어려운 법이다. 물론- 지금 현재 현업이 있는 와중에 10시간 넘게 글쓰는 건 어려운 일이니 가능선상으로 낮춰본다. 


매일 글을 쓰고 읽는다. 


이 본질을 잊지 말자. 글 쓰는 나를, 나의 자아를 몹시 아껴주자. 나는 이제, 이제야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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