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캡틴, 마이 캡틴

나와 내 아이의 선생님 이야기

by 코알라

아이를 중학교에 보낼 무렵 아이와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중학교부터는 본격적으로 학업 성과가 중요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성적이 뛰어나거나 공부에 재능에 있는 아이였다면 선택은 어렵지 않았을 수 있다. 잘하는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뒷받침만 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보내는 순간 우리 아이는 공부에 재능이 있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학교, 고등학교로의 진학은 아이에게 어떤 선택이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가장 무게가 많이 실렸던 고민의 방향은 대안학교였는데 막상 대안학교를 선택하자니 망설여지는 게 많았다. 아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무척 신경 쓰는 편이었는데, 아이가 말하기를 아무리 좋은 대안학교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대안학교는 공부 못하고, 문제 많은 아이들이 선택하는 학교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크게 벗어난 삶을 두려워하던 아이는 대안학교를 가장 마지막 선택사항으로 두었다. 하지만 나는 대안학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에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는 터라 아이를 공교육시스템 속에서 키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다닐 학교였고, 아이의 선택이 더 중요했기에 차선책으로 고민했던 지역의 특성화중학교를 지원하기로 했다.


학교는 지역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어 나처럼 공교육에 회의를 갖고 있는 부모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그래도 선택을 망설이는 부모들을 위해 학교는 학부모 설명회를 개최하여 입학 전 부모들을 만나 학교 시스템과 교육과정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 아이들의 활동 사진과 영상, 그리고 학교 교육에 대한 브리핑 등으로 설명회는 꾸려졌었다. 조금 기대하고 참여했던 설명회는 매우 만족스러웠고 당장이라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사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교장선생님이었다. 학교가 펼치고 있는 교육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그날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것은 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각각이 가지고 있는 개성을 존중받고 있으며, 다양한 아이들의 요구에 맞게 청소년기 아이들의 성장을 돕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학교라는 것이었다. 앞으로 존재할지 안 할지 알 수 없는 직업으로 아이들의 학업을 내모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재를 양성하고, 특히 앞으로의 인류는 다시 유목민(국가적 틀에서 갇혀사는 것이 아닌)으로서 살아갈 것이라 말하며 노마드형 인재육성을 중점적으로 하겠다고 하는 것에도 굉장히 매료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교장선생님은 자신의 아이를 키우며 가지고 있던 교육적 원칙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자신은 아이들에게 단 두 가지만 빼고 모든 것을 해보도록 허락한다고 하셨다. 그 단 두 가지라는 것은 첫째, 다른 사람을 해치는 행위, 둘째, 자신을 해치는 행위였다. 매우 명료하였지만 참으로 중요한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교장선생님이 계시는 학교라면 아이를 믿고 맡기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교장선생님은 올해가 마지막 임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걱정하지 마시라는 당부도 남기셨는데 이 학교만의 교육시스템이 굉장히 잘 자리 잡혀 있어서 어떤 교장선생님이 와도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덧붙여 주셨다. 어쨌든 나와 아이는 이 학교를 선택했고, 다행히 아이는 뽑기운으로(입학은 추첨으로 결정된다.) 무사히 입학할 수 있었다.



아이가 입학하고 첫 학부모 총회를 하는 날이 되었다. 입학하기 전부터 걱정도 많고, 눈물을 펑펑 쏟을 정도로 학교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아이는 다행히 어려움 없이 학기초를 평안하게 보냈다. 하지만 아이가 새로운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담임선생님은 어떠신지, 무엇보다 새로 부임하신 교장선생님은 어떠신지 나로서는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매우 기다렸던 학부모 총회였고 그렇기에 궁금한 마음을 잔뜩 안고 퇴근 후 부리나케 학교로 달려갔다. 학교에 도착하니 총회 준비를 돕는 학생들은 매우 밝았고 만나는 학부모마다 인사도 잘했으며 선생님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내는 듯 보였다. 총회 장소에 도착해 보니 먼저 온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낯선 자리라 쭈뼛쭈뼛 사람들 틈을 헤집고 빈자리에 앉았다.


그때였다. 여러 선생님들을 둘러보던 중 나는 뜻하지 않은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되었다. 바로 내가 고등학교 시절, 다니던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었다. 목소리가 걸걸하시고 단조로운 데다가 약간 기력이 약해보이시는 편이어서 수업시간이 기대되거나 재밌었던 편은 아닌데, 가끔 수업 외 다른 이야기들을 재밌게 해 주셨고, 특히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셨던 선생님은 한창 정의에 눈뜨기 시작하는 고등학생들의 마음을 웅장하게 만들어주셨던 분이기도 하셨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에는 화순 운주사 와불 이야기가 있는데, 그 와불이 벌떡 일어나면 세상이 바뀔 거라며 당시 정권(노태우 정권 시절)에 대한 불순한 전복 의지를 암암리에 드러내시기도 하셨던 분이었다. 졸업 후 대학생이 되어 거리에서 최루탄 연기를 맞으며 살던 시절, 선생님을 같은 투쟁 현장에서 만나 매우 반갑게 인사를 했고, 이후 선생님과 따로 만나 술 한잔 나누기도 했다. 선생님은 전교조 활동을 계속하고 계셨고 교육 현장뿐만 아니라 투쟁이 필요한 곳마다 빠지지 않고 앞장서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후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사느라 선생님 소식을 못 듣고 살았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다니 놀랍고 믿기 힘든 우연이었다. 알고 보니 선생님은 이 학교의 새로운 공모제 교장선생님으로 오셨던 것이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총회가 끝나고 한달음에 선생님을 뵙고 다시 인사드렸다. 선생님도 제자의 딸이 다닌다는 사실에 무척 반가워하셨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인연에 신기해하며 앞으로 자주 뵐 것을 약속드렸다.

하지만 나는 약속처럼 자주 뵙지는 못했다. 핑계를 대자면 매우 바빴다. 직장생활에, 혼자서 아이를 키우느라 짬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스승의 날이 되면 전화라도 드리며 선생님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리고 선생님 덕분에 아이의 중학교 생활이 하나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아이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컸으며 힘들다던 친구관계도 잘 풀어나가며 즐겁게 중학교 시절을 마쳤다.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교장의 임기가 4년이라 선생님도 그 학교를 그만두고 지금은 대안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초청받으셔서 근무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달 전에는 선생님이 전교조 출신 선생님을 교육감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애쓰고 계셨었는데 그러느라 잠시 TV에 나오신 모양이었다. 그것을 본 딸아이가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왔다.


“엄마, 누군지 알겠어?”

“앗, 엄마 선생님이네~”

“내 선생님이기도 하잖아.”


'그렇구나.' 아이와 나는 같은 선생님을 두고 있었다. 부모와 자식이 한 선생님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니 무언가 울컥 올라왔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 힘든 시절에 나와 우리 아이는 훌륭한 선생님 한 분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이제 연세가 꽤 되셨음에도 교육 현장을 지키고 계셨다. 그리고 여전히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매진하시며 열심히 삶을 살고 계셨다. 나와 내 아이의 선생님이라는 사실이 굉장히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아직 건강하게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것에 감사하기도 했다.


아이의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자니 가장 먼저 선생님이 생각이 났다. 이제 술도 잘 마시는 성인이 된 딸아이와 같이 언제 선생님 찾아뵙고 좋은 음식을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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