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일
아이의 사춘기를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한...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한창 중학교를 어디로 갈 것인가로 고민이 많던 시절이었다. 아이 앞에는 선택지가 세 가지 정도 있었는데, 하나는 일반 중학교를 가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특성화중학교였으며, 남은 하나는 대안학교였다. 그 중 대안학교는 아이가 한창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신경 쓰던 시기라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가장 먼저 포기한 선택지였다. 결국 일반 중학교보다는 아이에게 좀 더 집중해줄 수 있는 특성화중학교를 선택하기로 하고 그 학교로의 지원을 마쳤다. 학교는 추첨제로 입학을 결정했고, 별도의 자기소개서 등의 제출 서류를 미리 보내고, 개별 부모, 학생, 교사 간 면담 과정을 거쳤다. 또 학교는 입학 전 지원한 모든 아이들이 모여서 미리 학교생활을 한나절 동안 체험해보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 낯선 환경을 미리 적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함께 학교를 다닐 친구들을 미리 만나보는 시간도 되어서 잘됐다 싶었다. 같이 지원한 초등학교 친구들도 몇 명 더 있어서 그날 학교를 갔다 온 뒤 아이는 조금 안심하는 듯 보였다.
그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일이 끝난 뒤 아이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히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중학교에 가서 친구를 잘 사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왠지 외톨이가 될 것 같아.”
“왜? 그날 다녀와서 재밌었다며.”
“재밌긴 했는데, 다른 애들은 서로 이야기도 잘하고 선생님이 하라는 것도 잘하는데, 나는 옆에서 그냥 보기만 하다가 왔어.”
“너는 지금도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고 잘 지내고 있잖아. 이 학교도 중간에 전학을 왔던 것이고. 엄마가 보기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충분히 잘할 것 같은데?”
“엄마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 그리고 이 초등학교에는 전학 오기 전부터 내가 원래 알았던 친구들이 더 많잖아. 중학교는 모르는 친구들이 더 많고. 모르는 아이들이랑 지내 본 경험이 없어서 나는 너무 무섭단 말이야.”
하더니 아이는 소리를 내서 울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당황했고 더 이상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는 아이를 달랠 수도 없어서 아이가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엄마가 해 주는 위로를 그대로 다 받지는 않는 것 같았다. 엄마가 해주는 말은 진짜가 아니라 그냥 자신을 위로해주는 말이라고만 생각하는 듯했다. 실제로 내가 객관적으로 해주는 칭찬들을 아이는 ‘엄마 딸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지’라고 치부해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더더욱 입에 발린 칭찬들은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랬다. 앞으로 잘할 거라고, 친구들이 널 좋아하게 될 거라고 무작정 힘이 되는 말들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럼 어떻게 할 거야?’, ‘그런 두려움이 들면 노력을 해야지.’라는 말들로 아이의 기를 죽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단지 공감뿐이었다.
“속상하겠네.”
그리고 아이가 내 앞에서 실컷 울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아이는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울었다. 그것도 대성통곡을 하며 ‘엉엉’ 울었다. 어쩌면 불안한 사춘기 시절을 시작하는 아이에게 울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던 건가 싶을 정도로 속 시원하게 울었다. 울음을 그치고 살짝 기운을 차린 아이에게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그 기분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해 주었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가끔 걱정이 되는 말들을 하긴 했지만, 나는 위로보다는 공감 작전으로 아이의 말에 대꾸해주었고 미리 걱정을 하느라 지치게 하기보다는 다른 생각들을 할 수 있도록 이야기 주제를 전환해주기도 했다.
어쨌든 아이는 운이 좋게도 먼저 ‘X’를 뽑아준 아이 덕에 그 학교에 입학했고, 중학교 3년을 다니고 졸업할 때까지 친구를 사귀지 못해 힘들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이 매우 즐거운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가끔 친구들 간에 다툼이 있기도 했고, 한창 뜨거운 시기를 사는 사춘기 시절 다른 아이들의 연애를 (실제로 자신은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봤음에도 불구하고) 상담해주기도 하면서 매우 적극적인 교우관계를 가지며 지냈다. 물론 아이는 관계에서 힘들어하고, 자신과 맞지 않는 아이로 인해 상처받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아이는 엄마에게 시시콜콜 다 이야기하며 자신의 생각을 전부 이야기했는데, 나는 그저 ‘그랬구나.’ 맞장구 쳐주거나, 아이를 따라 같이 화를 내주기도 하면서 소위 ‘리액션’을 담당해 주었다. 그러고 나면 아이는 조금 속이 시원해졌는지 자신의 방에 들어가 조용히 자신의 할 일을 했다. 가끔 아이를 속상하게 만드는 아이가 있으면 ‘진짜 안 되겠네. 집에 데꼬 와라. 확 혼내줘불랑게~’ 하는 적극적 호응을 해주었는데, 아이는 되려 ‘엄마, 왜 저래.’ 하며 정색하는 듯해도 한결 기분이 나아 지는 듯 보이기도 했다.
아이는 성장하는 동안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엄마에게 도움을 구하기보다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생기면 엄마에게 조언을 구할지언정 무조건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도 먼저 내 생각을 말해 흔한 어른들의 조언을 아이에게 섞어 말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아이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며 아이가 어디서든 자신의 편이 하나쯤은 있다는 것을 자신감으로 갖고 살길 바랐다. 어쩌면 질풍노도의 시기를 사는 사춘기 시절의 아이에게 가장 적절했던 방법이었던 것 같다. 아이는 어떤 말이든 엄마라면 통할 거라는 생각으로 소통을 이어나갔고 한창 비뚤어질 사춘기 시절을 비교적 평온하게 보냈다.
아이가 사춘기를 맞이하기 전 한창 마음의 준비를 할 무렵, 귀 막고, 입 막고, 눈감고 살리라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는데, 입은 막아도 귀는 열어둔 것이 우리 아이에게는 좋은 작전이었던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