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할 권리

by 코알라

아이는 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는 노래 부르는 일이었다. 잘 부르고 못 부르고에 연연해하지 않고 좋아하는 노래들을 찾아 듣고, 그것을 따라 부르며 조금씩 사춘기 여학생 모드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노래에 대한 열정은 장르를 가리지 않았는데, 처음엔 엄마가 부르고 듣던 노래들을 따라 부르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자신의 취향을 찾게 되었고 특이하게도 또래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게 인디 가수 계열의 노래들을 찾아서 많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집에선 아이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어쩌다 내가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결국 ‘노래 부르기 1시간 멈춤 카드’를 사용해야 했다. 아이의 사춘기 시절은 이렇게 하루 종일 끊이지 않는 아이의 노랫소리로 보통의 가정들과는 다른 차별화된 소음을 경험해야 했다.


그렇게 아이의 노랫소리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던 어느 날, 아이는 진지한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더니 어렵게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 블루투스 마이크를 사고 싶어요. 제가 모아놓은 돈으로 사면 안돼요?”

“블루투스 마이크는 뭐하게?”

“노래를 부르는데 그것이 꼭 필요해요. 오랫동안 생각했으니 사게 해 주세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이가 블루투스 마이크가 필요했던 이유는 녹음 기능이 되는 어플에 자신이 부른 노래를 녹음하기 위함이었다. 노래를 불러서 녹음을 한 후 어플에 그것을 올리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듣고 피드백을 해주는 사이트인데, 집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다 보니 자신의 노래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평가될지 점점 궁금해졌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노래를 불러서 녹음을 하자니 마이크가 꼭 필요했던 것이다. 듣고 보니 아이의 생각은 알겠지만 덥석 허락해주기엔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노래에만 몰두하고 있는 아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허락해주면 더 몰두해버릴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에 너무 몰두해 버리면 다른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산다는 것에 대해 너무 쉽게 허락을 해주면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원칙에서, 소비는 가장 필요한 마지막 순간에 선택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블루투스 마이크는 당장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엄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블루투스 마이크를 사면 네가 잘 사용하지 않을 것 같아.”

“하지만 지금 나는 그것이 필요해요. 내가 아직 사지도 않았는데 잘 사용할지 사용하지 않을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엄마는 너무 명확히 알겠어. 그것의 용도는 녹음할 때 쓰이는 것인데 지금은 흥미가 있어 몇 번 사용하겠지만 얼마 안 가서 흥미를 잃으면 구석에 처박혀서 쓰지도 않을 것 같거든.”

“나는 안 해봤으니까 잘 모르겠는데, 지금 나는 너무 사고 싶고 사더라도 내 돈으로 사는 거니까 허락해주면 안 돼요? 나는 꼭 옳은 선택만 해야 하는 거예요?”


그 순간 아이의 말에 명치를 맞은 듯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이가 너무 맞는 말을 해버렸던 것이다. 가끔 아이는 나보다 말을 잘하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나는 과거에 나의 선택이 틀린 경험을 많이 했다. 그런 틀린 경험은 아이가 똑같이 경험하기보다는 건너뛰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조언을 핑계로 아이에게 참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어른이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없고, 아이들 또한 그들의 실수를 딛고 성장할 기회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먼저 경험해보았다는 이유로 어른들은 어린 사람들의 생각을 틀리다 단정 짓고, 무시하기도 한다. 어른들의 생각이 무조건 맞을 수는 없는 것임에도 간혹 어린 사람들의 생각은 무조건 틀리다고 단정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어린 사람들의 생각이 틀릴 경우가 많다. 아직 경험이 적고, 세상에 대한 지혜가 넓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틀린 경험을 해 볼 기회를 충분히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단이 잘못되고, 하다가 실수하고, 서툴러서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충분한 경험을 갖게 되면 그것을 발판 삼아 다음엔 더욱 잘하고자 달라진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기회를 갖게 해 주는 것이 어른이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누려야 할 권리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아이의 말에 수긍하고 블루투스 마이크를 사도록 허락해 주었다. 자신의 돈을 자신이 알아서 쓰는 일은 사실 내가 무엇이라고 참견할 일이 애당초 아니었다. 며칠 후 금빛 반짝이는 블루투스 마이크는 반듯한 택배 상자에 실려 도착했다. 아이는 택배를 받아보고 매우 기뻐했다. 스스로 용돈을 모아 산 물건에 대해 매우 만족스럽기도 했을 것이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어 더욱 신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의 예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아이는 그것을 몇 번 사용하더니 언젠가부터는 그냥 아이방구석을 채우고 있는 다른 먼지들과 같은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는 내가 전략적으로 우위에 섰다. 잔소리 감 총알 한 발이 장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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