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매우 좋아한다. 요즘은 기름값이 비싸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매우 심사숙고하는 편인데, 그 전에는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들면 주저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해외여행도 마음먹는데 어려움은 없는 편이었지만 직업의 특성상 연차를 연이어 쓰기 어려웠고 그것 때문에 긴 시간 여행에 제약이 있어 해외여행은 실상 자주 다니지는 못했다. 모처럼 안식년을 맞이해 2주간의 쿠바 여행을 계획한 적이 있는데, 코로나라는 팬데믹의 장벽에 막혀 애써 예약해놓은 항공권도 환불받지 못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 어쨌든 내게는 일상에서의 충전과 재생의 기능을 여행이 담당하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이런 여행에 동행이 되어 주는 아이가 옆에 있어 여행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여행 계획을 짜는 동안 아이보다 내가 더 즐겁게 설렜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아이의 방학 기간에 여행을 가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았다. 어디든 사람이 많고, 성수기라서 무엇이든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은 움직이면 더워서 가장 좋은 피서지는 에어컨 바람 넉넉한 우리 집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아이와 여행 계획을 세울 땐 학교 일정 중 중간, 기말고사가 끝난 시점으로 잡았었다. 요즘은 가정 체험학습이라고 학교에 신청만 하면 아무 때나 여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그런 식으로 날짜를 잡았다.
아이와의 여행에는 원칙이 있었다. 추운 겨울은 사람도 겨울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먼 곳으로의 여행을 하지 않는다든가, 여행은 일상의 연장이라 여겨 나와 아이의 생활이 일상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루 흐름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한다든가, 아이의 나이에 맞게 여행의 목적을 갖는다 같은 원칙들 말이다.(어쩌면 눈치채실 분들이 있겠지만 나는 MBTI 분류상 철저한 ‘J’ 형 인간이다.) MP3 파일 형식의 음악은 뇌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는데 실제로 오랜 시간 그런 파일로 된 음악을 듣고 있으면 정신이 멍해지기도 해서 가능한 오전엔 음악을 듣지 않으려 했고, 음악을 듣게 되더라도 일정한 시간만 듣는다는 가 하는 원칙도 여행 원칙에 포함이 되어 있다. 그래서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는 정오가 어서 지나길 기다리기도 했었다.
여행을 가면 잠을 자기 위해 숙소를 정해야 하는데, 숙소의 형태도 참 다양했었다. 아이가 어릴 땐 안정적인 펜션에서 자주 잤다. 집과 다른 고급스러운 펜션을 아이가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조금 크면서 친척집에 가기도 하고,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거나 여러 사람이 묵는 도미토리에서 자기도 했다. 아이는 어릴 때 약간 소심한 편이었는데, 여러 사람과 함께 방을 쓰는 것을 불편해했다. 하지만 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심지어 밤늦게 술자리도 같이 하는 게 좋았다. 여행의 이유가 좋은 숙소를 경험하기 위함이 아니었고 숙소의 목적은 잠시 씻고, 자는 용도만 충족하면 되었기에 비싼 숙소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항상 끌려서 아이의 불만은 살짝 모른 척하기도 했다. 간혹 아이의 불편을 고려해 게스트하우스도 2인실을 예약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숙소는 여행에서 가장 고려하지 않는 일이었다. 아이가 어릴 땐 체험 위주의 여행이 이루어졌다가 조금씩 크면서 아이와의 정서적 교감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을 계획했는데, 그럴 땐 제법 먼 거리의 여행이 필요해서 강원도나 제주도를 여행지로 삼기도 했다.
아이와의 여행 중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했던 여행도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안산에서 열리는 거리극 축제였다. 우연히 접한 거리극 축제 포스터를 보고 첫 여행을 시작했던 그날, 광장 전체를 무대로 열리는 큰 규모의 전야제에 반해서 아이와 매년 가자고 약속했다가 코로나로 아예 행사가 열리지 못하기 전까지는 꾸준히 갔던 곳이다. 거리극 축제는 전야제로 개막식을 하고 다음날부터 광장 주변 예닐곱 개의 사이트에서 작은 공연들을 진행했다. 시간별로 공연을 하는 순서가 있어 보고 싶은 공연을 하루 종일 찾아다니면서 보고 다녔다. 공연은 마술이나, 공기방울 묘기, 저글링 등의 이벤트 같은 공연도 있었지만 햄릿의 희곡이나 전통 마당극까지 볼 수도 있어서 생각보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매력 있는 축제였다. 거리극 축제는 2박 3일의 일정으로 진행이 되는데 마땅한 숙소가 없어 근처 모텔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주로 아이와 차 안에서 숙박을 해결했다. 이를테면 아이와 차박을 했던 것인데, 지금이야 차박은 대중적인 여행 형태이지만 그때 당시엔 흔치 않은 일들이라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며 작은 일탈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차를 정박한 근처엔 공원이 가까워 우리는 공원 화장실에서 씻고, 차 안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다 잠이 들었다. 올해 다시 거리극 축제가 열리기 시작한 것 같은데 이제는 아이가 커서 자신의 일정이 바빠 언제 다시 같이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와의 여행이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여행 시작 전부터 아이와의 신경전으로 투닥투닥 싸운 적도 많았다. 하지만 둘이 하는 여행인데 싸워서 분하다고 서로 대화도 없이 여행을 하면 서로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가 다 풀리지 않아도 얼른 화해를 하는 편이 좋다. 그러고 나면 싸웠던 일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기도 하고, 또 그로 인해 감정적 유대감이 더욱 생기기도 했다. 서울(우린 전라도 광주에 산다.), 인천, 안산, 강릉, 대관령, 인제, 속초, 경주, 포항, 제천, 부안, 부산, 제주, 그리고 전라도 구석구석 안 다녀본 곳 없이 아이와 다녔던 모든 곳들이 생각난다. 대관령 삼양목장을 가기 전 근처 숲에서 차박을 하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냇가에서 같이 누룽지를 끓여 먹던 기억이 또 새롭기도 하다.
아이가 다 커서 독립한 요즘 나는 혼자서 여행하는 일이 많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고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해서 썩 불편하지는 않다. 그러나 가끔 좋은 여행지의 풍경이나, 맛있는 먹거리들을 발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각이 난다. 또 가고 싶은 여행지를 만나게 되면 아이를 떠올리며 같이 갈 계획을 세우게 된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 계획에 아이가 들어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일들 속에 여행이 계획되는 것인지 아직 잘은 모르겠다. 혼자서 하는 일상적인 여행지에서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나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딸이 생각난다. 하지만 아이는 성장했고, 어쩌면 친구, 어쩌면 애인과 함께 여행을 계획하지 않겠는가. 내 계획엔 아직도 동행으로 아이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 내 계획은 언제쯤 실행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딸보다는 내가 홀로서기가 필요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