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집에 찾아온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해외여행 관련한 영상물을 같이 보게 되었다. 그날 소개한 곳은 호주의 한 동물원이었는데 자연 그대로 동물들의 일상을 해치지 않고 관람객이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동물원이었다. 보는 내내 둘 다 행복해하며 우리가 함께 해외여행을 한다면 그곳을 꼭 함께 가자고 약속까지 했다.
나와 내 딸은 비슷한 관심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동물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동물이든 편견 없이 좋아했다. 그것이 병균을 옮기는 쥐든, 독을 품은 뱀이든 상관이 없었다. 어쩌면 나를 닮은 아이의 모습 중 하나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어릴 적부터 동물들과 함께 했던 경험들이 쌓여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아이는 형제 없이 혼자 자랐지만 다양한 동물 친구들과 함께 지내서 어쩌면 덜 외로웠을 수도 있겠다.
육상 플라나리아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아침. 매일 아침마다 8시가 다 되도록 겨우 깨워야 일어나던 아이가 그날따라 아침 6시부터 혼자 일어나 매우 부산스러웠다. 지렁이가 많이 숨어있는 땅을 찾아 이곳저곳을 삽으로 파고 다니다 방에 들어와서는 모기가 많다느니, 지렁이가 중간에 잘렸다느니 하며 옆에서 한참을 떠들어댔다. 조금 늦은 출근이라 살짝 게으름을 피우고 있던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덜 깬 눈으로 한참 동안 아이를 지켜보았다.
전날 밤 아이는 화장실 타일 벽에서 희한한 생명체를 발견했다. 사진을 찍고, 친구들에게 사진을 공유하는 와중에 알게 된 이름이 ‘육상 플라나리아’였다. 생긴 게 너무 징그럽다며 보자마자 비명부터 지르던 아이가 그 녀석의 이름을 알게 되더니 갑자기 애정이 생겼는지 자신이 길러보고 싶단다. 그러고는 잠들기 전까지 플라스틱 통을 구하고, 산소공급을 한다고 송곳으로 여러 개의 구멍을 뚫고, 혹시 축축한 곳에서 사는 아이일 거라며 말라죽지 않게 물도 살짝 넣어주면서 한참을 수선을 피우다 잠이 들었다. 무엇을 키우는 일의 첫 번째 할 일은 먹이를 주는 것이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육상 플라나리아의 먹이가 지렁이나 민달팽이라는 것을 알아내고는 아침 댓바람부터 부지런을 떨고 있었던 것이 그날 아침 소동의 이유다. 결국 두 시간여를 먹이를 잡고, 먹는 걸 지켜보다가 결국 엄마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학교도 가야 하고 아침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겨우 육상 플라나리아와 떨어져 기분 좋게 아침밥 한 숟갈 호로록 먹고는 학교에 등교했다.
흔하디 흔한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도 아니고, 예쁘게 생긴 달팽이도 아닌 그저 징그럽게 생긴 육상 플라나리아를 잡아놓고 키우겠다고 수선을 피우는 아이가 참으로 엉뚱해 웃음이 스멀스멀 나왔다. 평소엔 징그럽다고 질색을 하던 지렁이를 그저 육상 플라나리아를 잘 살려보겠다고 잡고 있는 모습이며 또 그렇게 한참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던 거다.
이제는 할배냥 ‘무무’
아이가 다섯 살 무렵이었다. 내가 다니던 사무실 한편에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아침에 출근을 해서 일을 하기 시작하는데 고양이 울음소리가 계속 났던 것이다. 소리의 출처를 찾아 구석구석 뒤지다 보니 커다란 박스 안에서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를 발견했다.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고 주변에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계속 울고 있는 고양이가 너무 짠하고, 귀여워서 조금 따뜻한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왔는데 그것이 사실은 새끼 고양이들에게는 해서는 안될 행동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길고양이는 새끼에게서 사람 냄새가 나면 돌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던 것이다. 아무래도 엄마젖이 필요한 새끼들이라 다시 어미가 돌보도록 제자리에 두었으나 결국 어미는 나타나지 않았고, 새끼들은 추운 밤공기에 그만 죽고 말았다. 그나마 겨우 숨이 붙어있는 한 녀석을 얼른 집으로 데리고 와 따뜻하게 해 주고, 분유도 사서 먹였다. 그렇게 해서 그 아이는 다시 살아나 집사들의 언어를 빌려 매우 '똥꼬발랄'하게 자랐다. 하지만 그땐 아직 아이도 어렸고 반려동물을 키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래서 우리는 시댁이 있는 시골로 보내서 키우기로 했다. 하지만 야생의 환경에서 적응해야 해서인지, 아니면 어릴 적 겨우 살아나 워낙 약한 아이여서인지 3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 아이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첫 고양이와의 인연이 그렇게 끝나자 자연스럽게 다음에 반려동물을 키울 기회가 생기면 꼭 고양이를 들여야겠다 마음먹었다. 첫 번째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 아이와 함께 했던 짧은 시간 동안 고양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퐁당 빠져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이가 집에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옆에 있어 줄 반려동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드디어 고양이를 분양받았다. 꽤 신중하게 고민한 후 내린 결정이었는데 고양이를 분양하기 전 아이와 반려동물과 함께 하기 위한 자세와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어야만 했다. 아이가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먼저 갖게 해야 했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나이가 되길 기다린 것도 있었다. 그리고 어쨌든 사람보다는 수명이 짧은 그들이기에 나중에 먼저 가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여야만 했다.
처음 분양받던 날 만났던 순간이 기억이 난다. 노란 코숏(코리안 숏헤어)에 길고양이로, 태어난 지 5개월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고양이 카페를 통해 분양받고 처음부터 불려졌을 ‘무무’라는 이름을 애써 바꾸지 않고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데 그 세월이 어느덧 14년째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어서 하루 종일 잠자는 일이 전부인 아이지만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깊어져 잠잘 때 꼭 옆에서 서로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자야 잠이 잘 온다.
사라진 거북이
사실 고양이보다 먼저 입양한 아이는 거북이였다. 집에서 키울 수 있는 반려동물로 털도 없고, 산책도 필요 없었으며, 굳이 같이 놀아주지 않아도 되는 난이도가 매우 낮은 반려동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마트 수족관에 엄지 손가락 정도의 크기의 아이가 꼬물꼬물 움직이는 걸 보고 반해 아이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데려왔는데 별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사료를 받아먹고 물속에서 꼬물꼬물 헤엄을 치는 것만 봐도 어쩜 그렇게 사랑스러운지 모를 정도였다. 등껍질에 이끼가 끼면 칫솔로 박박 문질러 닦아주기도 하고, 가끔 고기반찬을 할 때 거북이 간식용으로 조금 떼어주기도 했는데 그걸 먹겠다고 고개를 있는 대로 빼내서 낚아채는 모습도 그 아이를 키우는 기쁨의 한 부분이었다. 시골로 이사를 가서도 키웠는데 수조가 조금 낮았던 탓에 몸집이 커진 아이가 하루는 탈출을 해서 사라져 버렸다. 온 집안을 구석구석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던 그 녀석은 1년 후 마당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더 커진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너무 반갑긴 했는데 이미 세상의 갖은 풍파에 찌들어 생명을 마감하기 전이었던 상태였고, 정성을 다해 돌봐주긴 했지만 아이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우리랑 만나서 반가웠다는 마지막 인사를 하느라 나타난 건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마당 구석 볕 잘 드는 곳에 그 아이를 묻어주었다.
호랑이 무늬 ‘깜순이’
시골로 이사를 가고 첫 번째 주말이 되던 날은 근처 5일장과 마침 날짜가 맞아 우리는 즐겁게 장구경에 나섰다. 사실 목적이 있는 방문이었는데 그것은 마당을 지켜 줄 강아지를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마침 장 한쪽 구석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강아지들이 낯선 사람들이 지나다녀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귀여운 자태를 뽐내며 꼬리를 살랑대고 있었다. 그중 우리의 시선을 잡은 아이는 얼룩덜룩한 무늬가 살짝 호랑이를 생각나게 할 만큼 멋진 아이였는데 고민할 이유 없이 냉큼 그 녀석을 안아 데리고 왔다. 작명의 기회를 아이에게 주었고 아이는 강아지를 깜순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깜순이는 생각보다 성장이 빨랐다. 잡종이었던 깜순이는 귀여웠던 어린 시절을 짧게 마치고 중대형견으로 성장했다. 먹성이 좋아서 아프지도 않고 건강하게 잘 컸는데 안타깝게도 이 녀석은 우리보다 힘이 셌다. 그러한 이유로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평화로운 저녁시간을 기대했던 우리는 몇 번 산책을 해보지도 못하고 그 꿈을 접어야 했다. 지금처럼 강형욱 아저씨만 있었더라도 제멋대로인 강아지를 다루는 법을 배우기라도 했을 텐데 개를 키워본 경험이 없던 우리는 산책을 나가면 대책 없이 힘센 깜순이에게 끌려다니기만 했다. 그래도 계속 개를 묶어두자니 짠해서 목줄을 한 번씩 풀어줬는데 그때마다 밭을 헤집어 놓거나 집을 탈출하고, 심지어 집에서 키우던 닭을 물어 죽이기도 해서 그 후론 함부로 풀어놓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깜순이를 매우 사랑했다. 시골에서 이사 나오는 날 깜순이와 이별을 하는 데 매우 속상해하고 가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언젠간 다시 시골에 들어가 살 계획이 있는데, 그때가 되면 다시 강아지를 데려와 그때보다는 더 잘 키울 거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
우리 집 닭들은 탈출의 귀재였다. 좁은 틈 하나 허투루 보지 않고 고개만 빼내면 어디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심지어 날아다니는 능력까지 갖추어 비바람에 닭장의 한쪽 구석이 조금 낮아진 순간을 놓치지 않고 푸드덕 날아올라 닭장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닭들에게 매우 쾌적한 살 곳을 제공했다고 자신하는 편이었다. 닭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닭장은 항상 넓게 지었다. 하지만 닭들은 닭장에 안주하지 않았다. 닭장 너머 널따란 텃밭의 푸성귀가 항상 탐이 났던 것인지 매번 탈출을 감행했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닭들을 잡아서 닭장에 다시 가두는 일상을 반복했다.
닭은 매우 이로운 동물이었다. 텃밭에 벌레 퇴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닭들은 노린재를 포함한 다양한 곤충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먹는 킬러들이었다. 시골에 살면 음식물 쓰레기차가 오지 않아 그것 또한 꽤 성가신 일이었는데 닭은 그런 고민도 해결해주었다. 그 대신에 간이 되었거나 상한 음식은 주지 않고 채소나 과일의 껍질, 조금 시든 이파리들 위주로 주었다. 그중 가장 좋았던 건 여름에 먹기 부담스러운 수박도 닭들 덕분에 음식쓰레기 걱정 없이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닭들을 키우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다행히 근처 가톨릭농민회 회원분을 알게 돼 토종닭을 분양받을 수 있었다. 중병아리 수컷 한 마리와 암컷 다섯 마리를 데리고 와서 키우기 시작했는 어려서 들이다 보니 첫 달걀을 얻기까지 기다림은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그렇게 얻은 달걀이어서인지 그들이 죽기 전까지 얻어먹었던 달걀은 매 순간 고맙고 귀했다. 그래서 먹이도 신경 써서 좋은 것들을 먹였다. 가끔 집안 구석 습한 곳에 웅크리다 튀어나온 지네들을 잡아서 닭들에게 먹이기도 하고, 동네 방앗간에서 꼬박꼬박 쌀겨를 얻어다 먹이기도 하면서 매우 애지중지 키웠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키우는 닭을 보며 언제 잡아먹을 거냐고 항상 물어봤지만 우리는 잡아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집 닭은 모두 병이 들어 죽거나, 다쳐서 죽거나 우리 집 깜순이한테 잡아먹히거나 하면서 죽어갔는데 죽은 아이들은 모두 마당에 묻어주었다. 닭고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던 우리는 닭을 키우는 동안 치킨은 거의 사 먹지 않았다. 벌레를 쫓느라 고개를 앞뒤로 끄덕이며 뛰어가던 모습, 마른 흙에 온 몸을 굴려가며 목욕하는 모습, 수탉의 근엄한 새벽 울음이나 암탉이 알을 낳았다며 알림을 해주던 울음까지 그리울 정도로 우리는 닭에 진심이었다.
박 씨는 안 물어다 주는 제비
시골에 살면서 우리 집엔 매년 제비가 왔다. 처음 살던 집이 계약기간이 끝나 두 번째 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 집에도 제비가 찾아와 집을 지어서 아무래도 우리가 동물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게 동물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나 보다며 주변에 자랑 아닌 자랑을 하기도 했다. 3월 말쯤 날이 조금씩 따뜻해지고 논에 물을 대놓아서 집을 지을 찐득한 뻘이 가득한 계절이 되면 제비들은 집을 짓기 시작한다. 부지런히 짚과 진흙을 번갈아 물어와 꼼꼼히 한층 한층 쌓아가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집을 짓는 본능을 가지고 태어날 수 있는지 신기해하며 한없이 지켜보기도 했다. 집이 얼추 완성이 되고 다 마르면 우리도 모르는 새 알을 까고 하루 종일 어미가 꼼짝 않고 있는 모습부터 어느 순간 소란스러워지고 제비 어미와 수컷이 번갈아 벌레를 물어다 새끼들 입에 넣어주느라 바삐 들락거리고, 그 와중에 새끼들이 똥을 싸면 부리로 그것을 물어 멀리 갖다 버리는 것까지 꼼꼼히 지켜보고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집이 넘치도록 새끼들이 자라서 이소 할 순간을 맞이하고 집 밖이 소란스러워 내다보면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지지배배, 지지배배’ 끊임없이 지저귀고 있는 녀석들을 보게 되기도 했다. 제비와 같이 사는 일은 제비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뿌듯한 경험을 갖게도 되지만 녀석들의 분비물을 매일 치워야 하는 번거로움도 같이 따라온다. 어느 해는 툇마루 위에 집을 지어놓아서 매일 툇마루를 치워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괜히 새끼들에게 너희들은 내년에 오지 마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리운 왕관앵무
어릴 때부터 엄마와 함께 동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커온 아이는 어떤 동물도 편견 없이 사랑할 줄 아는 아이가 되어갔다. 시골집이라 가끔 쥐가 나타나기도 했는데 대부분 집에서 쥐를 만나면 도망가기 바빴을 테지만 우린 쥐의 까만 눈동자를 마주치며 귀엽다 탄성을 지르기도 할 만큼 모든 동물들을 좋아했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 스스로 맡은 일은 학교에서 키우는 왕관앵무를 돌보는 일이었다. 1학년 때부터 돌보기 시작한 앵무를 3학년 졸업할 때까지 소홀히 하지 않고 잘 돌봤다. 방학이 되면 혹시라도 앵무가 잘 자라고 있을까 걱정이 되어 엄마를 대동해 학교에 들렀다 오기도 했다.
그렇게 정성스레 키우던 앵무가 어느 날 눈이 조금씩 부어오르기 시작했었나 보다. 처음엔 금방 없어지겠지 했다가 점점 커지게 되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선생님께 이야기하니 앵무새를 병원에 데려갈 예산이 없어 별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 아이는 며칠을 걱정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고민을 내게 얘기했고 자신이 모아놓은 용돈을 앵무새의 수술에 쓰겠다며 엄마의 허락을 바랐다. 그때 나는 선뜻 허락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앵무새는 우리가 키우는 새가 아니었기에 굳이 우리가 책임질 이유가 없었고, 수술을 한다고 호전될 수 있음을 장담할 수 없었으며 수술 비용도 아이가 감당하기엔 굉장히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소원은 간절했고 아이 편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 허락한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승낙해주었다. 다행히 학교에서도 아이의 선택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앵무를 데려와 새를 수술할 수 있는 전문병원을 알아보고, 수술을 하는 동안 새가 괴로워하는 것을 같이 울면서 지켜보며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다행히도 앵무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2주간 우리 집에서 잘 지내다 학교로 다시 돌아갔다. 단 2주뿐이었지만 우리는 왕관앵무와 꽤 정이 들어버렸다. 새장이 없어도 어디로 날아가지 않고(물론 윙컷이 되었었겠지만) 우리가 손을 내밀면 손 위로, 어깨에 올려주면 어깨 위로 올라와 동물과 소통하는 기쁨도 갖게 되었다. 새와 고양이는 공존하기 힘든 관계로 수술 부위가 회복되자마자 학교로 돌아가야 했지만 나는 다시 새를 키울 수 있다면 왕관앵무를 꼭 키워야겠다고 결심할 만큼 그 녀석 또한 매우 사랑했다. 그렇게 수술한 녀석이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잘 버티고 살았던 걸로 기억한다.
시골에서 이사 나오고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던 어느 날이 생각난다. 내가 1박 2일의 연수가 있어 아이 혼자 하룻밤을 지내야 했던 날이 있었다. 그날 밤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전화기 너머 아이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안 그래도 혼자 남겨진 첫 경험이었는데 걱정하던 차에 울고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심장이 덜컹했다. 애써 평정심을 찾고 조용히 달래 가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집 근처에 살던 동네 길고양이들이 영역싸움을 하느라 자기들끼리 앙칼지게 괴성을 지르는 것을 아이는 혹시라도 다친 아이가 있을까 봐 나가서 고양이들을 찾아다니다 한 마리도 찾지 못하고 고양이들이 불쌍한 마음에 눈물이 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걱정스러운 일들이 아니어서 일단 한숨 쓸어내리며 아이를 잘 달래주고 전화를 끊었는데, 끊고 나서도 아이의 마음이 귀하고 사랑스러워 한참 동안 머릿속에서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아이와 살며 지금껏 여러 다양한 동물들을 만났고 그러다 보니 그들과 얽힌 일화들은 이 외에도 참 많은데 이렇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참으로 가슴 따뜻해지는 사연들이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는 동물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다정하고 따뜻했다. 뿐만 아니라 어느덧 마스크 줄에 고통받는 거북이 이야기에 속상해하고, 쓰레기를 먹고사는 해양 동물들을 걱정하며 환경을 위한 실천을 고민하는 성인이 되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일은 사람과 사람이 사는 세상을 따뜻하게 품어내는 일임을 아이의 성장을 통해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시선을 아이에게 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