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콩!

by 코알라

“엄마, 나도 친구들한테 환영받고 싶어. 다음 모임엔 조금 늦게 참석하면 안 돼요?”


1박 2일 모임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불현듯 꺼낸 말이다. 아이의 뜬금없는 말에 어이가 없어 다시 되물어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친구들이 너는 환영 안 해줬어?”

“그런 건 아닌데, 나만 특별히 더 환영해줬으면 좋겠어. 어제 OO이처럼.”


차마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못한 진심을 엄마에게 털어놔줘서 고맙긴 한데, 참으로 아이의 바람이 순진하고, 철이 없다. 하지만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게 솔직한 아이가 나한테는 오히려 다행스럽다. 말 못 할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사는 것보다 엄마에게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편이 아이와 소통하는 데 훨씬 나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아이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모임 속에서 풀지 못한 속상한 감정들을 다 받아주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오래된 모임이 하나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절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과 그 가족들의 모임이다. 일명 ‘하늘의 전설’이다. 졸업반 당시 소속됐던 반 이름을 따서 그렇게 지었다. 그들과는 광주에서 유일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들고, 꾸리는 일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어서 관계도 매우 끈끈했다. 그래서 그런 관계가 졸업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길 원했다. 다행히 모두 한마음이었는지 지금까지 그 만남은 계속되고 있다. 첫 모임의 시작은 아이들과의 졸업여행이었는데 앞으로 함께 쭉 모임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모임의 이름이 필요했었다. 재미있는 이름들이 많이 나왔는데 장난처럼 던졌던 이름 하나가 '하늘의 전설'이었다. 그렇게 지어진 이름이 이후에 어린이집을 졸업하는 모든 가족들에게 전설인 듯 모범처럼 따라 하는 모임의 본보기가 되어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이어가고 있는 모임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겐 어린 시절의 특별한 기억들을 함께 공유하는 친구, 그리고 어쩌면 평생을 힘이 되어 줄 친구를 얻게 해 준 소중한 모임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마을 전체의 어른이 필요하다는데, 꾸준히 모임을 가지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든든한 조력자로, 편한 어른으로 아이들과 항상 함께 했고 그런 어른들을 보며 자라서인지 아이들은 이젠 조금은 자랑스럽고, 때론 대견한 멋진 성인으로 잘 자라주었다. 졸업 이후 매년 계절별로 1박 2일의 여행을 함께 다녔고, 그 모임이 10년이 넘었으니 아이, 어른 모두가 참으로 끈끈한 관계들이다.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모두 함께 모이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코로나 이후 모두 함께 모이는 것이 썩 어려워져(모든 가족이 모이면 기본 3,40명은 족히 되는 모임이었다.) 요즘은 1년에 한 번 볼까 말 까다. 그럼에도 그들은 내게 특별한 사람들이며 지금도 때로는 개별적인 만남을 갖기도 하며 아직 모두가 돈독한 우정을 유지 중이다.


모임을 하는 날은 광주에서 1~2시간 정도 떨어진 지역의 숙소를 잡아 각자의 일정에 맞춰 일찍 오는 집, 늦게 오는 집으로 나눠져 들쑥날쑥 오기는 했는데 일단 모이면 쌓인 이야기들을 하느라 – 주로 아이들 크는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 밤을 새워 술을 마시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밤을 새워 놀기도 했다. 그렇게 모이는 과정에서 먼저 온 아이들은 그들끼리 어울려 놀고 이야기를 나누다 늦게 오는 아이들을 보면 매우 반가워했다. 특별히 '왜 이렇게 늦었냐'느니, '많이 컸다'느니 하는 질문 폭탄을 던지기도 했다. 모든 아이들의 관심을 이렇게 한 몸에 받으니 딸아이는 가끔 그게 부러웠던 모양이다. 자신도 이따금씩 친구들의 과분한 환대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날따라 났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딸아이가 꺼낸 말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이는 친구들과의 어울림에서 조금 소극적인 아이다. 이야기의 주제를 주도하고 이끌어가기보다는 아이들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동조해주는 역할을 하는 편이었다. 간혹 그런 아이들 틈에 끼어 자신은 인기가 없는 아이라고 느낄 때마다 스스로 속상해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가지고 나가지 못해 주눅 들어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쩌면 가끔씩 친구들 안에서 그런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소심하고 관계에 있어서 소극적인 것은 아이 스스로에게도 힘든 일이었지만 엄마인 나에게도 조금 속상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이는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 사람들 틈에서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조용히 무리 속에서 유별나지 않게 동참하는 것을 선호했다. 어느 날인가 함께 길을 가다가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길래 무심결에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댔는데 아이가 질겁을 하며 사람들이 쳐다본다고 나를 만류한 적도 있었다. 나와는 참 달랐다.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어떤 대화든 어렵지 않았고, 낯선 사람과의 일대일 만남에도 주저하거나 힘들어 하지도 않았다. 지금의 나로서는 아이의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모습을 적극 공감해주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다시 생각들을 더듬어보니 잠시 잊고 살았던 내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다. 난 언제부터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어렵지 않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을까. 나 또한 처음부터 모든 관계가 쉬웠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용하고, 소심하며, 먼저 나서는 일 없이 지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3살이나 어린 동생 친구들한테도 쩔쩔매고 말 한마디 하지 못했던 것 하며, (내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동글동글 통통한 외모 덕에 친구들이 귀엽다고 잘 챙겨주기는 했어도 그렇다고 내가 스스로 친구들을 먼저 만나고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했던 적은 없었다. 그런 성격을 고쳐야겠다고 특별히 마음먹은 적도 없었다. 그런 성격이 딱히 불편한 것도 아니니 그렇게 쭉 살아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소심한 내 성격을 고쳐야겠다 마음을 먹게 된 순간이 찾아왔다. 중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그날 엄마는 큰딸의 중학교 졸업식을 오랫동안 남기고 싶은 마음에 그 당시 가난한 집안 형편상 절대 가질 수 없었던 카메라를 주변에 수소문해서 애써 빌려오셨다. 기특한 큰딸의 학교생활은 어땠을지, 친구들은 어떨지 기록에 남겨두고 싶으셨을 텐데 난 그날 엄마에게 그런 기특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난 도저히 친구들에게 같이 사진 찍자고 이야기할 용기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조차 같이 사진 찍자고 이야기를 하지 못할 만큼 매우 소심한 아이였다. 친구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면 그 틈에 끼어 몇 장 찍기는 했으나 나는 엄마가 기대했던 모습을 연출하지 못했고, 조금 실망하신 엄마의 뒷모습을 미안하게 바라보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모습은 가슴 한켠이 자꾸 찡해져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랫동안 했다. 3년 후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 되었을 때 내 주변엔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나의 바람대로 나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쩌면 이미 내면에 밝은 기질이 있었겠지만 그것이 발현되면서 매우 화려한 고교시절을 보냈다. 모든 것에는 어둠과 밝음의 양면이 존재하듯 꼭 좋았던 것만도 아니었는데, 조용하고 소심했던 중학교 시절은 그나마 상위권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달라지자고 마음먹은 후 발랄하고 활동적인 고교생활을 하다 보니 좋은 성적을 유지하기는 매우 힘들었다. 성격과 성적을 바꿨다고나 할까.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공부만 하는 고교시절은 아마 재미가 하나도 없었을 거다. 그렇게 천방지축인 고교시절을 보냈어도 나는 지금 굶지 않고 잘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어릴 적 생각이 떠오르자 아이에게 들었던 생각들이 모두 정리가 되었다.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낳은 딸인데 오죽할까. 콩 심은 데 콩이 나는 것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독려해주고, 또 성장하면서 변할 수 있음을 알려주면 될 것이었다. 소심하게 살 수도 있고 친구들이 적을 수도 있다. 내게 좋은 친구 단 한 명만 있어도 인생은 그렇게 어둡지 않다고 간혹 얘기해 주기도 했다.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는 긍정적인 생각은 삶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고, 현재의 모습을 비관하지 않은 채 조금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살 수 있게 한다. 변하지 않는 건 없다.


그 후로 몇 달 뒤 ‘하늘의 전설’ 모임에 나는 조금 늦게 참여했다.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들은 아이가 기대했던 것처럼 매우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이는 조금 쑥스러워하면서도 매우 행복해했다. 나는 못 본 척했지만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딸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조금 행복해진 모양이다.




다음 주쯤 그 모임에 속해 있는 몇몇 어른들과 아이들끼리 휴가 계획을 잡았다. 오랜만의 약속에 아이들도 살짝 기대하는 눈치다. 이 아이들은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평생을 함께 하는 친구로 남겠지. 그러니 성격이 어떠한들 외로울 일은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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